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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김 May 23. 2016

분홍

순수로 태어나서

우리는 분홍으로 태어났다

순수로 태어나 순수로 죽고 싶은

그리 뜨겁지도 않게

그리 차갑지도 않게

우리는 분홍으로 태어났다

열정으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지 않고

이성 아래 냉정을 유지하지 않고

분홍은 그렇게 태어났다

갓 태어난 젖소의 코가 분홍인 이유

아기의 볼이 분홍빛인 이유

우리는 분홍으로 태어났다



 저는 분홍색을 좋아합니다. 남자임에도 어렸을 때부터 분홍색 옷이 많았으며 유독 분홍색 물건에 애착이 갔습니다. 분홍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부드러워짐을 느낍니다. 딱딱하기만 했던 삶의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편향되고 극적이었던 관점들이 중간을 찾습니다. 분홍은 제게 있어 치유의 색입니다.


 군인 시절, 제가 지냈던 부대 주변에는 우사가 많았습니다. 인근 주민들이 대부분 우사를 운영하여 소를 보기가 쉬웠던 곳이었습니다. 저희는 아침 구보를 영외로 나가 뛰었었는데, 뛰면서 소들을 천천히 보다 보면 못 보던 소들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인어른이 어디서 데리고 왔거나, 새끼를 낳았을 경우입니다. 데리고 온 소들은 대부분 성장을 다하여 몸집이 크고 울음소리가 우렁찬데 갓 태어난 새끼들은 정말 왜소하며 연약해 보입니다. 서있는 거 조차 버거워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 큰 소들은 코가 검한데 비해 갓 태어난 소들은 코가 분홍색입니다. 아직 먼지나 흙을 많이 접하지 않아, 분홍인지는 모르겠으나 연한 분홍을 가지고 있습니다. 뛰면서 우연히 갓 태어난 새끼 소의 코를 봤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서있기조차 힘들어하고 작은 몸집에 연분홍색인 코를 가지고 있는 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친해져야 하는 색은 분홍 인지도 모릅니다. 너무 진한 인상들을 주는 색은 강렬하여 쉽게 매료되어 감각들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어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홍은 어디든 갈 수 있게 자유로워 보입니다. 가치중립적이며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것 같습니다. 고민을 들어줄 수 있고, 쉼터가 되어주는 그런 색. 추억과도 가장 잘 어울리며 사람 냄새가 나는 색.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색인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추억은 언제나 분홍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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