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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여니 Dec 20. 2024

그날의 대답, 사랑을 약속하다

내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날, 그날의 프러포즈

한해의 마지막이 되면 그때가 떠오른다.

1월 초의 결혼식을 위해 정신없이 바빴던 그날의 기억. 짧은 시간 준비도 아니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그날의 대답 이후,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뀌던 그 과정들이 어김없이 떠올라 피식! 웃게 된다.


이젠 두 아이의 부모로 살아가니 한참 전의 이야기로 남겨져버린 그날의 대답이 문득 떠오른다.




어느 날이었다. 정신없이 일하던 중, 남자친구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오늘 여의도에서 저녁 먹어요. 퇴근하고 여의도로 오세요.”      


당시 나의 직장이 강남이었기에, 우리는 퇴근 후에 만나 강남에서 함께 저녁을 먹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여의도에서 만나자고 하는지 궁금했지만, 궁금증도 잠시 그저 ‘한강 변의 좋은 분위기에서 저녁 먹겠구나’하는 설렘으로 채워졌다. 많은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에 합류되어 여의도까지 가는 길이 왠지 모르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화창한 6월의 어느 저녁, 한강공원은 일몰과 함께 평안 그 자체였다. 삼삼오오 라면이나 치맥을 즐기고, 시원한 강바람을 느끼는 모습이 좋은 한 편의 그림 같았다. 바람을 느끼며 걷고 있는 그 순간, 여의도 한강공원의 분수 무대에서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내 이름이 불리고, 동시에 그의 편지와 그동안 함께 찍었던 사진들이 영상으로 흘러나왔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와 그의 모습을 마주한 순간 너무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계단벤치그대로 주저앉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체 무슨 일이야? 대체 이 사람은 어디에 있길래 나타나지도 않는 거야!’라며 남자친구를 애타게 두리번거리며 찼았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든 남자친구가 무대에 올랐다. 성악가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노래를 불렀다.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없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6월의 어느 멋진 날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이 노래 한 곡이 세상에서 제일 길게 느껴졌다. 순간 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지금 승낙하면 내 삶은 어찌 되는 건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압도되어 노랫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사실 아직 연애 초기라 결혼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나에겐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뜬금없이 한강공원에서의 공개 프러포즈라니, 정말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마구 떨렸다.



노래를 마친 후, 카메라들과 사회자와 함께 저 멀리서부터 내 곁으로 다가오는 한 남자.

당황과 떨림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한 여자.


공원에 노닐던 관중들도 그 순간엔 숨죽여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 세상은 몇 초 동안 정지된 상태에 우리 둘만 깨어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와 결혼해 줄래?”  

   

무릎을 꿇고 반지를 내미는 그의 눈빛은 어느새 ‘한 남자의 인생에 한 여자의 인생을 합해 함께 걸어가 달라’라 호소하는 눈빛으로 변했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살며시 내민 나의 손엔 그가 준 반지가 조심스레 끼어졌다. 빨간 장미 꽃다발과 함께 한강공원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의 환호와 축하, 노래 앙코르를 받았다.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느낌에서 행복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가 우리 둘의 세상에 가득 채워졌다.      



프러포즈가 모두 끝난 후에도 오랜 시간 내 손은 떨고 있었다. 무서움의 떨림이 아닌, 너무 놀라고 당황했던 그 떨림.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그의 품에 안기며 안도하는 마음을 채웠다. 다가올 새로운 삶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그날의 프러포즈 후, 결혼 준비를 시작한 지 7개월쯤 지나 이듬해 1월에 결혼을 했다. 이리하여 내 인생은 혼자가 아닌 둘로 가는 길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인생 2막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출산, 육아를 이어가며 우리 가족은 둘에서 셋이 되고, 금세 넷으로 늘어났다. 





얼마 전  살, 열두 살 아이에게 그날의 영상과 사진을 보여주며 아빠가 엄마를 얼마큼 사랑했는지 말해주었다. 처음에 믿지 않던 아이들은 사진과 영상의  자료를 보며 놀라워하더니 어느새 아빠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의 작은 일들 속에서도 매년 6월이 되면,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 떠오른다.      

그날의 대답으로 평생 사랑을 약속하고, 지금껏 함께 살아온 시간들로 채워졌다.


혼자만 알았던 세상에서 모두 함께 살아가는 세상으로 변했다. 또 다른 가족들을 챙기고 보살피고, 작고 여린 아이들을 키워가는 세상으로 변했다.


갓 태어나 꼬물거리던 아이들이 이제 엄마 키만큼 자라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뒤돌아보니 그 기억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소중하다. 가끔 내가 원하던 세상이 아니라고 투정과 불평도 하긴 하지만, 함께 행복을 만들어가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한 삶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만큼 앞으로의 시간이 어떻게 채워질지 더욱 기대된다.      



함께 헤쳐 나가면서 돈독해지는 삶으로의 변화.


아내 및 엄마로서의 인생은 바로 2012년 6월,

그날의 프러포즈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날, 남편의 용기가 새삼 더 고마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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