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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김 May 11. 2016

사랑일 뿐이야

휴지를 고이 접어 흥 코 한번 푼다

콧물 가득 '만약' 과 '혹시' 가 쏟아진다

휴지통에는 휴지만이 가득 쌓여간다

몇 번을 비워내야 이 미련 또한 비워질까


그대 이름을 수없이 지우길 반복한다

이름 앞에 '사랑하는' 적고 싶지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그 밑에

'안녕' 을 썼다 다시 지운다


지워도 그대 흔적 가루로 남고

연필 자국으로 남아있는데

지우개에도 추한 마음 묻어있는데

몇 번을 지워내야 이 상처 또한 지워질까


폭풍처럼 다가왔고 무질서히 생채기를 내고

나뭇잎 사이 부서지는 햇살처럼

젊은 날에 부치치 못한 편지 한 장처럼

사랑을 걷다 방황하다 이별하다


그만할 때도 됐건만

잊겠다 생각하니 더 생각나는 것은

아직 꽃이 피지 않았음이라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 우리가 헤어질 거란 사실을. 우리는 너무 불안했고 초조했으며 서로를 감싸기에는 아직 미숙한 사람이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관계는 금이 갈거라는 것을.

 그러나, 이별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믿고 싶지 않았다. 지난 날의 어지러웠던 감정들이 단 한 마디 '그만하자'라는 말로 내뱉어졌을 때 나의 세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폭풍처럼 다가왔던 열렬한 사랑에 감히 저항할 생각도 못했다. 그저, 거부할 수 없는 기류에 내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너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내 세계에 어떤 두드림도 없이 들어와 내가 알고있는 모든 것들을 바꿔버린 사람. 덧입혀진 내 세계의 색깔들을 다른 색으로 칠했으며 보이는 모든 것들을 철저히 부수고 다시 만들었던 사람. 나의 주인이었고 신이 되어버린 사람. 그런 너가 '그만하자' 했을 때 나는 처절하게도 무너졌다. 따뜻한 햇살의 온도도 고통으로 다가왔고 포근한 봄바람도 내게는 그저 알량한 동정이었다.


 그래도 나는 너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눈이 먼 나의 마음은 우리를 운명이라 생각했다. 우리에게 몇 번의 갈등이 있었을 때도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왔고 잠깐의 이별이었어도 너의 옆에는 항상 내가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분명 너는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다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겠지.
수북히 쌓인 부치지 못한 편지들처럼.


 몇 번의 겨울이 지나갔고 몇 번의 봄이 지나갔다. 우리의 겨울은 언제였고 봄은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이별은 추억을 차갑게 만든다. 우리에게도 분명 봄은 있었을 것이다. 다만, 많이 무뎌지고 바래졌기에 그 날의 따뜻함이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우리는 내내 겨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날, 너가 좋아하는 음악이 길거리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너의 행복을 바랬다.

봄이,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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