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학 독서

by 이제이

독서와 글쓰기, 특히 논설과 논술은 닮은 듯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논설은 자신의 주장과 근거를 조리 있게 밝히는 글이고, 논술은 독자가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논리와 표현을 담아내는 글이다. 아이들에게 이 두 가지 글쓰기를 지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어휘와 문장력, 그리고 독해력에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특히 전래동화나 고전 속에서 무수히 등장하는 단어를 모르면, 글 읽는 재미조차 사라지고 만다. 학교와 학원에 쫓겨 바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직접 경험을 쌓을 시간은커녕, 책을 통한 간접경험조차 부담으로 다가오는 현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숨이 막혀온다.
“내가 뛰놀고 싶을 때 마음껏 뛰놀 수는 없는 걸까?”라는 물음이 절로 떠오른다. 낮잠이 쏟아지는 오후에도 도장으로 향하고, 피아노보다는 도서관 창가에서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싶을 때조차 부모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의 그림자 속에 갇힌 듯하다.



수업에서 만난 아이들

4학년 수업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소설이지만 배경이 당나라 시절인 글을 함께 읽고 토론하던 중, 한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생님, ‘읍’이 뭐예요?”
“환쟁이는요? 환칠 은요? 당경은요? … ‘황공무지로소이다’는 또 무슨 뜻이에요?”

나는 잠시 멈췄다. 이 아이에게 이 글이 과연 흥미로웠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이의 표정이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직접 다시 읽어주며,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동그라미를 치고 함께 이해해 가자고 했다. 그제야 아이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또 다른 날, 2학년 모의 수업 중 한 친구가 ‘구두쇠’라는 단어를 모른다고 했다.
“구두쇠는 돈이나 재물을 아끼는데 지나칠 정도로 아까워하는 사람이야. 낮춰서 부르거나 놀릴 때 주로 쓰지. 스쿠루지 할아버지 알지?”
“아, 스쿠루지 할아버지요?”
“맞아. 아니면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나오는 자린고비처럼.”
“자린고비요?”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응, 너무 아껴서 밥 한 숟가락에 반찬 대신 천장에 매달린 굴비를 보기만 하며 밥을 먹는 분이야.” 아이는 깔깔 웃으며 금세 이해했다. 낯설었던 단어가 생활 속 장면으로 연결되자 단어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론: 비문학 독해력의 필요성

아이들이 자라서 결국 넘어야 하는 관문은 수능이다. 수능 국어 영역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비문학 독해력이다. 수학 문제를 풀면서 함수 그래프는 알지만, ‘팔꿈치’를 영어로 elbow라 하지 못하는 것처럼, 개념과 단어의 선후가 뒤바뀐 듯한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비문학은 단순한 교과서 지식이 아니다. 과학, 역사, 철학, 사회, 예술 등 인류가 쌓아온 지적 유산을 글로 접하는 훈련이다. 그 세계를 읽고 이해하는 힘을 기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부모들이 먼저 자각해야 한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사고의 힘을 기르고,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고할 만한 비문학 도서 분야

1. 과학 분야

세상을 설명하는 논리적 글 읽기를 키울 수 있음.

예: 《코스모스》(칼 세이건), 《생각의 탄생》(로버트 루트번스타인).



2. 역사·철학 분야

인류의 경험과 사유를 통해 비판적 사고를 확장할 수 있음.

예: 《소크라테스의 변명》(플라톤),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3. 사회·시사 분야

현실 문제를 다각도로 해석하는 힘을 길러줌.

예: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토드 부크홀츠).



4. 예술·인문 교양 분야

언어의 감각을 키우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힘을 줌.

예: 《보이는 것은 아름답다》(알랭 드 보통), 《예술의 역사》(E.H. 곰브리치).



맺음말

비문학 독서는 단순히 시험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을 이해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힘이다.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세상의 복잡한 질문들 앞에 섰을 때, 단어 하나에 막히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부모와 교사가 함께 그 시간을 열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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