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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김 May 25. 2016

속눈썹에 달이 기우네

눈물인지 빗물인지

속눈썹에 물방울이 맺히더니

툭 떨어진다


중력 속에 사라져가는 물방울

뒤따라 퍼져가는 기억의 단편

후두둑 떨어진다 옛 기억이


어릴 적 팽이가 돌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돌아버렸는지

물 한 방울에 의문을 토로한다


상관없이 달은 기울고 있다

난간 앞에 쪼그려 앉은 저 뒷모습

누구의 모습인가 저 아이의 모습인가


기억은 자꾸만 뒤로 흐르고

달은 밤하늘을 따라 흐른다



 혼란스러웠다. 언제나 혼란스러웠다. 어린 시절부터 달이 기우는 지금까지.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였다. 뚜렷한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저, 의문투성이었다.


 그 의문 또한 어떤 구체적인 질문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막연한 느낌으로만 다가왔다.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기분. 웃는 얼굴이 주는 불쾌함. 텅 비어있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느낌.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 느낌들이 어린 시절부터 나를 괴롭혀 왔다. 어렸을 때도 느꼈다. 이건 떨쳐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할 숙제라는 것을. 나는 남들과는 달랐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나는 분명 남들과 달랐다.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에서 오는 차이가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 같았다. 사람들의 거짓말이나 불편한 감정들이 눈에 뻔히 보였으며 의도가 있는 행동들을 쉽게 알아차렸다. 그것이 내게는 불쾌함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표출하기보다 조용히 사라졌다. 그들의 관계 속에서. 단절하고 단념했으며 포기했다. 그래서 성인이 된 지금도 주변에 친구가 많지 않다.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어릴 적 모호했던 이 감정과 느낌들을 조금은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외로움, 모멸감, 비관, 공허함. 사회 부적응자의 수식어처럼 나를 지배해오던 이 단어들. 사실은 정말 사회 부적응자 인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도 '나는 왜 이럴까?'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한다. 남들처럼 사회인의 모습을 가장하며 지내기는 하지만 내적으로는 태생적이고 근원적인 질문들로 가득 찼다. 이 현상에 대한 원인들은 어린 시절에서 기인한 것으로 봐 자꾸 기억을 더듬고 더듬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시작했는지 기억을 더듬다 보면 어린 시절의 내가 가여워진다. 혼란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던 내 모습들이. 이것은 자기애도 아니고 측은지심도 아니다. 이 지긋한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다.


 시간은 흐른다. 달은 기울고 있다. 하루하루 내게 과거가 생기며 미래가 현실이 되고 있다. 시간을 막을 수 없다면 쌓여가는 과거를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다. 다르게 느끼고 싶다. 안개 속으로 가려진 내 과거 속에 햇빛이 깃들기를 바란다.


아니면
남들도 다 나와 같았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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