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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Sep 30. 2023

가족 단상

저녁을 먹고 가족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였다. 우리 가족들은 너무나 삶의 양상과 성향이 달라서 실제로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도 노력은 하느라 맘에도 없는 영혼 없는 대화를 하고는 한다. 가족들의 대화는 이렇게 흘러간다. 


A: 텔레비전에서 뭐 해? 

B: 농구 보고 있어.

C: 누구랑 하는데? 

B: 우리나라랑 북한이랑.

A: 김연경 어딨어?

B: 아니, 이건 농구야! 김연경은 배구선수잖아.

E: 북한 선수들이 우리나라에 왔어? 이상하네, 요즘 북한하고 우리나라랑 사이가 안 좋은데.

B: 그게 아니라, 뉴스도 안 봐? 지금 아시안게임 하잖아. 

F: 지금 아시안게임 해? 

G: 누가 이겨? 

B: 우리나라가 이기고 있어. 

G: 지면 북한에 가서 고생할 텐데, 불쌍하다. 그냥 조금 져 주지.

H: 김연경이 쌍둥이 낳았지? 남편이 누구더라?

I: 그러게 아들이 이쁘다던데.

B: 아이고 주여! 이건 농구라니깐요! 저기 바구니 달렸잖아요. 왜 멀쩡한 싱글 선수를 유부녀로 만들고!

J: 김연경 어딨어? 

B: 김연경 안 나온다니까요! 

H: 늦었는데 너는 집에 안 가?


대화는 이렇게 웃프게 끝난다. B 말고는 사실 농구나 텔레비전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들 뭔가 한 마디씩 해서 분위기를 가라앉지 않게 노력할 뿐이다. 동물들은 한 번 개체가 독립을 하면 명절이라고 다시 만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인간은 삶이 멀어진 후에도 만나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 모르겠다. 몇 달 전 동물원 판다 모녀가 독립을 할 때 너무 슬프고 애틋해서 명절 때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나게 하면 좋을 거라는 바람을 가졌는데, 명절이 너무 자주 있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마음은 가까이, 삶은 더 독립적인 게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농경사회도 아닌데, 명절이 그냥 긴 휴가로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삶의 각질 같이 되어버린 명절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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