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선 Aug 25. 2023

이루어질지도 몰라

영어에 'Be careful what you wish for, you might get it!'이라는 표현이 있다. 한국적 표현으로는 '말이 씨가 된다' 등으로 대치되는 의미인데, 이는 꼭 부정적으로 결과되는 것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이 표현을 잘 생각해 보면 좋은 것도 바라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부정적인 말만 씨가 되라는 법은 없다. 긍정적인 소원도 씨가 되어 열매를 맺는 확률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긍정적인 소원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꼭 부정적인 것이라기보다, 예상치 못해서 감당하기 버겁거나 황당한 경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좀 더 부정적으로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앞마당에 귀여운 판다 한 마리를 키우고 싶어'라고 상상했는데 내일 아침 앞마당에 판다 한 마리가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져서 좋기도 하겠지만, 앞으로 먹여 살릴 일이 동시에 걱정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일도 잘 바래야 한다는 의미가 약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무엇을 바랄 때, 논리적인 결과율은 동일한 듯하지만 (어차피 현재 없는 걸 바라는 것이므로), 긍정적인 소원이 이루어질까 봐 걱정하는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이루어질까 봐 걱정하는 비중이 더 클 것이다. 긍정적인 소원이 이루어질까 봐 걱정하는 쪽으로 생각해 본다면 뭔가 두뇌가 신선해지는 느낌이 든다. 내가 처음 이 표현을 긍정적인 것도 이루어질까 봐 설레는 마음으로 쓰게 된 것은 미국인 룸메이트가 그런 뉘앙스로 긍정적인 바람을 이야기했을 때였다. 뻔한 표현이 매우 다른 신선한 시각으로 다가왔고, 그 이후로 나는 어떤 소원을 상상하거나 상황을 바랄 때 '이게 안 이루어지면 어떡하지?'라기보다는 '이게 이루어지면 어떡하지?'의 태도로 이 표현을 내 맘속에 되뇌어 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인생에서 어떤 것이 이루어질까 봐 걱정하며 상황을 상상했는데 정말로 똑같은 상황이 일어난 경우가 꽤 많았다. 사람들이 이미 아는 '끌어당김의 법칙'도 아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비슷한 우연 혹은 에너지의 흐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무슨 '법칙'같은 단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상상한 상황이 정확히 발생함'이라는 것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정말로 많은 경우에 바라고 상상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아주 꼴 보기 싫은 교수가 넘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복도 끝 언저리에서 '어맛!'하고 바닥에 미끄러졌을 때 약간의 죄책감은 있었지만 정말로 통쾌했다. 그날 청소를 하는 분들이 바닥을 아주 반질반질하게 왁스칠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 종일 키득거리며 혼자서 신이 났는데, 지금도 생각해 보니 아직도 그 상황이 웃겨서 웃음이 난다. 


또 다른 상황은 아파트에 이사한 지 한 달이 되던 어느 날 차에 타고 가다가 신호등에 멈춰서 있는데 홀연히 '당장 다른 도시로 이직을 해서 가면 어떻게 하지?'라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혼자 걱정하고, 이사할 때 새로 산 가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쓸데없이 고민하고 있었는데 정말 이틀 뒤에 갑자기 다른 도시로 가게 되어 그 고민이 정확히 현실이 되어 나타났던 적이 있다. 


그것 말고도 정확히 상상했던 일이 일어났던 일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며칠 전에도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미국으로 아예 이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하면서, 그러면 내 작업실과 작품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있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혼자 이사할 일을 상상하고 앉아 있는데, 난데없이 7년 전에 가르친 적이 있던 한 기업의 직원이 전화가 와서 새로운 회사의 미국 법인장으로 가게 되었는데 당장 10월부터 2년 동안 미국에서 일할 생각이 없냐는 것이었다.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하기 때문에 강의를 하는 곳에서는 내가 예술가인지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심지어는 내가 공대 출신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마치 어떤 데자뷔 같은 걸 경험하는 것처럼 너무나 신기해서 당황스러웠다. 나는 며칠 동안 이건 정말 기회라고 생각하고 급하게 스튜디오를 처분하고 갈까를 생각하다가, 어제 다시 전화를 해서 아주 급하면 몇 달은 잠깐 가서 도와주는 게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을 때까지 구해보라고 했고, 나도 주변 지인들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친구는 왜 가고 싶다면서 가지 않냐고 했는데, 나는 비즈니스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좋아하고, 정말로 가고 싶었지만, 간다면 예술가로서 가고 싶다고 했다. 이런 기회는 과거에도 몇 번 있었지만 나는 그때마다 그보다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을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술가를 선택한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몇 번의 기회를 저버린 경우가 있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거의 폭발직전으로 이곳을 당장 떠나고 싶은 생각이 목까지 차올랐고 여전히 그 생각은 바뀌지 않고 있지만, 역시 나는 남보기에는 별일 없는 인생처럼 보이는 예술가로서의 나의 평온한 삶을 지키는 것이 다른 일로 떠나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아직 서로가 결정을 완전히 내린 것은 아니라, 혹시 몰라서 나도 현재의 프로젝트를 되도록 빨리 끝내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가든지 안 가든지의 문제가 중요하다기보다는 내 마음의 바람을 누군가는 듣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일 것이다. 내 마음이 망설이면 그 누군가도 기회를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기회가 정말로 나를 위한 것이라면, 그 기회는 다시 나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Be careful what you wish for, you might get it!

나만의 재해석은 '무엇을 바라면 그렇게 이루어질지도 모른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뻐서, 잘나서 미안해야 하는 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