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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8장. 효영

by 김영웅

1부. 8장. 효영


동수의 글 한 편을 읽고 효영은 쓰기로 했던 분노에 관한 글의 마감이 일주일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이 촉박해졌다. 하지만 언제 깊은 분노를 느끼는지에 대해선 이미 이 주제로 글을 써보겠다고 말했던 그날부터 마음속에 있었다. 수십 년간 마음 어딘가 한 구석에 늘 자리 잡고 있던 한 사건이 분노라는 단어 앞에서 자연스레 떠올랐던 것이다. 분노로 기억되어 버린, 아니 박제되어 버린 그 사건을, 잊고 싶어 피해만 다녔던 그 순간을 효영은 글쓰기 때문에 다시 방문해야 했다. 과거의 쓰라린 기억으로부터 진정한 탈출을 원한다면 아무리 쓰라리더라도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팔요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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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째 효영의 머리와 마음은 그 사건이 발생했던 수업 시간에 가 있었다. 효영은 그때와 똑같이 분노했다. 하지만 그때와 똑같이 얼어버리기도 했다.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그때를 기억하면 동일한 공간 동일한 시간에 멈춰 서서 모든 게 정지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감히 그 사건을 글로 옮겨 적는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치가 떨려 맨 정신으론 할 수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다시 공황이 올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동수의 글을 읽고 왠지 용기가 생긴 것 같았다. 효영도 그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느꼈다. 이번에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로 이겨내고 싶었다. 효영은 동수의 글을 읽은 날부터 밤마다 글에 매달렸다. 글쓰기로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고 싶었다. 약이 아닌 글로 이겨내고 싶었다.


세 번째 만남 바로 전날 밤 효영은 글을 간신히 완성했다. 글쓰다짓다 단톡방에 글을 올리고 나니 긴장이 다 풀린 것처럼 잠이 쏟아졌다.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이런 글 하나에 매달렸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실없는 웃음을 짓다가 잠이 들었다. 몸에 붙어 있던 그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가벼움을 느꼈기 때문일까. 효영은 그날 단잠을 잘 수 있었다. 효영이 올린 글은 다음과 같다.


이유


집을 나서기 전, 거울 앞에서 교복 매무새를 다듬고 있는 내가 보인다. 그러다 문득 인중에서 시작해 윗입술까지 가로지르는 긴 흉터를 멍하니 바라본다. 일그러져 있는 윗입술이 오늘따라 더 우스꽝스러워 보이고 보기 거북하다. 친구들도 내 입술을 보고 이렇게 느끼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든다. 집게손가락으로 입술을 이리저리 잡아당겨 모양을 잡아본다. 입술이 만지는 대로 모양을 잡을 수 있는 지점토였으면 좋았겠다 싶다. 별안간 그러고 있는 내 모습이 바보 같아 보인다. 애써 괜찮은 척 스스로를 달래려 웃음 지어보지만, 미소조차 일그러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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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양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각자의 개성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개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정상의 범주에 들어갈 때의 이야기다. 내가 가진 입술은 개성이라 부를 수 없는, 유전에 의한 질환에 속한다. 누군가의 잘못도, 조심해서 바뀔 수 있는 것도,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닌 태어날 때부터 내게 주어진 것이었다. 중학생 시절, 이성에 눈을 뜨고 외모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진 입술이 개성의 차원을 넘은 비정상적인 형태임을 인지했다. 사춘기 시기에 맞닥뜨린 이 새로운 인식은 나의 내면 깊은 곳을 뒤흔들었다. 거울에 비친 나를 마주하는 일이 두려웠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과 같지 즐겁지 않았다. 입술이란 것이 말을 할 때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무섭도록 새롭게 다가왔다. 다들 내 입술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기 일쑤였고, 어쩌다 친구의 시선이 내 입술을 향하기라도 하면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어 할 말을 잇지 못했다. 가끔은 그 시선이 몇 초 동안 머물더니 '입술이 왜 그러냐'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거야'라며 대수롭지 않은 척, 쿨하게 대답해 줬다. 이때는 몰랐다. 이 질문이 그렇게도 무겁게 나를 짓누를 줄은.


저녁을 다 먹고 한가롭게 티브이를 보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저녁, 엄마가 나를 불러 앉히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 입술 수술 한번 하자 엄마가 병원 알아봐 놨어." 그날이 처음이었다. 내 입술을 두고 엄마와 얘기를 했던 건. 마음속은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다지 신경 써오지 않았던 척했다. 그 당시 나는 입술로 인해 생긴 고민과 괴로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에게는 더더욱 그런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전까지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엄마도 나 못지않게 신경을 쓰고 있던 거였다. 엄마의 그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왠지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울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을 미래를 꿈꾸는 일이 너무도 달콤했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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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햇빛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초여름이었다. 엄마와 함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병원을 가는 길에 나는 설렘보다 왠지 모를 막연한 두려움을 더 크게 느꼈다. 무언가를 예감이라도 했던 걸까. 조심스레 병원문을 열어젖힌 그곳에는 나와 같은 입술을 가진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그때까지 살면서 나와 같은 입술을 가진 이를 한 번도 본 적 없었기에 신기하기도 했고, 동질감 같은 것도 느꼈다. 그러나 이내 우울감이 내 안을 지배해 들었다. 그들이 마치 내 입술을 비추는 거울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의 거울이 발이 달려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도 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그들과 나는 마주 보기를 겁내는 듯 서로의 눈을, 아니 입술을 피하기 바빴다. 애써 괜찮은 척, 엄마에게 시답잖은 질문을 던지며 병원을 둘러보았다. 나와 같은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굉장히 유명한 병원이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걸 보니 돌팔이 의사는 아니겠구나 싶어 안심하며 처진 기분을 달래 보았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백발의 의사가 인자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내 상태를 이곳저곳 체크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냐고. 답이 너무나도 뻔한 질문이어서 이상하다 느끼면서, '정상적인 입술을 원해요'라 말했다. 의사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한 표정을 짓더니, 대칭을 완전히 맞출 수도 없고, 인중에 있는 흉터도 약간은 보완할 수 있겠지만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했다. 나의 순수한 기대의 찬 눈빛을 본 의사는 이 말을 꼭 해주어야겠다 생각했던 거 같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의사의 냉혹한 선고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내 입술은 바꿀 수 없는 운명이었다. 평생 이 모습으로 나는 살아야 했다. 커다란 운명의 벽 앞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무기력했고 비참했다. 운명을 주관하는 저 위의 누군가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나는 평생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냐고, 도대체 뭐 때문에 나만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냐고,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으니 책임지라고. 그날밤 나는 꿈쩍도 않는 벽을 부서져라 두드리며 저 위를 향해 분노했다.


존재론적이고 근본적인 답을 갈망했다.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있어야만 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고통을 겪는다는 건 납득할 수 없으니까. 또한 스스로 내가 못나 보이고 타인에게 모욕당한다고 느낄 때마다 꺼내서 위로할 수 있는 적당한 이유가 나에게는 필요했다.


아, 나는 아직까지 그 어떤 이유도 답도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세월은 흘러 그때만큼 흔들리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입술로 인해 받은 크고 작은 상처들이 아물고 그 위에 생긴 흉터는 웬만한 일에 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그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여전히 답을 원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런 의문도 든다. 내가 그렇게도 찾는 이유라는 게 이미 주어져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거라는. 혹은 이미 그 가치를 다해서 더 이상 내게 어떤 의미도 없는 상태일 거라는. 그렇다면 알아채지 못한 채로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을 거라는. 이건 정말 아니길 바라지만, 그런 이유 따위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거울 앞에서 입술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때면 다시 한번 이유를 묻곤 한다. 아, 여전히 당신은 침묵한다. 언제까지 당신은 침묵할 것인가. 나는 들어야만 하겠다.


효영이 단잠에 빠진 사이 동수와 유경은 자정이 넘은 시각 효영이 올린 글을 읽고 가슴이 아파 잠시 무너졌다. 효영을 괴롭히던 그 망령들이 글 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효영이 늘 가슴에 품고 있던 응어리가 고스란히 글 속에 드러나있었기 때문이다. 동수와 유경은 그 선생님의 말과 행동에 분노했고,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효영 편에 서서 한 마디라도 꼭 해주고 싶었다. 비록 중학생 시절에 감히 선생님께 말대꾸를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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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는 효영의 글을 읽고 도저히 수정할 수 없는 글이라 느꼈다. 효영의 글은 텍스트를 넘어 효영의 응축된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그걸 기술적인 이유로 건드린다는 것은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더 정독한 이후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분노가 답 없는 답을 갈구한다는 것을 너의 아픈 기억을 통해 명징하게 썼구나. 너의 분노가 정말 공감이 되었어. 네가 너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따지는 그 마음도 아주 잘 전달이 되었구. 사람은 저마다 하나 이상씩 가시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어. 그것은 쉽게 분노, 원망, 슬픔, 자존감 하락, 열등감 등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 효영이는 그 가시가 가시적인 외모에 해당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너의 관점과는 달리 너의 그 부분에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는 사실 말이야. 유경이도 마찬가지라 생각하지만 나는 널 볼 때 단 한 번도 이상하다거나 열등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아니, 그 흉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 같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중심을 보는 사람이 언제나 소수이지만 존재한다고 믿어. 너의 그 흉터가 전혀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너를 알아봐 주는 사람 말이야.


유경 역시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내 안에 숨겨둔 아픔이나 상처는 덮어두고 묻어두는 것보다, 오히려 글과 말로 표현하고 드러낼 때 더 나아지고 좋아지는 것 같아. ‘그건 너의 약점이야’라는 말이 저 깊은 내면에서 나를 속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데, 난 그 말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거지. 네가 생각하는 약점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효영이 너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그런 너를 충분히 알아볼 거라 믿어. 우리에게 꺼내 준 이야기가 네 안에 있던 마음의 짐을 좀 가볍게 해 줬다면, 조금 더 자신 있게 나아가길 바라. 효영은 있는 그대로 충분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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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영은 세 번째 모임 아침 동수와 유경의 글을 읽고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눈물이 났다. 단지 글 한 편을 썼을 뿐인데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뀐 것 같았다. 어젯밤의 단잠도 다 이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런 게 치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글의 마력을 효영은 드디어 맛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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