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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Aug 11. 2023

편견의 단면

다수가 오류를 형성하는 과정

어떤 남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여동생이 너무 순진하고 답답해서 자주 싸우고 핀잔을 준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예를 들어 달라고 했다. 그날은 가족끼리 모인 자리에서 해외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부모님이 농담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도 기르는 고양이의 여권이 없어서 여행을 함께 가지 못하겠다는 말을 했더니 여동생이 정말 믿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너무 답답해서 핀잔을 주었다고 했다. 옆에 함께 있던 남학생의 엄마는 여동생이 많이 순진하다고 웃으며 말을 거들었다. 


나는 "고양이가 여권이 진짜 필요해요?"라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둘은 의아한 표정으로 "당연히 없지요! 이 분도 딸이랑 똑같이 순진하시네! 농담으로 말한 거지요. 그런데 그걸 믿고 여권을 만들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더라니까요"라며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우스운 하나의 이야깃거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정말로 고양이 여권이 존재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요, 있을 수도 있잖아요. 한번 인터넷을 검색해 볼게요"라고 말하며 인터넷 검색을 했다.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실제로 동물 여권이 존재했고 해외여행 시 사람들이 소지하고 다니는 여권처럼 사진과 고유번호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찾은 정보를 공유하며, "이것 봐요. 있잖아요. 동생이 답답하고 순진한 게 아니라, 두 분도 그런 게 있는지 정보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였잖아요. 가서 딸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면서 미안하다고 해야겠는걸요"라고 말했다. 


편견이란 이런 것이다. 다수가 모르고 있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을 때 누군가 이를 궁금해하는 것도 핀잔을 받을 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다수의 의견에 속는다. 사실이 아님에도, 혹은 어떤 사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그렇다고 하는 것을 아무런 확인 없이 믿고, 그 근거 없는 믿음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고 매도하고 상처를 주는 암묵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순진해 보이는 한 아이의 엉뚱해 보이는 의견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고, 모두가 믿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아주 쉬운 일이면서도 대다수가 하고 있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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