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인생2막 08화

8화 – 사업 파트너와의 갈등과 화해

by 이제이

CUT 01. 침묵 속의 균열

INT. 한주원의 사무실 – 오전 9시.

사무실 한쪽 유리창으로 햇살이 조용히 비치고 있다. 창가 근처의 큰 테이블 위엔 아침 회의 준비를 하듯 서류 뭉치와 노트북, 커피 잔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윤서는 의자에 반쯤 기대어 앉은 채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말끔한 정장 차림, 메모를 손으로 적는 습관은 여전하다.

한주원이 들어오며 커피를 내려놓는다. 밤새 고민한 듯 눈가가 약간 부어 있고, 셔츠는 구겨져 있다. 말없이 커피 한 잔을 윤서에게 건넨다.

윤서
(모니터를 본 채 조심스럽게)
지난 강연 피드백 정리해 봤어요.
실행 전략 파트가 좀 추상적이라는 의견이 꽤 많더라고요. 이 부분, 조금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주원
(고개를 끄덕이며, 잔잔하게)
네, 예상은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 ‘추상성’이 강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걸 원하신다면 기술서적을 보면 되니까요.
우리는 조금 다른 흐름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윤서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맞아요, 흐름도 중요하죠.
근데 현장에서는 “그래서 나는 뭘 어떻게 하라는 건데요?”라는 질문이 계속 나와요.
들을 땐 고개를 끄덕였지만, 돌아서면 실행이 막막한 구조거든요.

주원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저희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지시’는 아니니까요.
참여자들이 자기 맥락에서 해석하고 적용할 여지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너무 세세하게 가면 오히려 틀에 갇힐 수도 있거든요.

윤서
(조금 침묵하다가, 목소리를 낮춘다)
저는… 실행을 도와주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현장 교사들이 그 흐름을 따라가게 하려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적. 주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윤서를 바라본다.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고,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윤서 역시 모니터를 돌려 보이며 설명하려다 멈춘다.)

윤서 (내레이션)
그 순간, 뭔가 또 어긋난 기분이었다.
나도 그도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확신과 선이 뚜렷하게 있었다.
말하지 않는 건 배려라고 믿었던 적도 있었지만,
침묵은 종종 오해를 만들고, 오해는 서서히 골이 되어간다.

주원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윤서 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한번 수정해 보죠.
제가 너무 제 방식에만 몰입했나 봅니다.

윤서
(작게 웃지만 어딘가 씁쓸한 표정)
아니에요. 같이 고민해 보면 되죠.
우리… 팀이니까요.

(둘은 말을 잇지 않는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카메라는 천천히 멀어지며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을 남긴다.)




CUT 02. 부드러운 충돌

INT. 교육사업 제안 발표 하루 전, 윤서의 집 거실 – 밤 11시경.

윤서가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다. 조용한 집, 책상 위에 펼쳐진 제안서 원고와 노트북 화면. 거기엔 윤서가 수정한 사업 기획안의 최종 버전이 열려 있다.
그 순간, 주원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주원 메시지 톡 화면]
“윤서 씨가 올려주신 안 수정 조금 했습니다. 제 기준대로 정리한 버전 드렸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윤서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진다. 파일을 열어본다.
수정한 대부분의 내용이 되돌려져 있다. 실행 전략 파트는 다시 ‘개념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고, 윤서가 공들여 넣은 현장 중심 가이드라인은 삭제되었다.

윤서
(혼잣말처럼)
‘수정’이 아니라… 거의 되돌린 거잖아.

INT. 영상 통화 – 윤서와 주원

잠시 후, 윤서는 전화를 건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화면 속 주원이 응답한다.

윤서
(조심스럽게)
제안서 봤어요. 주원 씨가 수정하신 버전으로 발표하실 건가요?

주원
(조용히)
네. 윤서 씨 안도 훌륭했지만, 저희 브랜드 방향하고 조금 거리가 있어서요.
제가 처음에 그린 프레임이기도 하고요. 발표는 제가 맡는 거니까, 큰 틀은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윤서
(목소리 낮지만 단단하게)
하지만 그 안은 단순히 제 의견이 아니라, 지난 몇 주간 현장 피드백을 반영해서 정리한 거예요.
그걸 다 빼면, 결국 현장하고 또 멀어지게 되잖아요.

주원
(약간 눈길을 피하며)
알고 있어요. 그래서 몇몇 포인트는 따로 언급할 생각이에요.
윤서 씨가 의도한 취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윤서
(숨을 내쉬며)
이해하는데 왜 뺐어요?
저, 제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잘 안 들어요.
‘내가 발표하니까 내 방식대로 하겠다’는 말, 솔직히… 너무 일방적으로 들려요.

(정적. 주원의 표정이 굳는다. 대답 대신 입술을 다문다.)

윤서 (내레이션)
말이 통하지 않을 땐 말보다 눈빛이 더 큰 벽이 된다.
그 벽을 넘으려는 시도조차, 지금은 서로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 조심스러움이, 때론 더 멀어지게 만든다.

주원
(조심스럽게)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윤서 씨 의견, 제가 너무 쉽게 판단한 것 같아요. 미안합니다.

윤서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엔… 최소한 같이 얘기하고 바꿨으면 해요.
우리, 공동 대표잖아요.

(주원의 화면이 끊기고, 윤서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 조용히 노트북을 덮는다.)




CUT 03. 말 없는 거리, 말 걸어주는 사람

INT. 공동 사무실 – 다음 날 오후

다음 날, 윤서와 주원은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둘 사이엔 어제의 대화 이후, 확연한 거리감이 흐른다.

윤서는 조용히 자신의 책상에서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주원은 옆방 회의실에서 ZOOM 회의를 진행 중이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윤서의 표정은 그 목소리를 상상하고 있는 듯 복잡하다.

윤서 (내레이션)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는 일.
그건 참 익숙한 감정이었고, 낯선 거리였다.
어쩌면 우린 ‘같이’보다 ‘조심’에 더 익숙해진 건 아닐까.

회의실 문이 열리고, 주원이 나와 윤서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다.

주원
(딱딱한 말투)
이따 오후 다섯 시, 클라이언트 미팅 같이 가실 수 있죠?

윤서
(고개만 끄덕이며)
네. 준비해 둘게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대화가 끝난다. 주원은 다시 휴게공간 쪽으로 걸어 나간다.)

INT. 같은 시간 – 사무실 내 휴게공간

윤서가 커피를 내리러 들어간다.
그곳에 민서, 독서모임에서 처음 인연을 맺고 지금은 윤서와 종종 연락하는 멘토 겸 친구 같은 언니가 와 있다.

민서
(웃으며)
오~ 이윤서 씨. 얼굴에 오늘 뉴스가 다 쓰여 있네?
뭐야, 어제 한주원 씨랑 싸운 거야?

윤서
(피식 웃으며)
싸운 건 아니고… 음, 조용히 다투었다고 해야 하나.
의견 차이? 아니, 그냥… 내가 괜히 예민했던 걸 수도 있고.

민서
(커피잔 내려놓으며)
윤서야, ‘괜히 예민했다’는 말, 지금 마음 무시하는 말이야.
누군가가 선을 넘었을 땐 그걸 ‘예민해서 그랬다’고 말하면,
계속 넘어요.
주원 씨가 넘었다는 게 아니라…
넌 그냥, 널 좀 믿어야 해.

윤서
(가만히 민서를 바라보다가)
내가 수정한 제안서, 그대로 되돌아왔거든.
그냥, 말 한마디 없이.
나를 ‘같이 하는 사람’으로 보기보다…
그냥 ‘보조자’로 보는 거 같았어.
근데 그 말이 입 밖으로 안 나와.
왜냐면… 우리 사이가 깨질까 봐 무서워서.

민서
(조용히 웃으며)
윤서야, 깨지는 관계는 그렇게 쉽게 안 깨져.
정말 소중한 관계는, 서로 말할 때 오히려 더 단단해져.
침묵은, 진짜 배려가 아니야.
때론 네 입으로 말해줘야 상대도 깨달아.

윤서
(커피 잔을 들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내가 ‘조심스럽게 배려했다’고 생각한 그 침묵,
어쩌면 그냥… 도망이었을 수도 있어.

민서
(잔을 들며)
그럼 이제 도망 말고 말해.
너 그거 잘하잖아. 조곤조곤, 논리 있게, 그리고 따뜻하게.

(조용히 미소 짓는 윤서. 그녀의 표정에, 말할 준비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CUT 04. 풀리는 마음, 웃음이 먼저였다

INT. 교육 미팅 후, 근처 조용한 식당 – 저녁 7시 반.

조용한 식당 안, 윤서와 주원이 나란히 앉아 따뜻한 조명을 받고 있다.
테이블 위엔 주문한 음식이 놓이고, 윤서는 물 잔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말을 고르는 윤서의 눈빛이 조심스레 흔들린다.

윤서
(숨 고르며)
주원 씨, 하나 물어볼게요.
그날… 제안서요.
혹시 제가 만든 안이… 너무 답을 정해둔 느낌이었을까요?

주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음… 그런 느낌은 좀 있었어요.
윤서 씨 안, 정말 잘 만든 건데…
저는 약간 '열린 흐름' 쪽을 더 선호해서요.
정해진 길보다, 각자가 길을 찾아가는 방식.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다른 걸음이랄까요.

윤서
(고개를 끄덕이며)
네, 알아요.
그날은 알면서도… 괜히 서운했어요.
제가 공들여 정리한 것들이 다 빠져 있는 걸 보니까,
‘같이 만든다’는 느낌이 좀 흐릿해지더라고요.

(말을 이어가며 손으로 테이블 위에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자연스레 옆에 하나 더 챙겨 내려놓는다. 윤서는 계속 말에 집중한 채 눈치채지 못한다.)

윤서
그러면서도 말은 못 하겠고,
그냥… 넘기기엔 마음이 걸리고.
어느 쪽이든 내 쪽에서 뭐가 틀어지겠지 싶고…
그게 좀 그랬어요.

(잠시 정적. 음식이 놓이고 주원이 숟가락을 들려다 말고,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살짝 웃는다.)

주원
(미소 지으며)
이런 식으로까지 배려해 주실 줄은 몰랐네요.

윤서
(의아하게)
네?

주원
(숟가락을 가리키며)
저한테 숟가락 두 벌 주신 거, 저도 챙기라는 뜻인가요?
나중엔 수저통도 맡기실 듯한 분위기인데요?

윤서
(자신도 모르게 내려다보며)
...어?
(자신이 놓은 두 벌의 숟가락을 보고 깜짝 놀라며)
어머나, 진짜?
하하하하… 세상에, 나 왜 이랬지?

(그 말을 끝으로 윤서가 웃음을 터뜨린다. 당황과 민망함이 섞인 표정. 주원도 참지 못하고 같이 웃는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소리 내어 웃는다.)

주원
역시 윤서 씨답다. 대화하면서 멀티로 배려까지.
이거 일부러였으면 감동인데요?

윤서
(웃으며 고개 절레절레)
아뇨 아뇨, 아니에요. 그냥… 말하면서 나도 몰랐어요.
진짜 오늘 내가 제일 웃긴다.
숟가락 숟가락 놓고선 정작 내가 모르고 있었네.

주원
그래도 덕분에 분위기 확 풀렸네요.
말보다 숟가락이 화해의 시작일 줄이야.

윤서
(웃으며 젓가락을 집는다)
다음부턴 젓가락 세 벌 내려놓고 시작해야겠어요.
확실한 시그널로.

(두 사람의 웃음이 잦아들고, 편안한 공기가 식탁 위에 번진다. 이제야 진짜 ‘밥을 함께 먹는 사이’로 돌아온 듯한 분위기.)

윤서 (내레이션)
그래, 다툼에 이기고 지고가 중요한 게 아니더라.
서로 죽을 듯 따지고 싸워도,
어이없이 웃어버리면
왜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사르르… 화가 녹아버리곤 하지.
그러니 더 중요한 걸 선택하는 것보다
무엇을 만들든,
만들어 내고… 잘 가꾸어 가는 게
더 행복한 선택일지도 몰라.

(카메라는 천천히 멀어진다. 웃음이 식탁에 남아 있고, 조용한 피아노 선율이 화면을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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