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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맹글 Dec 08. 2020

조깅 같이 하실 분을 구합니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11월, 부분 봉쇄가 시작되고 난 후, 나는 집 앞 슈퍼를 다녀오는 것을 제외한 바깥출입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원래부터도 없던 나의 체력은 점점 더 바닥을 보여왔고, 몸 여기저기서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에서 혼자 요가를 하려고 해도 매일 내일로 미뤄버려, 요놈의 몸뚱아리를 어떻게 움직여 본다, 고민하던 와중, 독일에 사는 한국사람들의 커뮤니티인 '베를린리포트' 라는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 눈에 띄었다. '쾰른 운동, 조깅 친구 구해요' 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어머 이거다! 싶은 마음에 바로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조깅을 하시는 듯하였고, 거기다 두 분이서 시작한 지 아직 2주가 채 되지 않은 상태라고 하셔서 친구도 사귀고 운동도 하고 일석이조라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두근 들뜨기까지 하였다. 수요일과 일요일에 만나서 뛴다는 연락을 주고받은 날이 우연히도 일요일 아침이었기에 당일부터 바로 참여한다고 하고 바로 준비하여 나섰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이어진 첫 조깅

집합장소에 모여 서로 통성명을 하고 수줍게 인사를 한 후 조금 걷다가, 이제 뛰어볼까요? 라는 소리에 맞춰 살포시 뛰기 시작했는데, 아뿔싸, 집에만 있으면서 거의 움직이지 않던 생활을 계속 유지해 온 나의 몸 상태를 너무 간과하였나 보다. 거기다 같이 조깅을 하게 된, 내 눈에 비친 두 분은 거의 마라톤 선수급이었고, 뛰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 돼서 나는, 3시간 전에 먹은 김치볶음밥이 위에 걸린 것처럼 위장이 꼬이며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2주간 두 분은 10km 정도를 1시간가량 뛰다가 걷다가 하고 헤어졌다고 알려주셨는데, 나로 인하여 이 날은 같은 거리를 완주하는데 1시간 반이 넘게 걸려버렸다. '저 더 이상은 못 뛰겠어요'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어떻게든 이 악물고 뛰다가 걷다가, 앞서 가는 두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느린 발걸음으로 어떻게든 쫓아갔지만 나 자신이 너무 민폐인 것 같았고, 내 몸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박력 있게 시작한 첫 조깅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밥을 먹을 힘도, 씻을 힘도 없었고, 이미 허벅지, 골반, 허리, 발목 순으로 뻐근하고 찌릿한 기운이 맴돌았다. 내일은 일어나지도 못 하겠구나, 라는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정말 나는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특히 골반과 허벅지 뒷 쪽, 그리고 발목이 얼마나 아프던지 걷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래도 어깨가 아프지 않아 괜스레 혼자, 온몸에 힘을 빼고 바른 자세로 잘 뛰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다가오는 수요일이 걱정되기 시작하였고, 이 분들과 조깅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빠와 통화를 하며 조깅 이야기를 하니, 누가 미련하게 운동을 그렇게 시작하냐며 혀를 차셨다. 미련하게 시작하고 어떻게든 따라가야지 실력이 늘지 않을까? 이렇게 같이 안 하면 꾸준히 할 수 없을 거 같아, 라는 나의 말에 그 말도 일리는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라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다치지만 말아라 하시는 걱정이 레이저를 쏘는 것 같은 눈빛을 통하여 전화기 넘어까지 뜨겁게 느껴졌다.


수요일이 되자 저녁에 있을 조깅 걱정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두근두근 대던 첫날의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무섭고 겁나고 걱정되는 기분에 사로잡혀, 어쩌지, 어쩌지, 발만 동동 굴렸다. 그래도 이렇게 라도 다시 움직이지 않으면 뭉쳐버린 근육이 안 풀릴 것 같았고, 시작한 김에 한 번은 더 해보자 라는 생각에 약속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근육이 뭉쳐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겁을 먹어서 그런지 첫날보다 더 속도가 나지 않았고 더 일찍 지쳐버렸다. 나로 인하여 같이 뛰어 주시는 분이 속도를 일부러 많이 늦춰주시고 자주 쉬어주셔서 감사하면서도 너무 죄송스러웠다. 나 때문에 운동이 되지도 않으셨겠다, 싶어 미안하다고 하니 걷는 것도 운동이니 괜찮다, 나도 처음에는 적응하기까지 힘들더라, 금방 잘하실 거다, 말해주시는데 정말 고마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도 마음도 산산조각이 나버려 이대로 조깅을 포기해야 하나, 계속한다면 민폐가 되지 않게 혼자 조금 연습하다가 다시 합류해야 하나, 그만한다고 할까, 하는 마음이 굴뚝같이 들던 날이었다.

다음 날, 이대로 포기하는 것은 너무 아쉬울 것 같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보충수업처럼 혼자 다른 날에도 조금씩 뛰는 연습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밖을 나왔다. 하지만 나만의 이 보충수업이 나를 더 힘들게 할 줄이야. 이틀 연속 뛰어서 그런지 지난주 일요일보다 덜 뛰고 무리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발목이 욱신거리며 아프기 시작했다. 걸을 때조차 쑤셔서 절뚝거릴 만큼 아파 혹여나 염증이 생긴 건 아닌지, 병원을 가봐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어 인터넷을 수도 없이 찾아보았다. 가만히 있던 근육들이 데모를 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가만히 탱자탱자 잘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충격이 가해지며 일을 하게 되어서 모두들 들고일어난 모양이다. 나는 근육들의 데모에 기가 죽어, 조깅은 나랑 맞지 않는 운동인가, 잘 걷지도 않으면서 무슨 조깅이라고 까불었나, 별 생각을 다 하며 이번 일요일은 또 어떻게 버틸지 걱정만 앞섰다. 드럭스토어인 DM에 가서 놀란 근육들의 민심을 잡기 위해 바르는 파스를 샀다. 집에 돌아와 열심히 바르며 우선 하루빨리 발목이 낫기만을 바랬다. 다행스럽게도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인하여 일요일 아침이 되자 다들 컨디션 저조를 이유로 오늘은 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연락들이 오고 갔고 나는 이때다 싶어 오늘은 다 같이 쉬어요, 라며 한 끗 방긋 웃으며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일주일을 쉬었더니 발목은 다시 회복이 되었고 어김없이 수요일은 다가왔다. 발목이 낫기만을 바라며 파스를 바르던 일주일 동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변화가 있었나 보다. 에라 모르겠다 정신으로 뛰다가 안 되면 멈추지 뭐, 라는 생각으로 수요일의 조깅에 참여했더니 같이 하는 분과 어느샌가 비슷한 속도로 내가 달리고 있었고, 숨이 차서 너무 힘이 들 때는 나도 모르게 '우리 저기까지 뛰고 잠시 걸어요' 라고 말을 내뱉는 용기마저 생겨나 있었다. 같이 뛰시는 분께서도 '언니, 이제 잘 뛰시는 거 같아요' 라고 해주셨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여기까지예요 라는 말이 나올 뻔하였지만 숨을 고르기 위해 고마워요, 이 한 마디밖에 못 하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뛰다 걷다를 반복하였다.

집 근처 공원에서 이루어진 보충수업


누군가가 그랬다. 유산소 운동이 스트레스 해소에 아주 도움이 된다고. 그래서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조깅을 하고 마을 마라톤에 참여한다고. 마을 마라톤에 참여하는 것이 연례행사이며, 여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박사 졸업을 못 한다는 도시전설까지 있다고.


나도 그와 같은 길이 열린 것인가,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와 동시에 같이 뛰는 분들처럼 뛰면서 숨이 차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경지에는 언제 도달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가능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어떻게든 계속해서 조깅을 해보려고 한다. 부분 봉쇄 속, 이렇게라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그리고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한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며 스트레스 해소에 거기다 박사 졸업의 비공식 관문이라면, 조깅, 지금의 내가 해내야 할 하나의 숙제라는 생각마저 든다. 나 잘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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