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
적막 가운데서도 고독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적막이 품고 있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적막 속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들리는 것들. 큰 소리에 가려져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들. 바람의 움직임, 새의 지저귐, 벌이나 파리의 날갯짓, 이웃집 사람들의 생활 소음, 냉장고나 기타 여러 가전제품들이 내는 소리들, 가까이에선 시계 초침 소리, 멀리서는 간간이 들려오는 기차 경적 소리... 잊고 있던 소리들, 놓치고 있던 소리들, 그러나 언제나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던 소리들.
그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짐짓 경건한 자가 되어 내 마음을 조용히 들고 뒷걸음치며 물러나 아래로 아래로 내려놓는다. 적막이 두려운 건 이런 낮아지는 순간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아니, 낮아지기 전에 꼭 거쳐야만 하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직시하는 과정을 통과하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도 포장되고 꾸며진 모습이 주는 활력으로 마음 정중앙에 자리한 진짜 내 모습까지도 지워버리고 싶은 경솔한 마음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단지 두려운 게 아니라 그걸 넘어서는 어두운 마음에 사로잡혔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외면이나 무시 혹은 은폐를 넘어서는 삭제 그리고 왜곡.
살다 보면 자신이 만들어낸 페르소나에 심취하여 그것이 가져가 주는 유익으로 행복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조용한 방 안에 홀로 앉아 스탠드 불빛 아래서 단 몇 분만이라도 가만히 있으면 알게 된다. 진정한 자아는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꿈틀거리며,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페르소나를 뚫고 나오려고 한다는 사실을.
적막 가운데 자아를 직시하고 낮아지는 과정을 통해 안식과 재정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이가 좋다. 비뚤어지고 뒤틀려도 다시금 영점 조정을 하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가 좋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