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물은 식물, 화분, 흙, 그리고 또...
철물점의 이케아인 개미지옥과도 같던 BAUHAUS에서 겨우 빠져나와 한 손에는 흙, 다른 한 손에는 깨지지 않게 조심히 잡은 화분과 로즈마리를 안고 집에 도착하니 우선 씻고 숨부터 고르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손이 얼마나 시리던지, 귀는 모자로 잘 숨겼는데 장갑을 깜박하다니. 역시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씻고 늦은 점심을 먹고 조금 에너지를 비축한 다음, 해 지기 전에 분갈이를 끝내야 할 것 같아서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그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쳤다. 다름 아닌 화분에 구멍 뚫린 부분 위에 올릴 그물 같은 것을 안 산 것이다. 못 본거 같은데, 봤으면 당연히 샀을 건데, 나의 첫 분갈이는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인가, 별에 별 생각이 몇 초간 스쳐 지나가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께서는 공원에 납작한 자갈을 줍거나 혹은 쓰레기통에서 스티로폼을 주워서 사용하면 된다고 하셨다. 어머니,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쓰레기통을 뒤지라니요. 고민고민하며 우선 서랍에 있는 물건들을 매의 눈으로 살펴보다 스펀지 수세미가 눈에 띄었다. 부모님께, 이거 잘라서 사용하면 안 될까? 하니 가능할 것 같다고 이걸로 하면 되겠다, 하셨다. 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기분이 좋아져, 어떻게 이렇게 똑똑할 수가 있지, 혼자서 자화자찬을 하며 너스레를 떨다 전화를 끊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분갈이를 준비하였다.
우선 발코니로 민트와 로즈마리, 그리고 조금 전에 사 온 것들을 모두 옮기는 것으로 분갈이 준비 완료. 그다음, 화분 구멍으로 흙이 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스펀지 수세미에 수세미 부분을 자르고 2등분을 하여 화분에 담았다. 그 위로 새로 산 흙을 살짝 덮고 민트와 로즈마리를 각각 원래 있던 화분에서 꺼내어 새로운 화분에 안착시켰다. 그 위에 새로운 흙을 덮고 샤워실에 데리고 가 물을 흠뻑 주고 나면 끝! 막상 시작하니 금방 끝나버렸고, 흙도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10kg가 민망할 정도로 대부분이 남아 버렸지만, 앞으로 또 사용할 날이 있겠지, 생각하며 발코니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로즈마리는 뭔가 같은 곳에서 사서 그런지 안에 들어있던 흙도 비슷하여 분갈이를 한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딱 맞아떨어진 것 같은데 민트가 조금 불안하다. 그래도 무사히 분갈이를 끝낼 수 있었던 것에 의의를 두며, 멀찍이 의자에 앉아 바라보고 있는데 왠지 모를 뿌듯함이 마음 가득 든다. 거기다 덤으로 손에서는 로즈마리와 민트 향기가 폴폴 풍기는데 집에서 느껴지던 적막함과 쓸쓸함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는구나, 이래서 식물도 반려동물과 같은 대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얘들아, 내가 자주 만져주고 이쁜 눈으로 바라봐주고 이쁜 말도 많이 할게. 우리 진짜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