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인생2막 06화

06화 - 교육 콘텐츠 기획의 시작

by 이제이

CUT 01.


장면: 작은 시골 초등학교 교무실. 교장 선생님과 주원, 윤서가 마주 앉아 있다. 책상 위엔 지역 교육청에서 제안한 방과 후 돌봄 프로젝트 기획서가 놓여 있다.


교장

(안경을 고쳐 쓰며)

"이 프로젝트, 사실 저희 학교 입장에선 기회예요. 아이들도 점점 줄고, 부모님들도 걱정이 많거든요. 방과 후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울 수 있다면… 정말 고맙죠."


윤서

(진지하게 메모를 하며)

"아이들이 책과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접근하면 어떨까요? 단순히 돌봄이 아니라, 정서적 공감까지 연결되는… 그런 콘텐츠요."


주원

(고개를 끄덕이며)

"윤서 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희 출판사도 단순한 독서 교육을 넘어서, 마을 전체가 함께 키우는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함께하고 싶어요."


교장

(웃으며)

"두 분이 함께라면 뭔가 제대로 만들어질 것 같네요. 기대할게요."


내레이션 (윤서)

『작은 학교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그건 어쩌면 우리의 진짜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CUT 02.


장면: 마을 회관. 윤서와 주원이 마을 어르신, 학부모들과 설명회를 연다. 칠판에는 '아이와 마을을 잇는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윤서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로)

"아이들이 매일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드릴 거예요. 마을 어르신들의 삶도 아이들에게 이야기로 전달되면 좋겠어요. 삶이 담긴 교육이니까요."


주원

"출판사 쪽에서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엮어 작은 책으로 만드는 작업까지 함께 할 예정입니다. 이건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마을 기록이기도 해요."


한 어르신

(눈시울이 붉어지며)

"애들하고 이야기 나눌 날이 오긴 오네요. 이렇게 누가 와서 우리 얘길 들어주다니."


내레이션 (윤서)

『그날 처음 알았다. 교육은 커리큘럼 이전에 마음을 여는 일이라는 것을.』




CUT 03.


장면: 윤서와 주원이 함께 기획안을 수정하고 있다. 작은 사무실, 벽에는 도표와 아이디어 스케치가 가득하다.


윤서

(의자에 다리를 모으고 앉아 진지하게)

"이 부분, 그냥 독서 활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연극이나 만화로 확장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표현 방식이 다양한 아이들이 있으니까."


주원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요. 제가 아는 일러스트 작가 분도 한번 섭외해 볼게요. 윤서 님은 연극 관련 쪽 네트워크도 있나요?"


윤서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다)

"있죠. 아들 학교 학예회 무대 설계하면서 알게 된 분들 몇 있어요. 연극도 은근히 제작 같더라고요."


주원

(웃으며)

"그럼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작은 창작 집단이 되는 셈이네요."


내레이션 (주원)

『그녀와 함께하는 일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깊었다. 언제 이렇게 웃고 있었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빠져들고 있었다.』




CUT 04.


장면: 밤.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고, 윤서와 주원이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작업 중이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다.


윤서

(하품을 하며)

"밖에 비 엄청 오는 거 알아요? 오늘 안에 끝내야겠죠?"


주원

(창밖을 바라보다가 웃는다)

"글쎄요, 오늘은 그냥 여기서 밤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고립됐달까."


윤서

(살짝 긴장하며 웃는다)

"어머, 고립이라니. 그 말 너무 낭만적이에요."


주원

(웃으며 눈빛을 던진다)

"혹시, 낭만을 싫어하진 않죠?"


윤서

(시선을 피하며)

"음… 그런 건 아닌데, 낭만이 사람을 흔들게 하니까. 좀 조심해야죠."


내레이션 (윤서)

『그날 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작업에 몰두했지만, 말보다 많은 것들이 오갔다. 눈빛, 웃음, 그리고 숨결.』




CUT 05.


장면: 다음 날 아침, 사무실. 어젯밤을 지새운 흔적들 — 빈 커피컵, 펴진 노트북, 여기저기 흩어진 메모들. 윤서가 소파에서 살짝 꾸벅꾸벅 졸다 깬다. 그 순간, 주원이 조용히 커피를 들고 다가온다.


주원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금만 더 자도 돼요. 커피는 따뜻하게 데워놨고.”


윤서

(눈을 비비며 앉는다)

“아… 진짜 밤샜네요. 머리가 띵해요. 근데… 좋았어요. 뭔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


주원

(잔잔히 웃으며)

“살아있는 시간. 그런 거였죠. 어젯밤.”


내레이션 (윤서)

『함께 만든 시간은 고단함 속에도 생기를 품었다. 그는 자주 웃었고, 나는 자주 안심했다. 그 안심이 주원이란 사람의 온도였다.』




CUT 06.


장면: 점심 무렵, 작은 시골 마을 카페. 윤서와 주원이 나란히 앉아 방과 후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구성안을 검토하고 있다. 창밖으로는 햇살이 따사롭고, 카페 한쪽에는 마을 아이들이 웃으며 지나간다. 커피잔 사이로 메모와 책이 엉켜 있다.


윤서

(수첩을 뒤적이며)

“제가 생각한 건요. 매주 하나의 책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짧은 연극처럼 발표도 해보는 거예요. 그러면 읽기와 말하기, 협업까지 다 들어가잖아요.”


주원

(진지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그 흐름이면 초등 고학년은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 거예요. 특히 발표 중심의 표현 활동은 자신감을 키워주죠.”


윤서

“그렇죠. 사실… 준이도 발표 울렁증이 있었거든요. 그런데요, 지난 학기 학교에서 독서논술 발표하면서 그걸 조금씩 깨더라고요. 나름 자랑이에요.”

(말끝에 웃는다)


주원

(미소를 머금은 채 윤서를 바라본다)

“아드님 얘기하실 때마다 눈빛이 확 바뀌어요. 아마 준이도 그 사랑 다 느낄 거예요.”


내레이션 (주원)

『그녀가 아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숨을 멈췄다. 눈빛이 말보다 앞섰다. 무심한 듯 진심을 품고 있는 그 눈빛. 그게, 윤서였다.』


윤서

(약간 수줍게 웃으며 말 돌린다)

“이번 기획안은 주원 씨 아이디어도 반영돼야 해요. 출판사가 가진 자원들, 그건 또 다른 힘이잖아요.”


주원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사실 이 프로젝트, 시작은 교육이지만… 끝은 문화예요. 아이들에게 책은 도구고, 표현은 삶의 방식이 되니까.”


윤서

“좋다, 그 말. 지금 메모해요. 나중에 기획서 맨 앞에 넣죠.”


주원

(펜을 들고 무언가 적으며)

“지금 이 말이요? ‘책은 도구고, 표현은 삶의 방식이다’… 어때요, 윤서 씨. 슬로건으로.”


윤서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미소 짓는다)

“조금만 더… 감칠맛을 더하면 완벽할 듯.”


내레이션 (윤서)

『우리는 말장난을 주고받으며도 본질을 나누고 있었다. 가벼운 웃음 사이사이로, 묵직한 생각이 오갔다.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속도, 그게 지금 이 대화의 온도였다.』


주원

(잠시 침묵 후, 조심스럽게)

“윤서 씨. 예전에… 어떤 책 한 권 때문에 밤새 운 적 있나요?”


윤서

(놀란 듯 주원을 바라본다)

“…그 말, 저도 가끔 해요. 저는 『태엽 감는 새』를 읽고 그랬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그 밤이 지금도 기억나거든요.”


주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요. 같은 책이에요. 저는… 전혀 다른 이유였겠지만.”


내레이션 (윤서)

『그렇게 하나의 책이, 하나의 밤이, 두 사람의 시간을 연결해 주었다. 몰랐던 우연이, 닮은 기억이 되어 고개를 들었다.』




CUT 07.


장면: 카페에서 나오며 마을 작은 도서관 쪽으로 걷는 윤서와 주원. 초여름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고, 바람이 부드럽게 두 사람을 감싼다. 책 한 권이 주원의 손에 들려 있고, 윤서는 어깨에 가볍게 토트백을 걸쳤다.


윤서

(걷다가 주원이 든 책을 힐끔 본다)

“『태엽 감는 새』… 진짜 좋아하나 봐요. 이렇게까지 닳은 책은 처음 봐요.”


주원

(책을 쳐다보며 웃는다)

“거의 십 년은 넘었어요. 어릴 땐 무서워서 덮었고, 스물 중반엔 이유 없이 울었고… 요즘은 그냥, 내 얘기 같아서 좋아요.”


윤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 문장 있었죠. ‘파괴되는 것만이 새로운 문을 연다’… 그 문장이, 한동안 저를 버티게 했어요.”


주원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그녀를 바라본다)

“저도요. 그 문장이 마음 한가운데를 쿡 찔렀던 밤이 있어요. 누군가에게 똑같이 기억된 문장을 듣는 게… 이렇게 반가운 일일 줄 몰랐네요.”


내레이션 (주원)

『우린 이미 오래전 같은 문장을 품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알지 못했지만, 그 닮음이 지금, 묘하게 따뜻했다.』


윤서

(조금 쑥스러운 듯 걸음을 다시 옮긴다)

“책 한 권이 사람을 이렇게 연결시킬 수 있군요. 제가 혼자 느낀 감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주원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좋은 거예요. 아이들한테도 그런 책 한 줄, 문장 하나가 남을 수 있잖아요.”


윤서

(눈을 가늘게 뜨며 살짝 웃는다)

“책 속 문장으로 연결된 사람들… 들으면 좀 낭만적인데요?”


주원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혹시, 낭만을 싫어하진 않죠?”


윤서

(같은 농담을 돌려주듯 웃으며)

“그 대사, 두 번째예요. 주원 씨.”


주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 걸렸네요. 자주 쓰는 말인데… 왜 그랬을까요.”


내레이션 (윤서)

『낭만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말 안에 숨겨진 마음이 궁금해졌다.』


윤서

“자, 이제 진짜 일 이야기해요. 다음 주 시범 수업 준비도 해야 하잖아요.”


주원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맞아요. 근데 윤서 씨… 그 수업 말인데요, 아예 저랑 공동 진행 어떠세요?”


윤서

“같이요?”


주원

“책 선정부터 구성까지 같이 하면, 아이들한테도 더 다채로운 시선이 닿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윤서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요. 그럼 이 프로젝트, 우리 둘 이름 다 들어가는 거예요?”


주원

“그럼요. ‘윤서 & 주원 기획’… 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갑니다.”


내레이션

『어깨가 살짝 맞닿았다. 아무렇지 않게 걷는 이 거리에서, 우리는 조금씩 함께라는 말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CUT 08.


장면: 시골 마을의 작은 공립학교 도서실. 교장 선생님이 협조해 준 덕에, 방과 후 빈 공간을 시범 수업 준비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교탁 앞, 커다란 화이트보드. 한쪽엔 윤서가 가져온 스케치북과 포스트잇들이 펼쳐져 있고, 다른 한쪽엔 주원의 노트북과 전자책 단말기가 자리 잡았다.


내레이션

‘처음의 약속은 단순한 프로그램 구상이었다. 하지만 함께하는 준비는 점점 더 단단한 무언가로 변해갔다. 교육, 기획,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기류.’


윤서

(아이디어를 메모하며)

“책은 『아몬드』로 해보면 어떨까요? 감정에 대한 이야기니까 아이들과 나누기 좋고… 또 주제 토론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겠어요.”


주원

(윤서의 말을 받아 적으며)

“좋아요. 주인공 윤재가 감정을 배워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아이들한테 큰 울림이 될 거예요. 특히 사춘기 아이들이라면 공감도 크고요.”


윤서

“그리고 마지막 활동은 ‘나의 감정사전 만들기’ 어때요? 감정을 단어로 정의하고, 나만의 문장으로 적어보는 활동. 감정 어휘가 풍부해지면 표현도 달라지니까요.”


주원

(눈을 반짝이며)

“이거 정말 좋아요. 윤서 씨, 아이들 교육에 진심이네요.”


윤서

(웃으며 어깨를 으쓱)

“아무래도… 매일 사춘기랑 살다 보니, 저도 그 언어를 배워야 하더라고요.”


내레이션 (주원)

『그녀는 겉보기와 달리 매우 치밀했고, 동시에 부드러웠다. 논리와 감성을 동시에 품은 사람. 나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배우고 싶어졌다. 단지 업무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원

(화이트보드 앞에서 포스트잇을 붙이다가)

“근데… 우리 되게 잘 맞지 않아요?”


윤서

(고개를 갸웃하며, 장난스럽게)

“글쎄요, 제가 맞춰드리는 걸 수도 있고요?”


주원

(눈을 마주치며)

“음, 아닐걸요. 이런 건… 애써도 안 되는 거니까.”


윤서

(잠시 그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웃는다)

“자, 다시 집중. 감정사전 예시를 몇 개 뽑아보죠. 제가 쓰면, 주원 씨가 피드백 주세요.”


내레이션 (윤서)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의 감정을 가르치며 스스로의 감정도 배우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주원

(진지하게 메모를 바라보다가)

“윤서 씨, 이 프로그램… 단순히 학교 수업에 그치지 않게 해 봐요. 전국에 있는 작은 학교, 돌봄이 필요한 마을에도 퍼질 수 있도록.”


윤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그럴 수 있겠네요. 여기서만 끝내긴 아쉬운… 무언가가 자라고 있는 기분이에요.”


주원

“맞아요. 그게… 씨앗인지, 꽃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내레이션

‘책상 위에는 아이디어 메모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햇살이 창을 타고 넘어오고, 서로의 목소리가 겹치는 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 얘기였지만, 그 안엔 조금씩 서로의 언어도 자라나고 있었다.’




CUT 09.


장면: 오후 늦게. 도서실의 채광이 점점 노을빛으로 바뀌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손글씨 메모, 마커 펜, 스케치 자료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윤서는 무릎 위에 놓인 노트를 내려다보고 있고, 주원은 뒤로 기대앉아 눈을 감은 채 살짝 미소 짓고 있다.



윤서


(한숨을 쉬며 웃는다)


“이 정도면 대학 강의 하나 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주원


(눈을 살짝 뜨고)


“그러게요. 근데 강의보다 아이들이 더 어려운 건 아시죠?”



윤서


“당연하죠. 아이들 반응은 예측 불가예요. 말 한마디로 울기도 하고, 갑자기 질문 폭탄 떨어지고… 게다가 중2잖아요.”



주원


(고개를 끄덕이며)


“하, 준이도요?”



윤서


“네. 중2는… 약간 우주예요. 아무도 그 세계의 법칙을 몰라요.”



주원


(웃으며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그럼 이번 프로젝트의 부제는 어때요? ‘우주를 항해하는 어른들을 위한 감정사전’.”



윤서


(손뼉 치며 웃는다)


“어머, 괜찮은데요? 너무 좋아요. 우주, 감정, 아이들. 다 들어갔어요.”



내레이션 (주원)


『그녀의 웃음은 공간을 바꾸었다. 도서실의 조용한 공기가 더 따뜻하게 퍼졌다. 윤서가 웃을 때마다, 나는 어쩌면 내가 지금 옳은 길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원


(장난스럽게)


“윤서 씨, 생각보다 꽤 웃긴 사람이네요. 저는 되게 진지한 줄 알았어요.”



윤서


(찡긋 웃으며)


“제가 진지하죠. 엄청. 다만… 가끔 재밌게도 살고 싶어요.”



주원


“잘 어울려요. 그 균형.”



윤서


(그 말에 잠시 시선을 피하다 다시 노트에 시선을 준다)


“주원 씨는… 항상 차분하고 안정적이에요. 그래서 같이 일하면 불안하지 않아요.”



내레이션 (윤서)


『무심코 나온 말이었는데, 내 안에도 놀라움이 일었다. 그렇게까지 느끼고 있었구나. 그저 일로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주원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 감사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잠시 정적. 노을빛이 더욱 깊어진다. 책상 위의 그림자가 길어진다. 두 사람의 손이 서로 멀지 않게 놓여 있다.



주원


(갑자기 노트북을 닫으며)


“이제 우리, 팀 이름 정해야 하지 않겠어요?”



윤서


(어리둥절하게)


“팀… 이름이요?”



주원


“네. 윤서 & 주원이라니, 너무 법무법인 같잖아요.”



윤서


(웃음 터뜨리며)


“하하, 맞네요. 너무 정공법이긴 하네요.”



주원


“어때요, ‘공감책방’?”



윤서


“음… 약간 7080 감성인데요?”



주원


(장난스러운 투로)


“아니면 ‘무심한 듯 진심’?”



윤서


(웃다가 고개를 흔든다)


“그건 너무 시트콤스럽고요.”



주원


“그럼… ‘함께라는 문장’ 어때요?”



윤서


(잠시 멈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좋다. 그건… 좀 마음에 든다.”



내레이션


『함께라는 문장. 그 안에는 우정도, 믿음도,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까지 들어 있었다. 그런 시작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CUT 10.


장면: 마을 작은 학교 복도 벽. 커다란 게시판에 ‘함께라는 문장’ 프로젝트 소개 포스터가 붙어 있다. 윤서와 주원이 손수 만든 포스터.


아이들이 학교 복도를 지나가며 포스터를 바라보고 기대에 찬 표정을 짓는다.



내레이션


‘작은 마을에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함께라는 문장, 그 이름이 아이들 마음에 작은 씨앗처럼 심어졌다.’



아이1


(친구에게)


“우리 이번에 저 수업 듣는 거래!”



아이2


“맞아! 감정사전 만든대! 재미있을 것 같아!”



장면 전환: 교실 안. 아이들이 조용히 앉아 윤서와 주원을 기다린다.



내레이션 (윤서)


‘아이들의 눈빛은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빛났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새로워지는 듯했다.’



주원


(아이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부터 ‘함께라는 문장’ 팀과 함께할 거예요.”



윤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우리 함께 감정의 언어를 배우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만들어봐요.”



내레이션


‘아이들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수줍은 고개 끄덕임, 환한 눈빛이 한데 모였다.’



아이3


(손을 들며)


“선생님, 감정사전이 뭐예요?”



윤서


(따뜻하게)


“감정사전은 우리가 느끼는 마음들을 단어로 정리하는 거예요. 때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도 함께 나누고요.”



주원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든 감정사전은 여러분만의 특별한 책이 될 거예요.”



내레이션 (주원)


‘그날, 우리 모두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교육 콘텐츠의 시작이자, 관계의 첫 장이었다.’



윤서


(주원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 짓는다)


“이제 시작이네요.”



주원


“그래요. 우리 함께 잘해봐요.”




CUT 11.


방과 후 수업이 끝난 학교 교실. 해는 기울고, 창가에 드리운 빛줄기들이 책상 위를 스쳐 지나간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짐을 챙기고 나가자, 교실 안은 조용하고 나른한 공기로 채워진다. 윤서는 여전히 교탁 앞에 서서 교구를 정리하고 있고, 주원은 뒷자리에서 수업 내용을 정리한 노트를 덮는다.



윤서는 아이들의 마지막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듯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주원의 시선을 느끼고 돌아선다.



주원


(조심스럽지만 명확한 톤으로)


“윤서 씨. 오늘 수업, 정말 좋았어요. 특히 ‘불안은 위험을 알려주는 감정’이라는 설명… 아이들 눈이 반짝였어요.”



윤서


(미소를 머금고)


“그래요? 아이들한테 무거운 얘기일까 봐 조심했는데… 다행이네요.”



주원


“네. 그런데 한 가지, 혹시 괜찮다면… 다음 시간에는 ‘정리’되는 마무리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해요. 감정 표현에서 아이들이 깊이 빠지기 전에, 다시 생각의 흐름으로 이끌어줄 만한 마디랄까요.”



윤서는 잠깐 말을 멈추고 교탁 모서리에 교구 상자를 내려놓는다. 그의 말에 불편함은 없다. 다만, 그 조심스러운 조언이 자신이 정성껏 준비한 수업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듯해 어딘가 아릿하다.



윤서


(시선을 살짝 피하며)


“마디라… 정리요. 그게… 아이들의 감정 표현을 다시 틀 안에 넣는 거라면,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어요.”



주원은 당황한 기색은 없으나,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윤서의 표정을 읽으려는 듯, 그의 눈이 조용히 그녀를 따라간다.



주원


“틀이라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냥, 감정이라는 게 방향 없이 흘러가면 오히려 아이들 스스로 혼란스러울 수 있어서요.”



윤서


(침착하지만 약간 단호하게)


“혼란은 때로 성장의 과정이에요. 감정을 정확히 말할 수 있게 되는 건… 말이 아니라 스스로 경험한 불편함 덕분이니까요.”



내레이션 (윤서의 내면)


‘나는 그 수업을 밤새 고민하며 준비했다. 말도 단어도 조심스러웠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떠올리며 문장 하나하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너무 쉽게 조율되길 바라는 그의 말에 왠지 마음이 헛헛해졌다.’



주원은 윤서의 반응에 조금 놀란 듯 잠시 침묵한다. 하지만 곧 그의 목소리는 다시 조심스럽게 흐른다.



주원


“그런 의도가 있었군요. 제가 놓친 부분이었어요. 감정 교육이란 게… 저도 아직은 많이 배우는 중이라.”



윤서


(작게 웃으며)


“저도요. 다 처음이에요. 매번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고, 그래서 어렵기도 하고… 그렇지만, 오늘 아이들 얼굴을 보니까… 이 길이 맞는 건가 싶더라고요.”



내레이션 (주원 시점)


‘윤서가 그렇게 말할 때, 그녀의 눈은 흐리지 않았다. 단단했고, 슬프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엔 자신을 끊임없이 성장시키려는 어떤 믿음이 있었다. 나는 잠시,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주원은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눈빛에는 말보다 더 많은 말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말로는 하지 않는다. 감정을 담는 순간이 아닌 걸 알기 때문이다.



주원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그래도 오늘 수업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아이들한테도 저한테도 요.”



윤서


“고맙습니다. 다음 주 수업은 감정 뒤에 숨은 ‘욕구’를 이야기해 보려고요.”



주원


(작게 웃으며)


“아, 점점 더 어려워지네요.”



윤서


(장난스럽게)


“도망치셔도 돼요. 안 붙잡을게요.”



주원


“도망칠 생각 없는데요. 옆에서 계속 보고 배우고 싶어요.”



그 말에 윤서는 잠시 멈칫한다. 하지만 곧, 책상에 놓인 메모지를 들고 일부러 웃으며 화제를 돌린다.



윤서


“이거, 아까 아이가 떨어뜨린 것 같아서요. 혹시 내일 맡겨주실 수 있어요?”



주원은 말없이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인다. 창밖에 저녁노을이 잔잔하게 퍼지고, 교실엔 두 사람의 미묘한 공기만이 남는다. 말은 조심스럽고, 표정은 부드럽지만… 그 사이엔 설명되지 않은 온도가 흐르고 있다.



내레이션 (윤서)


‘어쩌면 우리는 지금,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해 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생각의 충돌은 불편하지만,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무언가는… 대화보다 더 진한 무언가였다.’



CUT 12.


장면: 늦은 밤, 학교 도서관 겸 회의실. 윤서와 주원, 둘만 남아 기획안을 다듬고 있다. 어둑한 조명, 책장 사이 조용한 공기. 잠깐의 침묵 끝, 다시 대화가 이어진다.


내레이션

시간은 어느덧 밤 9시를 넘기고 있었다. 방과 후 수업과 아이들 상담, 자료 정리까지 마친 후 둘은 그대로 회의실 한편에 앉아, 교육 콘텐츠 기획안을 검토 중이었다.

창문 밖엔 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고, 커피 잔 속에 미지근해진 온기만이 두 사람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주원

(화면 속 기획안을 보며)

“이 구간, ‘감정과 욕구를 연결하는 활동’에 들어갈 스토리텔링 예시, 지금 아이들 실제 사례로 바꿔보는 건 어때요?”


윤서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요. 오늘 수업에서 ‘감정 일기’ 쓴 아이들이 꽤 있었거든요. 그중 희진이 거… 엄마가 늦게 와서 속상했단 이야기. 그거 쓰면 좋을 것 같아요.”


주원

“그 아이… 약간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더라고요. 윤서 씨가 끌어내준 거겠죠?”


윤서

(조용히 웃으며)

“아이들 마음은 늘 말보다 앞서 있어서… 저는 그냥 그걸 따라가 본 것뿐이에요.”


주원은 윤서를 바라본다. 집중하는 눈빛. 하지만 그 안엔 말로는 다 담지 못할 존중과 무언가 가까워지고픈 마음이 교차한다. 눈을 떼지 못하는 듯 잠깐 시선을 머무는 주원. 윤서는 그 시선을 느끼고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웃는다.


윤서

“왜 그렇게 봐요?”


주원

(조금 당황한 듯 웃으며)

“아뇨, 그냥… 이렇게 밤까지 누군가와 교육 콘텐츠 만든 건 처음이라. 그리고… 편하네요, 이 시간도.”


윤서

(쓴웃음)

“교육 콘텐츠라니, 들을 땐 거창했는데… 막상 해보면 애들 감정 하나하나 쓰다듬는 일 같아요.”


주원

“그래서요. 그런 사람이 필요했어요. 애들 눈높이에 맞추되, 깊이를 놓치지 않는 사람.”


그 순간, 회의실 천장 형광등이 깜빡인다. 윤서가 놀란 듯 쳐다보고 주원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노트북을 덮고 전기차단기 쪽을 확인하러 가는 주원. 그가 없는 사이 윤서는 주원이 정리해 둔 기획안의 한 구절을 무심코 읽다가 문득 멈춘다.


윤서

(속으로)

“‘자존감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를 해석하는 힘이다’… 이 말… 어딘가 익숙한데…”


내레이션

그 문장은 그녀가 스무 살 무렵, 한참 마음이 흔들릴 때 밑줄 긋고 외우던 책 속 구절이었다.

이후에도 몇 번이나 마음속에서 되뇌며 버텼던 문장. 그걸 이곳에서, 이 사람의 문서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 순간, 주원이 돌아온다. 윤서의 시선을 눈치챈 주원이 묻는다.


주원

“그 문장… 아시죠?”


윤서

(천천히)

“그 책, 『어른의 자존감』… 맞죠?”


주원

(조금 놀란 듯)

“맞아요. 저 그 책… 10년 넘게 매년 다시 읽어요. 저한텐 어떤 기준 같은 책이라…”


윤서

(작게 웃으며)

“저도요. 그 문장, 저도 노트에 써서… 아직도 가끔 꺼내 읽어요.”


내레이션

그 짧은 공감 하나로, 두 사람 사이 어딘가 묘하게 조였던 실이 풀려나갔다. 감정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둘은 알고 있었다.

비슷한 시절, 같은 문장을 품고 버텨온 사람들이란 것을.


주원

(잔잔하게)

“그 책 속엔 ‘흔들릴 땐 제자리에서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라는 말도 나오죠.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윤서

“그러네요… 저도 오늘 그 말, 되게 위로가 되네요.”


잠깐의 정적. 하지만 편안한 정적.

주원은 자리로 돌아오며 조용히 다시 노트북을 연다. 윤서도 다시 펜을 든다.


그리고 한 마디.


주원

“이제… 우리 콘텐츠 이름도 정해야죠.”


윤서

“음… ‘우리’로 시작하는 건 어때요?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시간… 뭐 그런 식으로.”


주원

“좋은데요? ‘우리들의 시간’… 마음에 들어요.”


두 사람은 마주 본다.

농담도, 깊은 말도, 아무렇지 않게 오갈 수 있는 시간. 그렇게 둘은 책 속 문장처럼, 어쩌면 같은 페이지를 함께 걸어가는 중이었다.




CUT 13.


장면: 다음 날 아침. 소도시 초등학교 강당. 윤서와 주원이 기획한 프로그램의 첫 시범수업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그들의 표정엔 기대와 궁금증이 엇갈려 있다.


배경: ‘우리들의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방과 후와 감정코칭, 독서활동이 결합된 시범교육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첫날. 윤서와 주원은 강단 앞쪽에 간이 칠판과 작은 북스탠드를 설치해 놓고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다.



---


내레이션

이 작은 학교에, 새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하교 벨이 울린 뒤에도 아이들이 학교에 머무는 오후. 학업도, 시험도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하는 방과 후.

윤서는 처음 보는 이 공간의 공기에 심호흡을 하며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강단에서 마이크를 테스트하던 주원과 눈이 마주친다.


주원

(웃으며 손을 흔들며)

“여기, 커튼 뒤 조명 살짝 바꿨어요. 분위기 좋아요. 윤서 씨, 긴장되죠?”


윤서

(웃으며 다가가며)

“어제까지는 안 떨렸는데요. 지금은 손끝이 좀 떨려요. 애들 앞이라 그런가?”


주원

“그럼 잘 될 거란 증거네요. 손이 떨릴 때 사람은 진심이더라고요.”


내레이션

주원의 목소리는 가볍지만, 시선은 진지하다.

윤서가 원고를 챙기고 아이들의 명단을 확인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신뢰와 기대가 담겨 있다.

그는 그녀가 모르는 사이, 그녀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단지 감탄이 아닌, 존중의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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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전환:

아이들이 자유롭게 앉고, 윤서가 마이크를 잡는다. 주원은 뒤에서 서포트 역할을 하며 서 있다.


윤서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과 ‘우리들의 시간’을 함께할 이윤서 선생님이에요. 반가워요!”


(아이들이 손뼉 치며 “안녕하세요!” 외침)


윤서

“혹시 누군가 자기 마음을 글로 써본 적 있는 친구 있어요?”


(몇몇 아이들이 손을 든다)


윤서

“정말 잘했어요. 사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느끼고 있어요. 기쁘고, 슬프고, 억울하고, 신나고. 그런데 그걸 꺼내보는 연습은 잘 안 하죠. 오늘은 그걸 해보는 시간이에요.”


내레이션

아이들은 의외로 집중력이 좋았다. 윤서의 말은 아이들의 언어로 번역되어 강당 안을 맴돌았고, 주원은 뒤에서 아이들의 반응을 조심스레 지켜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아이들 틈에서 손을 번쩍 든 아이가 있었다.


아이1 (동우)

“선생님! 슬플 땐 왜 아무도 몰라요? 저번에 진짜 슬펐는데, 친구도 몰랐고 엄마도 몰랐어요.”


윤서는 순간 말문이 막히다가 이내 차분히 입을 뗀다.


윤서

“…그럴 수 있어요. 사람들은 다 자기 마음만으로도 벅찰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 ‘마음을 건네는 방법’을 연습하려고 해요. 우리가 쓰는 말, 얼굴의 표정, 그리고 글.

그게 누군가에게 닿는 다리가 될 수 있어요.”


내레이션

그 말에 동우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노트를 꺼내 들었다.

강당은 조용했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진심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를 자연스레 배워가고 있었다.



---


장면 전환: 수업이 마무리되고, 아이들이 돌아가는 모습. 주원과 윤서는 마이크를 정리하고 강당을 정리하며 나란히 걷는다.


윤서

“다행이네요. 나름 잘 끝난 것 같아서.”


주원

“잘 된 정도가 아니라… 아이들 표정 봤어요? 감동했어요, 전. 특히 동우.”


윤서

“아… 그 아이, 처음 본 순간 제 옛날 생각이 나서요.

말로 못하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속은 꽉 차 있는데, 표현을 몰랐던… 그런 시간.”


주원

“그 시간, 지금 윤서 씨가 다른 아이들에게 건네고 있는 거예요.

그게 바로… 제가 왜 이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는지 이유기도 해요.”


내레이션

그 순간, 윤서의 휴대폰이 진동한다.

화면엔 ‘병원 – 준이 담임’이라는 이름이 뜨고, 그녀의 표정이 급속히 굳는다.


윤서

“…죄송해요. 제가 지금…”


주원

“무슨 일이에요?”


윤서

“준이… 열이 너무 올라서 학교에서 바로 병원으로 갔다고 해요. 제가 가야겠어요.”


주원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윤서

“괜찮아요. 그냥 택시…”


주원

(단호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혼자 두지 마세요. 지금은… 혼자일 시간 아니에요.”


내레이션

윤서는 순간 그 말에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주원은 우산을 챙겨 들며 그녀를 따라 걷는다.

그들의 그림자가 어둠 속에 나란히 길게 늘어진다.

어쩌면, 진짜 관계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도움을 ‘받겠다’고 마음먹는 일.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




CUT 14.


장면: 병원 응급실 대기실. 윤서가 급하게 병원에 도착해 준이의 상태를 확인하려 한다. 주원은 조용히 그녀의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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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대기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윤서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온다.

노란 병원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창백하게 비추고, 눈가엔 긴장과 걱정이 묻어난다.

주원은 그녀보다 한 발짝 뒤에서 조용히 따라 들어온다.

그의 발걸음은 조심스럽고, 눈빛은 굳게 다문다.


윤서

(간호사에게 급히)

“중2, 이준이… 방금 응급실로 왔다고 했는데요, 엄마예요.”


간호사

“네, 보호자시죠? 지금 안정을 취하고 있어요. 열이 많이 올라서 해열제 주사 맞고, 수액 맞고 있어요.”


윤서

(숨을 내쉬며)

“다행이다…”


내레이션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다리에 힘이 풀리듯 주저앉는다.

그제야 그녀는 숨을 내쉰다. 단단하게 붙들고 있던 감정이 고요하게 무너진다.

주원은 무릎을 굽혀 윤서의 눈높이에 맞춰 앉는다.


주원

(조심스레)

“괜찮아요. 지금부터는, 괜찮을 거예요.”


윤서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얼굴로)

“애가 아프면요… 마음이 뒤에서부터 무너져요.

무섭고, 미안하고, 또 막막하고…

특히 오늘 같은 날은 더요.

내가 무슨 욕심을 부린 걸까… 싶은 순간.”


주원

“욕심 아니에요. 사랑이에요.

아이 앞에 당당한 엄마이고 싶었던 그 마음…

그게 준이한테는 분명히 전해졌을 거예요.”


내레이션

주원의 말에 윤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말이 낯설지 않았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위로가, 묘하게 가슴 깊숙이 박혔다.

그리고 그 순간, 윤서의 눈에 익숙한 실루엣이 병실 창 너머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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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전환: 병실 안.

준이는 수액을 맞은 채로 자고 있다. 얼굴은 창백하지만 호흡은 안정되었고, 이마에는 물수건이 얹혀 있다.

윤서가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등을 만지며 그마저도 다정한 시선으로 준이를 바라본다.


윤서

(속삭이듯)

“엄마가 조금만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준아, 너무 무리했구나.”


내레이션

그녀의 시선엔 단순한 ‘엄마의 죄책감’이 아니라, 함께 크고 있다는 뭉클함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혼자 견디느라 어깨를 웅크리고 살았던 윤서는

지금 이 작은 병실 안에서 비로소 누군가의 어깨에 등을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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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전환: 병원 복도.

밤이 깊었다. 커튼 틈 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도 드문드문이다.

자판기 커피 두 잔을 손에 들고, 주원이 복도로 걸어온다.

그는 커피 한 잔을 윤서에게 내민다.


주원

“카페라테에요. 설탕 두 스푼 넣었어요. 단 거, 필요할 것 같아서.”


윤서

(받아 들며 피식 웃는다)

“이제 제가 단 걸 좋아한다는 것까지 아세요?”


주원

“몰랐는데요… 그냥 그럴 것 같았어요.”


내레이션

짧은 대화. 하지만 그 속엔 여러 겹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그녀의 감정을 섣불리 판단하지도, 과하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윤서는 그 다가옴을 처음으로 경계하지 않는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원을 바라본다.

그의 옆모습은 놀랍도록 차분하고, 부드럽고, 든든하다.


윤서 (속마음)

‘이 사람… 나한테 이런 눈빛을 주는 사람이었나?’


주원 (속마음)

‘이 사람은 늘 혼자 견뎠구나… 그걸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


내레이션

두 사람은 말없이 복도를 걷는다.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왔던 두 사람이,

지금은 같은 걸음을 나란히 걷고 있다.


그 복도 끝에,

어쩌면 다음 장면의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CUT 15.


장면: 새벽녘, 윤서와 주원이 병원에서 나와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하는 길. 도심의 불빛은 하나둘 꺼지고 있고, 차 안은 조용히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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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밤이 깊었다.

도심의 불빛은 점점 희미해지고, 창밖엔 서늘한 안개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차 안은 조용했다. 창문을 타고 흐르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스쳤다.

윤서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주원은 운전대를 조용히 잡고 있었다.

이 밤이 아예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묘한 고요.


윤서

(창밖을 보며)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주원

“무슨 말이에요. 가족이 아프다는데 당연히 도와야죠.”


윤서

(살짝 웃는다)

“가족이라니… 조금 빠른 설정 아닌가요?”


주원

(미소 지으며)

“아, 그럼… 동료? 파트너? 협업자?”

(잠시 머뭇이다가)

“마음으로 응원하는… 그런 사람.”


내레이션

그 말이 조심스럽게 차 안을 맴돌았다.

윤서는 말없이 주원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밤의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잔잔했다.

그 안엔 조급함도 없고, 의도적인 친절도 없었다.

단지 누군가를 다정히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의 눈빛이 있었다.


윤서 (속마음)

‘이렇게 편안한 사람이었구나…

처음부터 알았다면, 조금은 덜 외로웠을까.’


주원 (속마음)

‘혼자서 이 많은 걸 견디고 있었구나…

더는 혼자 두고 싶지 않다.’


내레이션

그들의 시선은 엇갈리지 않았다.

하지만 말로 이어지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은 밤공기처럼 조용히 퍼지고 있었고,

그 속에서 꼭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


장면 전환: 다음 날 아침, 주원의 사무실.

커다란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탁자 위엔 노트북과 스케치, 메모지가 가득하다.

윤서가 노트북을 펼치고 앉는다.

카페라테 두 잔이 놓여 있다.


주원

“어제는 고생 많으셨어요. 준이 괜찮다고 연락받았어요.”


윤서

“네. 열도 내리고, 회복하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 어제 뭐 했어?’라고 물었어요.

아프면서도 궁금했나 봐요.”


주원

(웃으며)

“역시 중2네요. 마음은 애기인데, 자존심은 다 컸고.”


윤서

(피식 웃는다)

“말 그대로요. 근데 그런 모습도 귀엽더라고요.”


내레이션

두 사람 사이에 웃음이 번졌다.

전날의 피로가 조금씩 사라지고,

새로운 하루가 아이디어처럼 퍼져나간다.


주원

“윤서 씨가 어제 병원에서 이야기한 돌봄 결합형 콘텐츠…

그거, 진짜 해보자고요.”


윤서

“진짜로요?”


주원

“우린 너무 잘 맞아요. 일도, 방향도.

가르침이 교육으로 끝나지 않고,

아이들의 감정과 일상, 돌봄까지 확장되는 프로젝트.

이건…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이에요.”


윤서

“처음이에요. 누군가 제 생각을 이렇게 진지하게 같이 펼쳐보자고 해준 건.”


주원

(진심 담긴 눈빛으로)

“윤서 씨 아이디어는 사람을 움직여요.

그건… 기획이 아니라, 진심이니까요.”


내레이션

그 순간 윤서는 다시 주원의 눈을 바라본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

마음 어딘가가 따뜻하게 젖어드는 기분.

두 사람은 동시에 노트북을 향해 손을 뻗는다.

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기획안을 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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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그들은 어제의 밤을 뒤로하고,

오늘의 아침을 함께 시작했다.

무너질까 두려웠던 감정 위에,

새로운 꿈이 살며시 자리를 틀고 있었다.




CUT 16.


장면: 작은 도서관 겸 방과 후 교실.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있다. 칠판 옆에는 윤서와 주원이 함께 서 있고, 테이블 위엔 여러 권의 책과 색연필, 종이, 그리고 작은 간식들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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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지는 오후, 작은 시골 초등학교의 방과 후 교실엔 아이들의 말소리가 따뜻하게 번지고 있었다.

복도에 놓인 작은 화분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교실 안으로 스며들었다.


윤서는 오늘을 위해 며칠 밤을 지새웠다.

주원과 함께 만든 파일럿 교육 콘텐츠.

이름은 ‘작은 마음이 쏘아 올린 큰 이야기.’


그것은 단순한 독서 수업이 아니었다.

책을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고,

소외된 감정과 작은 외로움들을 꺼내놓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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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

“얘들아, 오늘 우리가 읽을 책은요…

바로 『모두 깜언』이에요.

이건… 마음의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천천히 대신 전해주는 이야기랍니다.”


아이들

(웅성거리며 반응)

“어, 이 책 알아요!”

“나는 그림이 좋았어!”

“왜 엄마는 이런 책을 안 읽어줄까…”


주원

(미소를 머금은 채 윤서에게 작게 속삭인다)

“반응 좋은데요? 첫 시범 수업 치고는 아주 성공적.”


윤서

(살짝 긴장을 풀며)

“아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솔직하고 감수성이 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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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윤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질문을 던졌다.

“이 책에서 가장 외로웠을 것 같은 인물은 누구였을까?”,

“만약 너희가 주인공이라면,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아이들의 손이 번쩍번쩍 들렸다.

누구는 자신이 느꼈던 슬픈 날을 떠올렸고,

누구는 친구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책 속 인물에 빗대어 말했다.


교실은 작은 마음들의 공명으로 가득 찼다.

어른들도 잊고 지낸 감정들을

아이들이 용기 있게 꺼내놓을 때,

윤서의 눈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


윤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다 틀리지 않아요.

그냥… 다르게 생긴 목소리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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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그 순간, 뒷문이 조용히 열렸다.

회복한 준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섰다.

평소 같았으면 어색해서 그냥 집에 갔을 텐데,

오늘은 어쩐지 보고 싶었다.

엄마가 어떤 모습으로 아이들과 이야기하는지.


준이는 조용히 맨 뒷자리에 앉았다.

윤서는 그를 알아보고 잠깐 눈빛을 주었다.

서로 아무 말 없었지만,

그 짧은 눈 맞춤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괜찮아졌구나.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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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

(준이를 보며 속삭인다)

“오늘 정말 다 왔네요. 이 프로젝트의 첫 시작에.”


윤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네요… 시작이란 말, 어쩐지 오늘은 더 따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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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칠판에 남은 글씨,

아이들이 접어 만든 종이배,

책갈피에 끼워둔 말풍선 쪽지들.

그 모든 게 수업의 일부였고,

그들의 첫 시작이었다.


주원과 윤서는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교실에 남아 있었다.

교탁 위에 나란히 놓인 두 잔의 식지 않은 커피.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아이들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함께 울지도 웃지도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 한편에서

작은 불빛 하나씩

켜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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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

창밖으로 저녁노을이 번진다.

주원이 책상 위에 놓인 기획서를 펼친다.

윤서는 천천히 책장에 책을 꽂으며,

미소를 머금은 채 뒤를 돌아본다.


윤서

“주원 씨, 다음 수업도… 함께할 거죠?”


주원

(작게 웃으며, 윤서를 바라본다)

“당연하죠. 이건 이제… 우리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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