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아이디어를 가두기 위한 것인가, 퍼뜨려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인가
'글이란 아이디어를 가두기 위한 것인가, 퍼뜨려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인가'
브런치스토리나 스레드앱과 같은 언어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에 다양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글을 많이 업로드하면서, 여러 고민들을 하게 된다. 나의 글도 나의 창작물인데, 나의 수고와 노력이 들어간 문장들이 공감을 형성하고 다시 타인에게 ‘리포스트’ 등의 공유기능을 통해 공유가 되면서, 원본의 출처가 희미해지고 비슷한 생각을 표현하는 문장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산문 형식의 글은 비슷한 문맥들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비슷한 시대와 공간적 경험을 공유하고 살아간다. 각 개인의 삶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생각에 일부 공통된 인식을 형성하게 된다. 예를 들면 ‘나답게’, ‘내가 되고 싶은 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등의 문구와 이와 관련된 생각, 아이디어 등이다. 이런 문구들은 오래전 실제로 내 안에서부터 도출된 문구들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한다. 그런데 타인도 이런 생각들은 그들의 내부로부터 하게 되었을 것이다. 경험의 동 시대성 때문일 것이다. 글의 전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생각들을 표현하는 어구나 문장들이, 대단한 상상력을 요해서 재조합되는 것이 아니라면 타인의 생각이 널리 퍼지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어느 날 내가 한 생각을 상대가 마치 읽고 있는 것 같은 글이나 문장을 접하게 되기도 한다. 특히 이런 류의 문장들은 Ai 앱을 사용하다 보면 앱에서도 비슷한 생각이나 조언을 제시해 주는 경우에도 발견된다.
이 빅데이터들도 공개된 누군가의 생각을 조합한 것이라면 원래 글쓴이의 개성이나 아이디어의 희소성을 희미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Ai의 빅데이터의 출처가 공개된 자료를 취합하여 쓰기 때문에 저작권의 침해요소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 무료로 공개된 자료가 브런치스토리 앱에 올린 나의 수백 개의 글과 아이디어의 조합이라면, 그건 허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글을 올리지 않고 있는 시기도 있었고 많은 글을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현상이나 통념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와 같은, 일부 보편적인 생각의 변화와 인식을 제고하는 것을 주제로 하는 글의 경우에, 결국 그 글의 목적이 어떤 생각을 사회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서 다수의 동의나 공감을 끌어내어 어떤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글이라면, 그 글의 아이디어를 저자만의 것으로 하는 것에 무슨 의의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아무리 동일한 아이디어라도 글의 형식이나 표현방법은 다를 수 있으나, 비슷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다수의 기사나 의견을 개진한 글을 읽어보면 독자로서는 어느 매체의 특정 저자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 보편화된 아이디어만 동일하다고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유료 급여를 받는 매체나 기관에 속해서 그 글을 쓰는 사람들은 덜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브런치 같은 무료로 공개된 앱에서 쓰인 글이 여러 독자들을 거쳐 출처가 사라진 채 다시 누군가의 글로 재생산되게 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고려할 때, 그 아이디어가 결국엔 글쓴이의 의도대로 사회에 널리 통용되어 퍼지게 된다 해도, 그런 영향력을 가진 글을 쓴 노고에 대한 아무런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것에 대해 억울한 면이 있을 것도 같다. 그런 이유로 현재 멤버십 구독 서비스가 나와서 시기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 대학원 시절 컴퓨터공학과의 박사과정에 있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대화 중에 좋은 아이디어는 세상에 널리 퍼뜨려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연구논문이나 기술들에 대한 특허를 주장하는데 집중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연구논문의 내용에 저자로서 저작권을 부여받고, 수고하여 결과된 기술에 대한 특허로 인해 경제적 보상을 받는 것으로서 사회적 지위나 부를 형성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때에는 그 친구의 생각이 매우 새삼스럽게만 들렸다. 또 한편으로는 지식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훌륭한 생각처럼 들리기도 했다. 근래 다시 그 친구의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사회가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어떤 글을 쓰면서, 막상 남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말하고 쓰는 것을 발견하면 묘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같은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형식적 차별성이 창의성이나 저작권에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아이디어의 참신성 자체가 더 비중이 클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작물을 창작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한 사람의 시간과 경험, 노력,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기에,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서 저작자의 생각이 표현된 결과물을 무료로 퍼뜨려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여전히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좋은 생각에는 주인이 없어야 맞는 것일까?
PS: 저작권 관련 글을 많이 써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미루는 게으름 때문에, 그리고 공모라는 형식의 거부감 때문에 쟁여두었던 글을 조금씩 다시 꺼내놓는 중이다. 원래 공모니, 경쟁이니, 글을 쓰는 동안 글 이외의 순수한 동기부여가 아닌 외부의 목적에 의해 글을 쓰게 되면, 내 경우에는 글을 망치거나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미리미리 좋은 글감이 있을 때 써 두는 게 좋겠다고, 조금 더 부지런해지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