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은도끼에 대한 단상

by 이영선

근래 여러 동화가 많이 생각난다. 그중 하나는 ‘금도끼, 은도끼’에 관한 이야기이다. 동화만 보면 자신이 빠뜨린 도끼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사람은 드물다. 동화는 단순해 보이지만 쉬운 게 아니다.

내가 신선이라면 도끼를 셋이 아니라 있는 도끼를 다 가져다 쏟아부어주고 싶은 사람도 간혹 있다.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의 진정성과 진실함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에 나온 대로 빠뜨린 도끼조차도 내어주지 않고 싶은 사람도 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변주하자면, 상대가 신선인 줄 아는 어떤 사람들은 신선이 가진 도끼를 가지려고, 온갖 아부를 하려 들지도 모른다.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나라면 안 준다. 아부란 마음의 빈껍데기를 건네는 것이고, 상대의 마음이 아니라 상대가 가진 다른 것을 바라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생각해 볼 수 있는 유형은 홀연히 나타난 신선이 그저 하릴없는 나이 든 노인네인 줄 알고 무시하고 비아냥거리며 도끼 찾는 건 지레 포기하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경우일 것이다.

많은 드라마의 클리쉐(cliché)처럼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허름하고 평범한 차림의 재벌이 자신에게 친절하고 가식 없이 대하는 사람에게 나중에 나타나 재산을 나눠주거나, 기회를 준다는 설정이다. 반대로 상대가 실제 누구인지도 모르고, 차림새나 기존에 형성된 어떤 편견 어린 관념 때문에 상대를 홀대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등장한다. 나중에 맞닥뜨리고 보니 입사한 회사의 상사였다거나 사장이었다거나 하는 경우 말이다. 그리고, 상대의 신분을 미리 눈치채고, 진실함을 가장하는 역할들도 당연히 등장한다. 이게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상대가 신선인지, 가면을 쓴 재벌인지 판단하고 가리는 게 중요하다 말하려는 게 아니다. 상대와는 상관없이 각자가 자신에게 진실하고 충실하며, 그 태도가 일관되는지가 중요하다.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착하냐 안 착하냐는 의미가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도끼가 빠졌다고 자신의 처지를 진실되게 말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가 착하냐고 묻는다면, 사과를 사과라고 말하는 게 착하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의 질문일 것이다. (권선징악은 모호한 이분법적 사고라서 인간세상의 현실에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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