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도시를 헤매다가 지치면 내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곳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관람객들과 소통을 하거나 이들을 멀리에서 관찰하곤 했는데, 하루는 전시 호스트가 작품의 가격과 판매여부를 묻는 메일 하나를 내게 전달했다. 맨 위에 익숙한 이메일주소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하루나 이틀을 만나고도 이후 오랫동안 SNS에서 소통을 이어오고 있는 여러 나라 친구들이 좀 있다. ‘친구’라는 관계는 매우 다양한데, 이런 경우는 한 번을 만났어도 서로의 결이 비슷해서 금방 친밀한 공감대와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예술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코로나 발발 이전에는 유튜브에 올려진 무용 영상과 웹페이지를 보고 내게 연락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내 스튜디오에 직접 찾아오거나 이후로도 다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친구들은 몇 년 만에 소통을 해도 세월의 거리감이 잘 안 느껴진다. SNS에 자주 포스팅을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잊지 않고 연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원하면 언제라도 다시 연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스트에게 메일을 보낸 사람은 대학원 동기였는데 가족처럼 친했다가 어떤 계기로 언쟁을 하고 관계를 단절했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서로 슬며시 팔로우를 하며 조금씩 서로의 근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서로의 포스팅에 대해 한 두 마디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고, 조심스럽게 그렇게 다시 암묵의 유대감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 내 작품을 많이 좋아했다. 내 개인 공연을 보러 한국에 일부러 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과도한 친밀감이 가끔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군가 나를 좋아하면 나는 상대를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 아마 나는 나를 좋아해 주는 것도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면 싫은 것 같았다. 이 친구와의 우여곡절은 다른 글에서 언급할 일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내가 미국에 있다는 글을 올리자, 조용하던 SNS 친구들이 메시지를 던졌고, 이 친구도 몇 년 만에 내게 작품이 좋다며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전시가 끝나기 전, 작품의 거취를 고민하고 있었고, 더 좋은 대안이 없다면 이 친구가 내 작품을 소장하면 좋을 것 같았다. 친구와의 관계는 서먹하고 아직 화해의 대화를 하기도 전이지만, 나는 그녀가 내 작품을 좋아하는 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작품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친구와 단절 후 서먹했던 관계의 재개에 대한 그간의 회포나 긴 얘기는 뒤로하고,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내 작품 갖고 싶어?(Do you wanna have it?)"라고 단도직입적인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후 답이 없었다. 그것도 지극히 그녀 다운 반응이었다. 바로바로 답하지 않는 것. 그러더니 호스트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나는 호스트에게 그녀는 내 작품을 사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말해두었다.
그녀는 작품을 살 수 없을 것이다. 내 작품은 비싸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영혼에 어떻게 값을 매길 수 있단 말인가? 현재의 나는, 작품에 세상의 가격이 매겨지는 게 싫다. 지금 세상의 가격대로 매겨지면, 나와 세상의 합의는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사려면 현실적으로 맞지 않을 것이고,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팔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