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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김 May 30. 2016

주인의식

시끄럽게 소리 지를 수 있고

투정을 부리며 신경을 건드릴 수 있고

침묵으로 조급하게 하고

달달해서 연약하게 만들고

눈물 한 방울로 죄책감을 만들고

짙은 숨으로 반성하게 만들고

이름을 부르며 눈을 부릅뜨게 만들고

정해진 시간에 수화기를 들고

잠을 자도 바르게 살고 싶게 만들고

내 영역을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있는 건


그대뿐



 한창 열렬히 사랑할 때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정말 내가 맞나?

 그만큼 누군가에게 깊게 빠져 온통 그 사람으로 가득 찰 때.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없던 밥맛이 생기기도 하고 고된 하루 속에 당신 음성으로 인해 없던 힘이 생기고 부끄럽지 않게 올바르게 살고 싶게 만듭니다. 분명 전과는 다른 내 모습입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모습이며 전혀 다른 나를 만나는 일입니다. 당신이 나를 지배한 게 틀림없다 생각했습니다.


기존에 내가 알던 모든 감각들이 달라졌다.

 냉소적이며 이성적이었던 내가 언젠가부터 감정에 크게 휘둘리는 일이 많아졌다. 당신 때문에. 사리판단이 잘 안됐고 하루가 오르락내리락 어지러웠다. 그렇지만 이 현상이 싫지는 않았다. 때로는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지만 기분 좋은 떨림은 늘 있었다. 나는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를 때가 제일 두려웠다. 당신은 어떤 일을 짚고 넘어가야 할 때 이름을 부르고 침묵을 했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조급했고 두려웠고 떨렸다.

 누군가 나의 모습을 본다면 참 소심하고 여린 사람으로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만큼 나에게는 당신은 커다란 사람이라 존재의 작음을 느꼈다. 당신이 내 앞에서 울기라도 하면 그거는 세상이 무너지는 일과 같았다. 그것이 비록 나 아닌 타인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우는 일이라도 해도 너무나 아팠고 괴로웠다. 단순히 옆에 있는 거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미웠다.


 무엇보다 당신은 나를 너무 잘 알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신 눈에는 내가 어린애처럼 보였을 것 같다. 당신 해준 한마디에 마냥 좋거나 기뻐하고 당신 흘린 눈물에 한없이 슬퍼하고 아파하는. 거짓말 못하는 아이. 온전히 나를 드러낼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당신은.


우는 아이를 놓고 갈 만큼 당신은 지쳤던 거겠지.


 당신이 내 안에 있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만들어 주고 갔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떠난 후에도 당신의 영향을 받는다.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됐고 느끼게 됐다. 기존에 내가 알던 세상이 희미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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