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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Oct 14. 2023

똥멍청이는 어디에나 있다

한 음악밴드의 통역을 잠깐 맞게 되었다. 음악을 듣고 보니 대단한 열정과 질적인 깊이가 느껴졌다. 외국 유수 음악 기획자들과 미팅을 하고 쇼케이스를 진행하면서 동행한 결과, 한 마디로 내 소감을 말하자면, '똥멍청이들은 국내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세계 곳곳에 있다'라는 것이었다. 보고도 못 보면서 중요한 자리에 앉아 예술가들을 선별해서 행사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들. 국내의 똥멍청이들에게 걸러진 사람들이 다시 외국의 똥멍청이들 사이에서 선별되고 팔려나간다. 생각해 보니 이름은 알려진 기관들이지만 그 모든 선별된 프로그램이 신선하거나 보고 싶은 것들이 아니기도 했다. 그들의 선별 능력도 별 거 없다는 말이다. 외국 투어를 많이 하는 음악밴드는 공연으로 먹고살기가 쉬운가 싶었는데, 물어보니 해외 초청을 가도 적자가 나는 경우가 많고, 개런티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높은 산의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기껏 올라갔더니 결국은 아무것도 없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정상에 있을 것만 같은 어떤 구세주적인 존재가 아니라 내 인생의 구세주는 그냥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순간과 느낌과 생각으로 충실하고 풍성한 스토리가 쌓인 각자의 인생 혹은 예술 말이다. 


나는 사람들 중에 어디 가나 뭣도 없으면서 도도하고 잘난척하는 얼굴로 웃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그러면 스스로 뭐가 잘나 보이고 있어 보이나 보다. 내 눈엔 그냥 똥멍청이로밖에 안 보이는데 말이다. 일부 해외 기획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저희들끼리는 여느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웃으면서,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표정을 짓는 그런 역겨운 표정이 있다. 그건 국내 기획자들도 일부 마찬가지이다. 글로벌하게 비슷한 그런 표정들이 있는 걸 몇 번 발견한 적이 있다. 특히 본인들 성향에 맞지 않는 예술가들에게는 공연을 본 후 그 예술가가 지나가도 본체만체한다. 이번에 내가 예술가로 참여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잘나서 공짜로 초청되어 보는 공연에 해당 공연 예술가가 옆에 있어도 웃는 얼굴로 미소 한 번을 짓거나 공연에 대한 코멘트 한 마디도 해주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에 'Snobbish' 혹은 'Attitude'란 단어가 있다. 적절한 한국어가 없다고 느끼는 두 단어인데, 뭐가 있는 척 도도하고 잘난척하는 어떤 사람의 태도 혹은 성향을 의미한다. 좋은 단어는 아니다. 만일 내 공연이 끝난 후 저런 표정을 지으며 있는 기획자라면, 티켓값을 열 배로 물어내고 꺼져버리라고 할 것 같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들었다. 미소 한 번 지으면서 'thank you'라는 한마디를 하면 자존심이 무너지나 보다. 


뭐 세상에 항상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돈이 되어있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내가 본 것을 남들도 똑같이 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본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힘겹게 최선을 다한 공연에, 그것도 정말 좋은 공연이었는데, 그것도 몰라보면서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예술가를 뻘쭘하게 만드는 그 사람들의 'snobbish attitude'에 내가 옆에서 민망했다. 세상이 그냥 그런 건데, 그래도 마음으로는 기분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음식을 집는 집게가 음식보다 중요한 건 아닌데 말이다. 


예전에 길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나도 모르게 뚱한 얼굴로 걷고 있는데, 한 미국 버스운전사가 창문을 열고 날 보더니 "Smile! It's Sunny Outside! (웃어요! 밖에 날씨가 화창하니 좋잖아요!)"라고 외치고 가는 바람에 정신이 퍼뜩 든 적이 있다. 그래서 가끔 길을 걷다가 내가 그런 얼굴로 걷고 있지는 않은지 종종 나를 일깨우곤 한다. 웃는데 돈 안 드는데, 굳이 눈이 마주친 다른 이들에게 냉담하게 굴 이유가 있을까? 얼굴을 마주하고 "Smile! It doesn't cost money to be nice!(웃어라! 웃는데 돈 안 든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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