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글맹글 Dec 26. 2020

한 번 크게 망가져버린 자존감은 회복되기 힘들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며칠 전, 인터넷을 뒤적이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이라는 만화 원작을 배경으로 한 한국 드라마가 짧게 짧게 잘려서 업로드되어 있는 동영상을 보았다. 못생겨서 받은 상처들로 자존감이 엄청 낮은 주인공이 성형 후 이뻐졌음에도, 예전에 비하면 자존감이 조금은 생겼을지언정 아직까지도 보통 사람에 비해 아주 낮은 자존감 형성으로 인한 언행들이 내 눈에 밟혔다. 한 번 크게 망가져버린 자존감은 회복되기 힘들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누가 잘생겼고 누가 이쁘고 스토리가 어떻고를 떠나 이 드라마가 그냥, 참, 그랬다.

자존감 회복. 나를 사랑하기. 나를 이쁘다 해주고 아껴주고 믿어주고 소중히 여기기.

관련된 책도 많이 읽고 이야기도 많이 듣고 머리로는 많이 아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정작 마음으로 느끼는 게 어디 말처럼 쉽나.

잊으려고 해도 아직까지도 가끔 자다가 벌떡 일어난다.
중학교 때 왕따 당했을 때 내 USB에 저장되어 있던 듣도 보도 못한 욕이 가득 적힌 파일. 책가방 안에 들어 있던 쓰레기. 날 쳐다보던 눈빛들.

애들이 괴롭힌다고 나를 싫어한다고 엄마한테 이야기했더니, 네가 먼저 잘 못을 했겠지, 네가 잘해주고 좋게 대해줬는데 걔네들이 이유 없이 너를 해코지하겠냐, 좀 더 사람들을 포옹하고 이타심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엄마.
고등학교 때 참 많이 믿고 의지하며 soulmate라고 생각한 사람이 대학 졸업 때쯤 너는 애가 멀쩡하게 생겨서는 왜 아직 제대로 된 연애도 못 하냐, 개나 풀들이랑 이야기 나누고 하는데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좀 나쁜 물도 들고 다른 세상도 좀 봐라 라며 날 짓밟은 일.
전 직장의, 나와는 같이 일한 적도 없고 이야기도 많이 나눈 적이 없는 인사팀 팀장과 패러리걸팀 팀장이 분기마다 불러서 네가 문제아다, 사람들이 다 너 싫어한다, 행실을 어떻게 했길래 그러냐, 대학 잘난 척하지 마라, 네가 변호사인 줄 아냐 그럴 거면 나가서 변호사 자격증 들고 다시 들어오던가, 내가 그만두라고 그랬냐 여기랑 안 맞는 거 같은데 다시 생각해 봐라고 그랬지. 라며 내 입에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붙잡고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세뇌를 당해야 했던 일. 쓸개 제거술 한다는 말을 듣고 제일 먼저 한 말이 “어머 그럼 이제 쓸개 없는 X 되는 거야?” 라며 정신과 약 먹는 거 트집 잡고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약한 것 같은데 여기 더 있을지 다시 생각해봐라는 그 말들.
퇴사하기 몇 달 전에 들어온 사람은 자신의 잡일은 나이가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다 나에게 시키고 피고와 원고 모두를 피고로, 임대인과 임차인을 섞어서 번역해서는 나에게 고쳐달라고 하고 자신이 다 한 듯 보내버리는 게 매일매일. 이제 적응되셨으면 알아서 해주셨으면 좋겠다니까 그때부터 뒤에서 호박씨 까기까지.

도저히 더 이상 버티다가는 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아 퇴사하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나를 말리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감사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지만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다며 퇴사 수속을 밟고 있는데, 나의 퇴사 이유인 저 두 팀장은 사람들에게 내가 평소에도 계속 힘들어해서 매번 상담도 해주고 많이 챙겨줬는데 일이 너무 많다고 힘들어하더라, 같은 팀에 OO(저 두 팀장이 나 다음으로 내쫓고 싶어 하던 사람이자 나와 트러블도 없었던 사람)이가 괴롭혔나 봐, 나도 좀 더 견뎌보라고 말려봤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트렸던 일.

근데 정작 나를 괴롭힌, 나를 절망에 빠트린 사람들 모두가 정말 밉고 다 죽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사실은 이 사람들 앞에서 쭈구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한 나 자신이 결국엔 더 밉다. 나를 내가 감싸주고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나를 탓하고 나를 되돌아보며 사과만 하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가장 크다. 이러한 과거에 붙잡혀 아직까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기 직전, 혹은 타인의 눈을 볼 때 불안하고 무서워하는 나 자신이 안타깝다.

대학교 때, 대학원 때, 그리고 첫 번째 회사를 다녔을 때처럼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고, 눈에 띄어도 그냥 너는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넘어가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살고 싶다. 너는 한국인인데 왜 그래? 한국인은 이래야지, 여자가 이래야지, 법대 나왔는데 말투가 왜 그래? 30살이 넘었는데 아직도 애처럼 왜 그래?, 등과 같이 모든 것을 그룹화하여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 라는 것을 만들어 그 속에 있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소외시키고 어떻게든 구겨트려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상자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사람들과는 더 이상 함께이고 싶지 않다.


이제라도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키려고 한다. 그러려면 우선  “나는 안전하다, 나는 나를 지킬  있는 힘이 있다, 나는 내가 지켜야 할 만큼 소중하다” 는 것을 마음에 심어줘야 한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있는 힘을 기르기. 이것이 나의 평생의 숙제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삶을 항상 응원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