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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김 May 27. 2016

거울 속에서

당신은 누구십니까?

샤워를 하다 문득 거울을 보고 싶어 졌다


김 서린 거울에는 무엇도 드러나지 않았다


물을 뿌리고 흘러내리는 물줄기 손으로 닦아냈다


이상하다

닦아내도 드러나지 않고 비치지 않는다


거울을 보고 있는 저 사람 누구인가 만져본다


검은 눈동자와 갈색 눈동자는 마주쳤지만


서로를 모른다고 한다


이상하다

저 사람은 누구인가 하고


나는 누구인가 한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으며 살고 계십니까? 지난 일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후회도 하며 다짐하는 시간. 때로는 추억이 일어나기도 하며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눈살을 찌푸리는 시간.


 저는 보통 샤워를 하며 저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적시며 몸과 머릿속을 이완하여 조금 더 깊은 곳에 있는 나를 만납니다. 근육들이 조금씩 풀리며 부드러워지고 머릿속 또한 따뜻한 수증기에 젖어 촉촉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낯선 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는 왜 그랬지?
조금 더 다르게 대처할 수 있었잖아.
아니야, 그게 최선이었어.
나는 왜 저 사람을 괄시했지?
보고 싶다. 사실은 네가 많이 아팠으면 좋겠다.

 

 평소 이성으로 꽁꽁 묶어놨던 속마음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며, 얼마나 가식적인 사람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본심을 꺼내기에는 다칠까 봐 두렵고 세상은 그리 관대하지 않아 제 자신을 숨깁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적당한 가면을 써 대처하면 오히려 갈등 없이 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이 샤워를 할 때면 낯설고 원색적으로 느껴집니다. 당당히 앞에서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 초라하게도 느껴지지만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중심을 맞추는 과정입니다.


 거울에 비친 또 다른 나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되뇝니다.

비겁해지지는 말자.

 드러내지는 못할지라도 거짓말을 하거나 악용을 하지는 말자.


 가끔씩은 가면을 쓴 내 모습에 나 자신조차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심을 마주하기에는 무섭고 아플까 봐 이게 진짜 내 모습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속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절대선에 해당하는 몇몇 행동들이 내게는 이질적이고 혐오스럽기도 한데, 이런 내 모습이 비치면 사회에서 이단아처럼 비칠까 두려워 표정과 행동들을 숨깁니다.


 샤워를 한다는 것은 제게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분장한 내 모습을 지우는 일입니다. 조금은 숨 쉴 수 있는 나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과정. 오늘도 샤워를 해야겠습니다. 그리운 거울 속에 내 모습을 만나기 위해.


잘 안다는 것에 대한 역설.
내가 누군지를 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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