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지도 남의 눈치를 봐야 해?
벽지가게 사장님은 예상대로 흰색과 무채색 계열의 무난 한 벽지 샘플들이 담긴 책자를 먼저 보여주었다. 그 벽지들도 세련되고 예뻤지만, 나는 무난한 집이 아니라, 내게 맞는 집안의 분위기가 중요했다. 내 집과 성향과 취향을 묻지도 않고 누구나의 집에 있을 흰색의 벽지를 권하는 게 이상했다. 나는 여러 벽지 책자들을 보여달라고 했고, 파스텔 계열의 벽지를 고르자, 누가 쓸 거냐고 물었다. 가능한 흰색 벽지를 쓰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희소성 있는 벽지라 해서 도배 비용은 더 지불했지만, 그래도 몇 년은 한 집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벽지를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데, 아무렇게나 벽지가게 사장님의 취향과 편리함에 내 삶을 맞출 수는 없었다.
예상 가능한 반응이지만, 정말로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색에 서열이 있는가? 나이와 색과 또는 성별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람들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이 있다. 그런 반응은 가구점에 가서도 비슷하게 발생한다. 나이에 연연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문화에 신물이 날 정도이지만, 나이랑 도대체 가구의 스타일과 색상에 무슨 논리적이고 타당한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돈은 내가 내는데, 왜 벽지가게 사장님이 자신의 취향과 판매에 유리하고 합당한 근거를 은근 내게 강요하는가 말이다. 아무렴 예술가인 내가 시각예술감각이 무난한 벽지가게 사장님보다는 월등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내 집엔 내가 더 오래 살아봐서 더 잘 알지 않겠는가?
예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을 하면서 백악관 벽의 색상을 제일 먼저 바꿨다. 그때 사진들을 보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을 떠나 방마다의 분위기가 얼마나 멋지고 각각의 색이 다 아름답고 재미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벽지의 색은 한국에서 찾기도 힘들뿐더러, 건축 구조 자체가 미학적인 건 전혀 고려하지 않은 콘크리트 덩어리 수준(아파트 건설업자들이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파트 건설업자들은 개성 없는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공화국을 만들어 풍경을 혼란하게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해 단단히 혼나야 한다! 말 그대로 그냥 회사 남자 부장 정도의 미학이랄 것도 없는, 예술적 감각은 한 번도 공부해보지 않았을 사람의 미학이다. 백번 천 번을 반박해도, 내 말을 바꿀 생각은 없다! 언젠가 이 콘크리트 더미들은 처치 곤란한 사회적 문제로 불거질 것이다)에 같은 마감이라서 인테리어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힘들다.
색도 취향이라 다 나처럼 느낄 필요도 없지만, 사람들이 정말 취향이라는 게 있을까도 의문이다. 어쩌면 색맹 아닌 색맹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색을 정말 못 느끼고 못쓴다. 색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삶에서 느끼고 그 감각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느껴지고 보인다.
그건 한국의 아트페어에 가봐도 알 수 있다. 작품들의 색이 균일할 정도로 비슷하다. 개성이 별로 없다. 특징이라면 색과 표현이 다 안으로 숨어있다는 것이다. 그건 진중한 것도 아니고, 얌전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비겁해 보인다.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 첫인상은 그랬다. 무리 속에 숨어 있고픈 집단의식이 작품들에 베여있다. 그래서 아마도 작품에도 유행같이 엇비슷한 것들을 서로 수용하고 심지어는 따라 하듯 베끼는 모양이다. 기존의 것을 잘 그리는 작가는 많은데 자신만의 색감과 표현과 사고를 가진 창의적 예술가는 드물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비슷한 걸 배워서 비슷한 학교에 가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다시 그 비슷한 것을 편리하게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제도에서 수용하는 상황이라면, 비슷한 게 나오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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