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 힘든 고민의 과정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과 내 작품의 정체성을 더욱 구체화하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내가 하려는 드로잉은 같은 아이디어에 근거한 ‘재현 (Reimagination/Site-Specific Adaption)’과 같은 것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안무 공연의 요소와도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짜인 안무는 무대 위 무용수의 공연으로 표현이 된다. 공연을 하기 전의 안무는 보이지 않는 아이디어와 공연기획/큐시트 등으로 존재한다. 무용안무는 일반적으로 무대 위 (꼭 극장의 무대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품이 발표되는 장소를 무대라 지칭한다) 공연으로 완성되며, 공연은 보이지 않는 존재감만 남기고, 이후 보이는 무용수나 소품, 무대장치 등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영상 기록이라는 흔적이 남을 수 있지만, 공연 영상 기록물은 작품의 주체가 아니다. 물론 영상이 목적인 안무도 있고, 기록물 자체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같은 순수 안무 공연을 위한 작품에서의 본질은 무형의 존재감, 혹은 공간에 존재하는 어떤 감각이다. (안무 작품의 목적과 방식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 부분도 더 다양한 설명이 있을 수 있지만, 우선은 나의 순수 안무 공연 작품에 국한하기로 한다.)
또한, 동일한 안무는 절대로 동일하게 재현되지 않는다. 안무가 아무리 구체적으로 잘 짜였다 하더라도, 매 회 공연 때마다 다른 즉흥성과 변화를 갖는다. 어떤 때에는 장소에 따라 구성이 변하거나 길이가 달라지거나 음악과 의상이 바뀌기도 한다. 움직임이 바뀌기도 하고, 매 회의 같은 공연이 다른 느낌과 존재감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매회의 다른 공연이 다른 안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안무와 일관성을 가지며 매회의 다른 공연과 그 기록이 존재하게 된다.
무엇이 어디까지 같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고, 그 경계가 모호할지라도 동일한 안무 작품이라는 것은 보는 이나 이를 공연하는 주체는 동일한 안무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존재한다. 혹여 동의하지 않아도 작품의 변경과 재적용은 작품의 주체인 온전히 안무자의 몫이고 타인의 동의나 검증은 불필요하다.
무용은 박제된 물건이 하는 작품이 아니고 살아있는 몸이 오브제가 되어 작품의 세계를 표현하는 예술이다. 과정과 진행과 매회 공연의 종료는 있지만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하나의 선상에서 지속되고, 지역과 시간을 초월하여 ‘재현 (Reproduction/Reimagination)이 된다. 많이 재현될수록 작품은 가치가 더해지고 경험을 거쳐 강력해지고 널리 확산이 된다.
안무 작품도 가치가 정해져 금전적 거래가 가능하다. 이때 공연된 결과에 대한 영상 기록물에 작품의 주된 가치가 매겨지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작품, 즉 안무자의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실연자에게 전달하는 과정 등이 작품의 본질적인 가치에 해당된다. 관람객은 관람료를 내고 작품을 관람하는 공유의 과정을 거치지만, 그 공연을 물건처럼 소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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