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1남 7녀 중 장녀다. 당시 8남매는 흔한 일이지만, 우리 가족은 특히나 더 끈끈했다. 장녀였던 엄마가 일찍 결혼하여, 나는 7살 차이 나는 막내이모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다. 나 또한 집안의 첫째로 태어나다 보니이모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세월이 흘러 이모들과 내가 각자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3대가 함께 모이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내 아이들과 초등학생인 사촌 동생들이 함께 자라, 그들이 "이모, 삼촌"으로 불리는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졌다. 또, 내 아이들이 아직 젊은 이모들을 "이모할머니, 이모할아버지"라 부를 때마다 주변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이 발생되어 웃음 포인트가 된다.
결혼 후엔 챙겨야 할 가족이 늘어나면서 친정 식구들과 예전만큼 자주 만나기 어려워졌다. 명절에도 시댁에 들렀다 늦게 내려가니 몇몇 이모들만 만나게 된다. 모든 이모들을 만나기 어려워지고 점차 횟수가 줄어드니 차츰 친정 가족들과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왠지 모르게 허전함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녀인 엄마의 환갑을 기념하여 대가족 해외여행이 계획되었다. 엄마는 '내 딸과 꼭 같이 가고 싶다'라고 부탁했고, 결국 나도 아이 둘을 데리고 동행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 출산과 육아로 함께 하지 못하다가 큰마음먹고 오랜만에 참여한 첫 가족 여행이었다. 두 아이(5살, 7살)를 혼자 데리고 가는 부담감은 너무 컸지만, 함께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엄마, 이모들, 이모부들, 사촌동생들, 그리고 나의 두 아이까지, 삼대가 함께 쌀맹이네 대가족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드디어 떠나는 날, 지방에서 올라온 가족들과 공항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너무 반가웠다. 우리 가족만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공항에서부터 가득했다. 출발도 하기 전부터 왁자지껄 웃음꿏을 피웠다. 18명이 한꺼번에 이동하니 우리끼리 단체 패키지여행이 되었다. '쌀맹이네 대가족 여행'이란 푯말을 붙인 버스를 타고 다녔다. 쌀맹이네는 정선 쌀매리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어 어르신들이 쌀맹이네라고 부르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 쌀맹이네가 한 팀으로 똘똘 뭉쳐 다니는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3대가 모였기에, 각양각색의 호칭들로 불리며 여행을 다녔다. 이모할머니들, 이모할아버지, 이모들, 삼촌들 사이에서도 함께 웃으며 따라다니니 여행 내내 어려움이 없었다. 걷고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도 아이들을 투정 하나 없이 잘 다녔다. 큰 아들은 이모부들과 함께 다니면서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둘째도 친정엄마와 이모들이 돌봐주니 오히려 나는 오랜만에 자유로움을 느꼈다.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실감 났다. 나를 위하는 가족들의 마음들이 더욱 크게 느꼈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유람선 위에서 열린 엄마와 셋째 이모부의 환갑파티였다. 다낭의 밤하늘과 강의의 풍경이 어우러져 완벽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삼대가 모여 축하와 웃음이 가득했던 그 순간은 평생의 잊지 못할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다
우리 가족이 가는 곳엔 늘 날씨도 도와준다' 할 정도로 3박 5일 동안 다낭의 맑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축복해 주는 듯했다. 덕분에 우리는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한 사진첩을 새롭게 만들었다. 여행 내내 우리는 사진 찍기를 멈추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기만 하면 모두가 포토존으로 뛰어들어 자리를 잡았다. 누군가 들면 서로 뛰어가 자리 잡고 찍을 준비하던 모습이 너무 익숙 해저 아이들마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특히, 코로나 직전의 해외여행으로 남았기에 무엇보다 귀한 기억들로 남겨졌고, 우리 아이들도 오랜 시간 회상하며 이야기 나누곤 했다.
그 여행 이후로도 우리는 여전히 함께 모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최근 두 번째 쌀맹이네 대가족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엔 학생이거나 수능시험 등으로 일부 가족이 빠져 16명이 함께했다. 어느덧 아이들은 9살, 11살이 되었고, 더 성숙한 모습으로 여행을 즐겼다. 함께 다니고, 이야기하면서 사진으로 남겼다.
이젠 우리 엄마를 기점으로 모든 가족관계들이 돌아가고 있다. 이모들은 50대, 60대가 되었고, 사촌들은 결혼해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3대 구성원이 더 늘어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 집마다 구성원들이 늘어나 예전보단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여전히 가족의 유대와 사랑은 여전히 단단하다. 모든 그 과정들을 서로 아는 사이라 그런지, 옛이야기보따리를 열면 무궁무진한 소재들이 쏟아져 나온다.
"늘 베풀며 서로 도와주고, 많이 웃으며 지내라."
삶으로 보여주셨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는 오늘도 함께 웃음과 추억을 쌓아간다.
이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새로운 추억을 만든 특별한 여정이었다. 앞으로 우리는 가족의 이름 아래 모여 더 많은 사랑과 웃음을 나눌 것이다. 언젠가 하늘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다시 만나, 함께 찍을 사진 속에서 또 웃음을 나누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