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잡아먹는 집
중요한 것은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뉴욕 센트럴파크 옆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싶다. 그곳은 부의 가장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꿈꾸는 곳이라 들었다. 자연과 예술과 도시의 모든 좋은 기회가 공존하는 곳이니,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을까. 그런데, 누구라도 살고 싶어 하는 곳에는 결국 가장 재화가 많은 사람들이 가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여태 통틀어 세 번에 걸쳐 약 한 달 하고 15일 정도 머물 수 있던 것 같다. 여행으로는 앞으로도 잠깐씩 갈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센트럴 파크 옆의 아파트는커녕, 센트럴파크 근처의 나무 한 그루만큼의 땅도 살 수가 없다.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난다.
뉴욕이 당장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아니라면 서울인가? 오래전 서울에서 직장과 학교를 다닐 때에는 당연한 듯 월세를 내고 살았다. 재테크라는 것에도 매우 무지했다. 서울이 원래 집인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그렇다고 비싼 돈을 내고 80년대 아파트처럼 생긴 곳에 들어가 불편하게 사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금요일 저녁에는 지방에 있는 매우 저렴하지만 웬만한 서울 아파트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은 내 명의의 새 아파트에 가서 머물다가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왔다. 주말에 아파트로 다시 돌아갈 때면, 다시 각박한 서울로 오기가 싫었다. 혼자서 두 곳의 생활을 하느라 저축은 많이 하지 못했다. 그래도 각박한 서울에 일주일 내내 있기는 싫었다. 아침에 탁 트인 12층 베란다 밖까지 차오르는 구름 같은 안개와 초목의 냄새와 밤의 적막한 고요함이 좋았다. 나는 구름 속에서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서울로 와야 할 때면 집을 두고 나오는 길이 슬프게도 느껴졌다.
최근에는 거의 웬만한 빌딩 몇 채 값으로 서울의 주거비용이 치솟았다. 그만큼 서울만의 다이내믹한 에너지와 누릴 수 있는 가치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도 집값이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나는 사람들이 어떤 일들을 하길래 저런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늘 궁금했다. 왜 우리 부모님은 지방에서 나를 낳았으며, 그런 돈도 없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최근에서야, 그건 사람들이 일을 해서 모은 것이 아니라, 80년대의 낡은 아파트처럼 생긴 초라한 아파트에 들어가서 겉으로는 누가 봐도 빈곤해 보이는 삶을 사는 대가로 쌓은 숫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학생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타 지역 사람들이 이제와 들어가 살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학생이거나 어린 직장인이면 누추하고 좁은 곳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제와 자괴감과 격한 빈부격차를 느끼며 그 틈에 끼어 살고 싶지는 않다. 서울에 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혜택을 누리고 살려면, 고속터미널을 돌아 나오는 곳에 있는 아파트 정도에 살아야 서울에 사는 맛이 날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서울에 있는 온갖 휘황찬 빌딩과 주택단지만큼 실제로 내부의 삶도 여유로운 부자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소위 대치동과 구반포의 아파트에 산다고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자랑을 하는 이모들 집을 직접 가보거나, 어쩌다 압구정의 아파트에 사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가보면 아무리 봐도 지방에서 보면 매우 오래된 옛날 아파트에 옛날식 상가가 모여있는 곳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있을 풍요한 하루보다는 매일 길게 이어지는 내 삶이 훨씬 더 여유 있어 보였다. 나는 먹고 싶은 통닭도 마음껏 시켜 먹고, 춤도 마음껏 추었기 때문이었다. 커피도 밥도 서울에 사는 친구들보다 내가 더 많이 샀던 것 같다. 숫자는 그들이 부자일 텐데 이상하게 일상의 삶은 내가 더 여유로웠다.
어쨌든 내게 서울에서 집 한 채를 사는데 필요하다는 몇 십억의 돈이 있다면, 나는 오히려 그때에는, 그 돈으로 서울에 사는 게 아니라 서울이 아닌 모든 곳에서 매우 넉넉하고 여유롭게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 것 같다. 건물도 한 채 사고, 주유비와 호텔비 걱정 없이 한 두 달은 국내 자동차 여행도 할 것 같다. 굳이 서울에 있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숫자만 높게 쌓인 집을 소유하느라 여유를 희생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 이상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해당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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