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는 즐거워. 그런데 집에 오면 이불킥을 해.
햇수로 4년 차에 접어든 나의 수영 인생에서 처음으로 회식에 참석했다. 그동안 수영장 회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늘 "아, 제가 일정이 있어서요." 하며 공손한 거절을 해왔는데, 그러다 보니 더 이상 회식을 권하지도 않는 지경에 다다랐다. 그래서 거절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안도하기도 했다.
현재 나는 작년에 이사를 온 뒤 새로 찾은 수영장에서 아직도 어색하게 중급반 어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수영장에서의 나는 물속의 물거품만큼의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존재감 거의 없음. 스스로 만든 상황이다. 그래야 수영 강습 전에 비는 10분과 강습 후에 남는 10분을 자유롭고 유익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스몰 토크라도 하게 되면 소중한 20분을 물속에 서서 허비하게 된다. 수영장에서는 물속에 서 있는 시간보다 눕거나 드러 누워 있어야 올바른 것 아닌가? 그래서 수영장에서는 늘 자발적 왕따를 자처해 왔다. 그러던 중 강사님도 새로운 분으로 바뀌고, 설날 연휴도 앞두고 있으니 회식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9시 수업에서 10시 수업으로 이동해 온 지 세 달 정도 되었다. 내가 지금 반에 들어온 뒤로 한 번의 회식만 있었고, 그래서 회식 권유에 거절할 기회도 한 번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아직까지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회식에 참석하겠냐고 묻는 회원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어차피 안 오겠지 하는 의심을 엿보았지만 "저 참석할게요!"라며 대단한 선언이라도 하듯 힘주어 말했다. 말을 하고 나니 걱정이 앞섰다. 나의 자유로운 수영장 생활을 침해받지 않을까? 그동안은 아는 얼굴도 슬쩍 눈을 피해 가며 모른 척도 하고 말도 굳이 섞지 않으며 각개전투를 해왔는데, 이제 중급반의 일원으로 가십의 한 부분을 차지해야 하나? 잠깐, 내가 그런 존재감이 있었던가? 쓸데없는 걱정이다.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면 될 일을 굳이 매번 거절하며 까칠하고 어려운 사람이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다짐한 나의 목표 중 하나가 무엇인가? '하기 싫은 것도 해보자' 아니었던가? 수영 회식이 있기 하루 전까지도 갈까 말까를 망설이다 고민이 된다면 가는 게 맞겠다는 결론을 내었다.
강습이 끝나고 강사님과 회원들이 같은 건물 1층에 위치한 삼겹살 구잇집에 모였다.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첫 번째로 어느 자리에 앉을 것인지부터가 중요했다. 우선 강사님의 바로 옆이나 바로 앞은 피할 것! 미션을 완료하고 적당히 대각선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강사님의 바로 맞은편, 바로 내 옆은 우리 반에서 가장 연령이 높고 유쾌한 왕 언니가 앉았다. 최적의 자리 선정이었다. 왕 언니가 분위기를 이끌며 수영 회식을 진두지휘한 덕분에 어색함이 덜하고 슬쩍 묻어갈 수 있었다. 30대 초반의 남자 강사님과 40대 50대 60대가 골고루 섞인 주부 수강생들의 모임에서 어쩐지 웃음이 났다. 우리 강사님은 이곳에 끌려온 것일까, 나름 즐기고 계실까?
대게의 회식이 그렇듯 대화의 주제가 들쭉날쭉이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선생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수영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 아이들의 교육 문제까지 이질적인 주제가 이상하리만큼 매끄럽게 이어졌다. 이게 바로 K-주부들의 수다 파워로구나 감탄하며 2차로 커피 타임까지 마쳤다.
나는 어색한 모임을 즐겨하지 않을 뿐, 참석한 모임에서 입 꾹 다문 리스너로만 있는 사람은 아니다. 간간이 푼수끼를 들키며 농담도 하고, 손뼉 치며 리액션도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 돌아온 순간부터 내가 한 농담이 적절했나, 나의 리액션이 과하지 않았나 하며 스스로를 재단하기 시작했다. 내일 강습부터는 더 친근하게 인사하고 스몰 토크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중에 차단기를 내리듯 생각을 끊어 냈다. 회식은 회식이고 나는 나의 수영 생활을 즐기기로 말이다. 하기 싫은 것도 해보자 하는 목표도 하나 달성했고, 생각보다 회식도 즐거웠다. 다만 이것에 너무 얽매여 내가 나로 살지 않을 이유는 없다.
내일도 강습 10분 전에 입수하여 나만의 수영을 즐기고, 강습 시간에는 열심히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며, 강습 후의 10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나를 위해 써야지.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기고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다음 회식에도 참석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