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반만이라 반갑네
6년 반만의 한국이다.
도착한 지 하루 반나절이 지나가고 있다. 아무도 날 깨우지 않아 정말 정신없이 집에서 14시간을 잠만 잤다. 깨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시차 적응을 도와주려 하는 가족들의 배려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조용한 내방 침대에서 한국의 밤을 나의 머릿속에 하나씩 그려 넣고 있다.
나의 감각이 깨어있는 이 순간을 오로지 즐기면서 만끽하고 있다.
독일을 출발하기 전 기대가 되는 건 한국에 가는 여정에서 느껴지는 새로움에 기대에 차 있었다.
난 독일에서 공부하는 늦깎이 유학생이다. 생활비가 없으니 한인식당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랴 작품 활동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지내왔었다. 다른 학생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들과의 생활이 갭이 있을까 봐 그들보다 배는 노력하면서 독립형 유학생활을 해왔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았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갭을 극복하는 과정과 너무 방대한 양의 독일어 공부는 날 더 쪼그라들게 했고 어쩌다 아프면 공보험이 아닌 사보험 때문 병원비 부담에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사보험은 보험비가 싼 대신 혜택이 많지가 않기 때문 난 항상 아프면 안 된다 주문을 외우며 하루하루를 생활해왔다. 한인식당에서의 도에 지나친 말과 행동으로 갑질로 난도질을 당하면 끙끙 앓으며 감정 추스르는 게 일상이었다. 주일은 한인교회에서 주일성수하기 위해 교회를 다녔는데 예배후 식사 모임 정리 설거지가 쌓이는데 그대로 있으니 나와 마음 맞는 친구 몇 명이서 항상 단골로 그 많은 설거지를 했다. 하루도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일을 너무 많이 한탓에 오른쪽 팔목이 너무 아파 일할 때 접시를 떨어뜨리고 연고를 발라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엇보다 손목이 아프니 그림 작업이 안 되는 게 속상했다. 고질병으로 가려나.. 걱정도 많이 하며 조금 쉬면 나아지겠지 하며 앞으로의 휴가를 즐기기로 한다.
내가 바라왔던 유학생활과는 아주 먼 현실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졸업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겉이 아닌 내속이 채워지는 걸 뿌듯해하며 하루하루 꿋꿋이 버티며 날 믿고 감사하게 살아가고 있다.
난 내가 자랑스러웠다.
매일이 기쁘고 설레어서 감사하다
어느 날 한국 바라기 병이 난 걸 깨닫고 큰 맘먹고 겨우 비행기 삯을 모아서 티켓팅을 해버렸다. 100만 원이라는 목돈은 유학생에게 그리 작은 돈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내가 없어도 방 월세나 여러 매달 고정비는 나가야 하니 신경 써서 장기간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쉽게 한국을 갈 수가 없었다.
다른 유학생들의 2-3년에 한 번씩 가는 서슴없는 한국행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많이도 부러워했지만
난 내 분수를 알기에 나에게 한국행 선물을 오랜만에 주는 거라 기쁘게 여정하리라 생각했다.
아시아나 비행기 내에서 역시나 죄다 거의 한국인들이었다. 자리가 불편해 잠을 자기는 걸렀다 생각이 들어 책을 두권 꺼내 읽었다. 오랜만에 책을 보는 터라 기내식을 맛있게 먹고 커피 한잔과 화이트 와인으로 간만의 여유를 부리려던 순간 옆좌석에서
아가씨 그 책 한번 잠시만 봐요.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낯익은 느낌.. 10시간 비행 동안 절대 돌려받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거마저 반가웠다. 한국인들의 '잠시'는 기약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옆에 앉아 같이 가던 한 아주머니로 인해 새록새록 한국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 내가 드디어 한국에 가는구나.
여름의 습한 기온이 예전에 코끝에 닿으면 많이 불쾌했었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거마저 그리워했다는 걸 알았다.
6년 반만이다. 부산은 더 오랜만이다. 그 사이 엄마 집은 공기 좋은 양산으로 이사를 갔으니 나에게는 아주 새로운 곳이다. 독일 가기 전 거의 6년을 서울에서 생활했으니 말이다. 많이도 변해버린 한국이 낯설지만 모든 것이 반갑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미리 티켓팅을 해서인지 역시 짐이 제일 늦게 나왔다. 그 사이 선글라스 너머로 공항 구경에 사람들 구경. 짐이 언제 나오는지 체크까지.. 역시 한국에 오니 다시 멀티로 바뀌어지는 것도 새롭고 반가웠다.
“안녕하세요. 저기 직불카드 재발급해주세요.”
“네? 아. 체크카드요?”
“네?”
“여기 여기 적어주시고 사인해주세요”
“어디요? 여기요?”
“혹시 탈북민이세요?”
“네?”
“북한에서 오셨어요?”
“아니요.. 외.. 외국생활을 오랫동안 하다가 왔어요.”
은행업무에 서툰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은행 여직원의 시선마저 반가웠다.
부산행 버스를 타려고 1층에서 2시 버스를 탔다. 오후 약 6시 30분 부산동부 버스 터미널 노포동역에 도착하였다. 부산에 도착.. 가족들은 내가 탄 버스는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인천에서 출발한 버스가 10분 전 도착해 내가 없으니 걱정이 태산... 10분 뒤 인천공항발 부산행에서 나를 보고서야 얼싸안았다.. 인천공항에서 부산 도착.. 가족을 만나니 드디어 한국에 도착한 걸 실감한다. 저녁 8시경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지난밤 24시간을 꼬박 운행 수단 안에 매여있던 터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집에 도착하고 샤워를 하고 바로 잠이 들었다. 그다음 날 아침 11시 넘어서야 일어났다. 14시간을 깨지 않고 내리 잠을 잔 것이다.
타국 생활로 심신이 지친 내가 한국에서 또 다른 새로움에 적응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 채 여전히 그립기만 하며 생각지도를 그리고 있다.
2014. 8월 어느 날 늦은 밤 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