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문턱에서, 아이와 나
그동안 엄마말을 고분고분 따르진 않아도 기본적으로 잘 듣고 행동하던 아이였다. 어린 시절 말썽 한번 부리지 않아 "첫째가 이렇게 순하니 둘째도 금방 가질 수 있었던 거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얌전함의 표본이었다. 육아가 결코 쉽진 않지만,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자라온 게 사실이다.
코로나 시대의 불안 속에서도 잘 버텼고, 초등학교 생활도 무난히 해냈다. 밖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아이였기에 담임선생님께서 "성실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의 부모님이 궁금했다"라고 하실 정도로 과분한 아이였다.
그러나 초등 4학년 후반부터 아이가 달라졌다. 선배맘들의 이야기처럼 '눈알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화를 내는 건 기본이고, 한번 폭발하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러웠고, 당황스러웠다. '벌써 사춘기가 시작했나?'싶은 걱정이 몰려왔다.
매일 저녁, 크고 작은 싸움이 이어졌다. 해야 할 일들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학원과 방과 후 활동에도 꼭 5분~10분씩 늦기 일쑤였다. 결국 선생님들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일하는 중에 아이가 연락도 되지 않은 채 학원에 가지 않으면 불안감이 커졌다.
내 휴대폰이 망가져 초기화가 되면서 아이가 오랜 시간 쌓아온 게임 기록이 사라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이는 순간적으로 폭발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를 내며 울부짖었다. 나 역시 너무 충격받았고, 순간적으로 무서웠다. 결국 크게 혼을 냈고, 남편까지 나서서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했다. 아이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듯 보였지만, TV에서 보던 '금쪽이' 같은 모습이 떠올라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상담하는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그리 걱정스러운 상황은 아니라는 말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처음으로 집에서 아이와 마주하는 것이 솔직히 두렵기 시작했다. 물론 이후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엄마에게 애교 부리는 아들의 모습 속에서 흔한 사춘기의 모습은 아닌 듯싶은 마음에 한시름 놓기도 했다.
평범했던 주말아침, 결국 일이 터졌다. 아이의 소중한 레고작품이 부서지는 바람에 아이는 또다시 폭발했다. 나 역시 그동안 참았던 감정이 터지면서 남아있던 레고마저도 부서 버렸다. 예상치 못하게 사소한 문제가 큰 사건으로 번진 일이었다.
서로 계속 이어진 싸움 끝에 순간, '이렇게 싸우다간 아이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진정을 위해 나는 그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기로 했다. 이미 폭발하는 아이에게 더 이상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온 가족이 함께 마트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평소 외출을 싫어하던 아이였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밖에 나와 감정을 추스르는 동안,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진정시키는 데에도 한참이 필요했다. 그 덕분에 오히려 둘째는 엄마 아빠와 쇼핑을 하며 기분 좋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계속 아이 생각뿐이었다.
'아이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괜히 노심초사했다.
몇 시간이 지나도 아이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배고프면 연락하던 아이였는데, 오히려 조용하니 걱정이 커졌다. 그럼에도 괘씸한 생각이 들어 섣불리 집에 들어가지 않고 조금 더 시간을 보냈다.
어두워질 무렵, 조심스럽게 집에 들어섰다.
난장판이었을 거라 예상했던 집 안은 오히려 깨끗했다.
아이는 평온한 얼굴로 레고를 다시 조립하고 있었다. 반가운 듯 보였지만 티 내지 않고 있었고, 나 또한 내색하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은 흔적이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저녁을 차려주니 조용히 와서 먹었다.
그러다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 죄송해요. 아까는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요."
그 순간 마음이 찡했다. 나 역시 잘못한 부분이 있었기에 사과했다. 서로의 기분을 풀고 나서, 나는 물었다.
"집에서 혼자 뭘 했어?"
아이는 감정을 다스리려고 일기장에 두서없는 글을 써 내려갔다고 했다. 슬쩍 보니 휘갈겨 쓴 글씨 속에 온갖 화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러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방이 엉망이 되어 있더란다. 정신을 차리고 방을 정리한 후, 침대에 앉아 가만히 책장을 바라보다가 <어린 왕자>가 눈에 띄어 읽었다고 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책을 읽고, 배가 고파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고, 부서진 레고를 다시 맞추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혼자 있는 게 더 좋았어."라는 말을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는 이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진 것이다.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 아이의 방법을 보며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만약 폭발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밖으로 뛰쳐나갔다면?'
사춘기 시절, 부모와 아이가 부딪힐 때 잠시 그 순간을 피해 있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만, 오히려 어른이 잠시 외출하는 것이 더 안전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이 왜 그리도 마라톤과 운동에 집중하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얼핏 느낄 수 있었다.
사춘기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관련 서적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호르몬 변화로 인해 스스로도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 시기, 아이를 자극하지 않고 바라봐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이후, 아이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변화가 생겼다. 오히려 조금 돈독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전처럼 폭발적인 감정 분출은 보이지 않았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서로 거리를 두는 방법을 터득했다. 또한, 평온할 때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겪은 일에 대해 대화를 통해 미리 이해도를 높여가며 감정을 조절하고 있다.
때때로 나는 아이들에게 농담처럼 미리 말한다.
"사춘기를 이기는 건 갱년기야. 엄마도 곧 갱년기가 올 테니 미리 마음의 준비하고 있어."
그러나 내 진짜 두려움은 아들의 사춘기와 딸의 사춘기가 겹치는 순간이다. 성향이 정반대인 두 아이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춘기를 맞이할 것이기에,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상한다.
그래도 사춘기는 독립적인 삶을 향한 귀한 과정임을 인정하며, 아이와 함께 잘 버텨 나가길 바라본다.
사춘기가 힘든 시간이 아닌, 성장하는 시간으로 남길 간절한 마음을 담아보며.
너도 나도 사춘기 시절 잘 맞이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