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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Sep 21. 2024

썩은 사과는 그래도 좋은 사과일까?

좋은데 나쁜 사람?

나는 사람들을 '' 미워하지 못하는데 근래에 사람들을 '' 미워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람들은 나쁜 것도 있는 이면에 좋은 것도 있다고 생각하고, 나와 감정을 이입해 보면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상대를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나쁜 행동을 했는데, 그 사람의 가족과 형제의 관계로 생각해 보면 상대의 존재가 그저 불쌍하고 안 돼 보이기 때문이었다. 누구를 미워하면 내가 더 죄스러워지는 기분에 완전히 미워하지도 못하면서, 상처를 받으면 적절히 표출되지 못한 감정이 나의 내면에만 쌓여서 오래가고 피해의식이 생기다 못해 내가 죄인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구를 싫어한다고 투덜대면서도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아마도 착한 콤플렉스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나를 무례하게 대하고 내가 바보처럼 보이는 때가 많다고 느꼈다.


최근에 몇몇 지인들이 오랫동안 내게 무례한 언행을 하고 있는 줄 자각하지 못했는데,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그런 허용치를 준 것 같았다. 전화기 자동 통화 녹음 기능을 눌러 놓아서, 모든 통화가 녹음이 되고 있는데, 이 파일들을 정리하려다가 몇몇 파일들을 되돌려 보니 상대와 나를 조금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타인의 심리는 잘 분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와 관련이 된 대화나 관계는 잘 보지 못하는 면이 있다. 이 파일들을 들어보니 나 자신에 슬퍼졌다. 내가 두 세명의 오랜 지인들에게 무례한 언행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허용해주고 있었다는 생각에 여러 감정과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들과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연락을 끊으면 상대가 어떤 기분이 들지 신경이 쓰였다. 또한 한 사람에게는 10월에 연락을 한다고 했는데,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게 되는 것 같아서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고 관계를 단절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논리적으로는 그냥 무시하면 되고 전화를 안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전화번호나 상대의 흔적이 내 전화에 남아있는 것도 신경이 쓰이고 앞으로 올 연락도 미리 상상하며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그냥 손절하자니 상대가 당황할 것도 같고, 내가 연락을 안 하면 더 궁금해서 연락을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하던 대로 돌직구를 문자로 날리고 손절할까도 생각했는데 이런 예민해지는 상황도 짜증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친구가 깔깔거리며, 그냥 연락 안 받고 내 맘 편한 대로 손절하면 되고 손절한다는 문자 같은 건 보낼 필요도 없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어떤 어떤 부분은 좋은 부분이 있는 사람인건 맞는데 귀띔은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친구는 나도 '나쁜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고 했고, 상대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상대가 나에게 무례했으니 나에게도 그럴 권한이 있다고 했다. 어떤 부분은 좋은데 한 부분이 나쁜 게 아니라 그 사람은 그냥 통째로 나쁜 사람인 거라고 했다. 그리고 썩은 사과 얘기를 해주었다. 사과가 썩으면 그건 그냥 썩은 사과이고, 썩은 부분만 나쁘고 나머지 부분은 좋은 사과인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음식의 한 부분이 상하거나 곰팡이가 피면 멀쩡해 보이는 다른 부분에 이미 균이 퍼진 상태이므로 다 버려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사람도 그런 것인가 보다. 일부분이 나쁘면 아마도 그 사람은 전체가 원래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나쁘다', '좋다'라고 표현하는 건 너무 이분법적으로 보이는 것 같지만, 다른 말로 하면, 그나마 관계를 지속할만한 정도의 '온전함의 허용치'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정도로 구분을 하면 어떨까 한다.


나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전혀 이 무례한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으므로 (나는 천성적으로 대충 사람들을 주변에 두는 것을 못한다. 진정성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으로 판단되면 가식적인 관계로 두루 사람들을 곁에 두는 걸 점점 더 못하게 된다. 그래서 정치는 못한다) 그냥 통째로 그간의 인연을 버리는 쪽을 택했다. 나를 오랫동안 아끼는 친구가 나의 대화 내역을 듣더니 "제발 쓰레기 좀 폐기처분해"라고 해서 가슴에 와닿았다. '맞아, 쓰레기를 버려야 해!'


그래도 나는 상대방이 나를 궁금해하거나 더 이상 나도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 짧고 정중하게 연락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문자를 보내고 이들을 내 삶에서 폐기처분 해버렸다. 속이 시원했다. '썩은 사과는 그냥 나쁜 사과야. 통째로 버려야 해! 나는 맛있고 온전한 사과를 먹을 권리가 있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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