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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Oct 22. 2024

11시 59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제가...

.....

......

아니, 저를...


이 모든 일에 여전히 붙들려 있는 저를...

이 모든 일의 책임이 있는 저를...

이 모든 일을 초래한 저를...

어리석은 저를,

미약한 저를,


부디 용서하시고

유혹을 빠지지 말게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그런 날이 있다.

시지프스 형벌의 언덕을

하루에도 몇번씩 반복해서 오르내린 날.

간신히 잠재운 흙탕물속 흙먼지가

발길 툭.. 한번에 하릴없이 다시 부유하는 날.

멀리멀리 버리고 기어이

도망쳐왔다고 생각한

검은 형체의 사유 덩어리가

보란듯이 약올리며

내 안에서 비시지기 기어나오는 그런 날.

주님의 기도도 소용없는 밤.


어제 밤, 아이와 같이 읽은 신문 속 기사를 다시 들여다본다.

한자 한자 꾹꾹 눌러 눈에 담는다.


오늘날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 중에는 그 역사가 공룡이 출연한 2억3000만년전, 아니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종류가 많다. 예를 들어 4억7000만년 전 처음 육지에 등장한 이끼류,3억6000만년 전에 나타난 고사리류, 그리고 2억8000만년 전부터 번성하기 시작한 소철류를 꼽을 수 있다. 도심 속 가로수로 흔히 볼 수 있는 은행나무 역시 2억7000만년 전 처음 출연한 이후 거의 변함없는 모습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가장 오래된 나무 중 하나다. 공룡과 함께 살던 식물들이 '살아있는 화석'처럼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은 정말 신기하고 경이롭다. 우리가 집에서 키우는 반려식물이 수억년의 진화 역사를 지닌 지구의 선조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그 식물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반면에,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에 등장한 지 고작 30만년 밖에 되지 않았다. 식물의 역사에 비하면 정말 짧은 시간이다. 만약 이끼류 같은 육상 식물이 처음 나타난 시점을 0시로 하여 지금까지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으로 놓고 본다면,양치류는 새벽 5시 반쯤, 소철류는 오전 9시 반쯤 등장했고, 정오가 좀 지나 공룡이 출현했다. 최초의 꽃식물과 벌은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그리고 인류는 자정 직전인 밤 11시 59분에야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셈이 된다.  <조선일보 박원순의 도시의 정원사 발췌>

주문처럼 외우는 주님의 기도도 소용없는 그런 밤.

나는 가끔, 내가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나를, 그 일을,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을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치부해버린다.  줌아웃을 하듯 내 사유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생각을 멀리멀리 보내버린다. 숫자가 100만 넘어가도 현실 감각을 잃고 어리버리 해지는 천상 숫자 바보인 내게는 꽤 효과적이다.  


30만년 전의 일이 지구의 나이를 기준으로 한 시간에서는 불과 1분 전이래.

30만년 전의 일도 1분 전의 일이 되는걸...

우리 인간은 이 지구상에 불과 1분전에 온 셈인걸.

그럼, 나는 기껏해야 0.00000001초전에 지구에 온 존재겠네....

아무것도 아니네...

그러니, 그게 머라고..

그까짓거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그러니까 웃자. 내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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