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 I can do it
21살 이후 한동안 여기 동네 근처도 못 간 곳이다. 공간이란 기억과 함께 오감을 휘어잡는 신기한 것이다. 그리고 날 어릴 적 나로 돌려놓는다.
그래서인가..
공간과 시간의 울타리에 구속되어버린 인간의 약함과 존재 자체에 대한 본질적 사유를 많이도 했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21살까지 살았던 아빠가 살았던 집이다. 집안 쓰레기들은 용역업체를 통해 다 비우고 겨우 빈집이 되었다. 엄마와 난 그 옆에 말없이 가슴 조리며 앉아있었고 3톤이 나왔으니 100만 원 달라고 해서 엄마가 20만 원을 겨우 깎았다. 하나하나의 일들은 나에겐 큰 마음다짐이 필요하다. 이 집은 나에겐 트라우마이다.
“80만 원입니다. 휴, 한 번도 청소를 안 한 집이라 너무 힘드네요. 혹시 교회에서 나오셨어요? “
“아.. 네... “
44년 된 23평의 아파트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집을 수리하기로 한다. 리모델링 경험이 없고 오랜 외국생활 때문에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나의 계획은 끝이 없는 험난한 일정의 연속이었다. 그 집은 쓰레기 더미로 20년 이상을 청소 한번 안 한 폐가 수준의 집이었다.
먼저 작년에 잠시 한국 들어왔을 때 청소업체에 의뢰해서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쓰레기를 다 치우고 나서 악취가 나는 물건들을 쓴 사람의 지나간 흔적을 되짚어 보곤 했다. 악취로 인한 이웃의 민원은 그전부터 사실 끊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처음 시작하는 마음은 아주 마음이 무거운 상태에서 많은 에너지가 빠져 실시간으로 충전해야만 해서 여간 긴장되지 않았다. 알고 있는 정보와 지인도 없고 업계의 동향 파악이 안 되는 오랜 외국생활 때문에 숨고라는 플랫폼에서 섭외해서 직접 파악해야 하는 상황을 직면했다. 실력이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검증할 수 없기에 일단 부딪혀보기로 한다.
전체 올수리 하는 집이었기에 아무한테 맡길 수가 없었다. 먼저 살고 있는 집의 욕실 부분공사를 하고자 섭외한 분을 테스트하기로 했다. 보통 인테리어를 잘못해서 하자가 난 경우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업계의 소소한 정보를 습득하기 시작했다. 난 인테리어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 먼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적극적인 사람과 나랑 말이 통하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사람을 섭외하기로 했다. 매일을 유투버에서 인테리어 정보를 습득해서 업체 사장들과의 말 상대에 따라가기만 하자 열심히도 습득을 하였다.
워낙 집 자체가 오래되었고 폐가 수준이라 견적 받으러 왔다가 너무 힘들 것 같아 그 가격에 그냥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전기도 고장 나고 천장은 내려앉았고 욕실 수전들이며 변기, 바닥과 벽, 난방, 샷시, 보일러 등 어디 하나 성하고 작동되는 게 없었다. 욕조 수전 물은 나오기는 하는데 오랜 공동배관인 오수관 누수로 욕실과 붙어있는 작은방 벽은 곰팡이로 엉망이다.
“골조 빼고 전부 다 뜯어고쳐야 돼요. 돈 아끼려 기초공사 안 하면 나중에 돈 더 많이 들어요.”
“그 돈으로 인테리어 소장이 맡아서 할 사람 없을 거예요. 돈을 많이 준다면 모를까.”
“비교 견적을 받아보는 것이 공사비를 알 수 있고 투명할 수 있으니 조금 더 알아보세요. 이 가격엔 어렵죠.”
골조 빼고 전부 다 뜯어고쳐야 한다는 기준으로 공사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공사를 안 하겠다고 손사래 치며 공사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일을 맡기는 사람으로서 인건비와 자재비 등의 목돈이 한꺼번에 나가는 상황이라 나 스스로가 인터넷으로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사장님들과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소장 역할을 한셈이지만 전문 지식이 없으니 사장님들의 스케줄에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한 번에 끝날 일을 두 번 세 번 일하게 된 경우엔 죄송해서 미리미리 다음일의 동선과 우리 집의 공사 질의 균형을 위해 가장 최선이 무언가를 밤마다 고민하였다. 그러고 난 뒤에는 그룹 창에 내일의 플란을 올려 미스가 없도록 하였다. 물론 보지도 않을 것을 염두해 다음날 한 번 더 가서 똑같은 것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일을 반복하였다. 거친 말을 해 대화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으면 스트레스 안 받고 그 사람을 파견한 담당자를 찾아 소통 간의 오류의 잘잘못을 따져 물어 사과도 받아가며 되도록 원활하게 공사가 진행되도록 하였다. 무조건 돈을 많이 부르기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깎고 퀄리티 높은 공사를 진행시키려면 사전 기초지식이 있어야 하기에 집에 와서는 부단히 공부를 해야만 했다.
사장들과의 소통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여름 장마 때라 잦은 비 때문 타일 공사는 타일 운반부터 곤욕을 치렀다. 더군다나 에어컨도 없으니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그런 날씨에 공교롭게 된 것이다. 6월 시작했는데 계약 성사가 그리 쉽게 되지는 않았다. 나도 처음인지라 신중했었는데 공사기간에 대한 데드라인이 없었기에 좀 더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하자 체크는 확실히 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하였다. 일을 시키고 다면 다음날 스케줄을 위해 확인을 해야 하니 하루에 두 번씩 갈 때도 있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비전문가의 확인 절차는 힘들기만 하였다.
부분 공사의 가장 첫 번째 철거를 하고 하느냐 안 하고 부분적으로 하느냐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미스를 하였다. 한꺼번에 철거를 해서 생각보다 많은 돈을 썼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나름 신중하게 알아봤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과실이었다. 이쪽 생태계를 모르니 매뉴얼대로 가다가 판단 미스를 한 것이다.
“사장님. 여기 뒤에 구멍 뚫어주면 돼요. 핸드폰으로 사진 보냈으니 참고해주세요.”
“사장님, 분명히 사진 보내드렸잖아요. 왜 그 위치가 아니고 엉뚱한 곳에 뚫어놓은 신 거예요?
“직접 와서 가르쳐 줘야죠. 이 공사 못하겠습니다.”
본인이 잘못해놓고 화를 더 내기가 일쑤라 그때부터 음료수 갖다 주면서 일 하는 동선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곳이구나 생각하고 인테리어 소장이 필요한 이유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배관 난방공사를 동시에 시작할 때는 전에 계약해서 그 사장의 매뉴얼대로 철거를 했는데 서로의 불협화음으로 공사를 하루 남기고 아웃한 적도 있었는데 앞이 막막해서 하루는 멍만 때리고 있었다. 그러다 다른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니 다른 사장님을 연결시켜 주셨다. 나랑 안 맞다 싶은 사람은 거절하면서 혼자 따로 구하는 요령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겼다.
“사장님, 윗집 누수공사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저희 집 비트 교체하고 나서 밑에 바닥 좀 더 파서 하수관 하나 뚫어주세요. 위에서 물이 떨어져도 물 빠져야 하니깐요. 마무리 하면서 방수액 발라서 다른 벽에 새지 않도록 신경 써주세요. “
“진작 빨리 말해 주시지. 기계 다시 가져와야 되잖아요. “
“처음에 여기 부분 설명드렸잖아요. 죄송하지만 수고해주세요.”
벽을 허물고 조적을 쌓고 주방과 현관 쪽을 분리를 시켜야 하니 가벽을 세우는 일이나 베란다 창고를 만들어 수납공간을 만드는 일 샷시, 씽크대 고르는 등 그런 중간 과정은 전문 지식들과 경험 노하우가 너무나 필요했다. 난 언제나 사장들께 질문을 하였다.
옆집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죄송하다고 하고는 그 집 앞 버릴 큰 물건들을 버려주고 나니 민원은 좀 없어졌다. 그렇게 이 집의 온도는 차츰 바뀌어가고 있다. 아버지가 살았던 쓰러져 가던 집이 철옹성이 되어가는 것만으로 뿌듯하다. 그리고 내가 살 공간이다.
트라우마가 없어져간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