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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맹글 Jan 06. 2021

새해 첫 목격이 노상방뇨라니

아저씨 거기서 뭐하시는 거세요?

2021년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1월 3일까지는 연휴였기에 엄밀히 따지면 새해의 첫 시작은 1월 4일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첫 시작은 1월 4일 아침 8시가 되자마자 위층에서 리모델링하는 공사 소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변한 점은, 사람들의 항의로 인하여 원하는 학생들에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COVID-19로 인하여 폐쇄되어 있는 학교 식당 건물 한켠에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1월 4일부터 마련해 준다는 방침이다. 공사 소리가 작년보다 더 심해졌기에 나는 눈 뜨자마자 부랴부랴 준비해서 집을 나섰다. 얼마만의 집 밖인가, 생각하며 처음으로 가 보는 곳은 그게 어디든 긴장하는 성격 탓에 별에 별 걱정을 했던 것 같다. 학교 식당 건물에는 문이 두 개가 있는데 정문만 열려 있다고 하여 정문으로 보이는 큰 문으로 갔더니 이게 정문이 아닌가 보다. 다시 둘러 둘러 돌아가서 작은 문으로 갔더니 직원 분이 앉아 계셨다. 공부 방 (Lernräume) 이용으로 왔냐고 물어봐주셔서 맞다고 하니, 앞에 보이는 종이에 이름, 주소, 전화번호, 입실 시간, 사인을 하고 손 소독제를 사용한 후 들어가라고 알려주셨다. 웃으며 인사해주시고 친절하게 알려주신 덕분인지 이때 나의 긴장감은 반으로 줄어들었던 것 같다.


공부 방 모습

이 공부 방은 강의실 같은 곳에 긴 책상이 벽 부분에 줄을 지어 있었고 방 중간에도 몇 개의 책상이 놓여 있는 공간인데, 책상마다 X표로 테이프가 붙여져 있어서 앉을 수 있는 자리와 앉으면 안 되는 자리가 구분되어 있었다. 나는 3번째 방문자였기에 공원으로 향하는 길이 보이는 창가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어 나는 정문으로 올라오는 계단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이 쪽 풍경도 나쁘지 않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도 하고, 새로이 이 공간에 들어올 사람을 미리 볼 수도 있으며, 조깅 시작을 위해 스트레칭을 하거나 조깅하며 달려가는 사람들 등이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나를 포함하여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식당 건물이 열렸다 생각하여 들어오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퇴짜 맞고 되돌아가는 모습들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여기는 안전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하였다. 그때부터였을까. 이렇게 평온하게 집 밖에 앉아 있는 게 꼭 카페에 온 것 같았다. 이렇게 앉아 밖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카페와 다른 점은 아주 아주 조용하고 다들 물만 마실 뿐 아무도 음식 섭취를 하지 않는다는 점뿐이다. 물론 공사 소리를 피하여 논문을 읽으러 왔지만 이 창 밖 풍경에 취하여 한동안 멍하니 밖을 바라보며 만족하고 있을 때쯤, 문제의 한 아저씨가 주춤주춤 계단 쪽으로 다가오셨다. 저분도 이 건물에 들어오시려고 하시나, 생각할 찰나, 갑자기 나와 마주 보이는 계단 모서리에 다가가시더니 소변을 보시는 게 아닌가. 다행히 우리 사이에는 담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담이 없었을 때의 상황은 상상도 하기 싫다. 불행히도 이 담은 담 사이사이 빈 공간이 있었기에 소변줄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였고, 놀라서 얼음이 되어 버린 나와 아저씨는 눈이 마주쳐 버려 황급히 나는 노트북으로 내 시선을 옮기고 숨 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새해 첫 목격이 노상방뇨라니. 2021년에 노상방뇨라니. 프랑스에서는 잠시 지내는 사이에도 몇 번 목격을 하였기에 프랑스만 그런가 생각했었는데 독일도 똑같았다니. 그럼 지금까지 맡은 찌릉내들은 강아지의 소변만이 아니었나. 길거리에서 대변도 보시려나.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대변 정리를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 대변들이 다 강아지 것만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정말 그 순간의 찰나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아저씨는 볼일을 보신 후 학교 식당 건물에 들어오시려고 하시다가 직원분의 제지로 못 들어오시고 다시 돌아가셨다.


이 일이 나에게는 꽤 충격적이었기에, 그리고 특이한 경우를 본 것이라고 믿고 싶었기에 같은 도시에 사는 친구에게 노상방뇨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아주 많이 본 광경이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며 아저씨뿐만 아니라 청년, 아줌마 등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연구실 건물 앞에서 노상방뇨를 하고 간다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별나라 이야기란 말인가, 생각이 들며 황당해하는 나의 얼굴을 숨길 수가 없었다. 카니발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정말 쉴 새 없이 볼 수 있는 광경이라는 말에, 정말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유럽은 공중화장실이 대부분 유로다. 50센트 정도를 하는데 돈 내는 게 아까워서 노상방뇨를 하는 것인가 싶다가,  개나 사람이나 비슷한 장소인 건물 벽이나 계단 모서리 부분에 소변을 누는 것도 참 웃기다 생각이 들다가, 그 심리란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혹시 풀숲이 아닌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를 해 보신 분이 계시다면 왜 그러셨는지 살포시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볼일을 보신 후, 최소한 소변이 씻겨 내려가게 물을 좀 부어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강아지 소변에도 찌릉내 방지를 위하여 물을 부어주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신의 소변에도 그 정도의 센스를 발휘해 주시면 참 감사할 것 같다. 그 이전에 노상방뇨를 안 해주시면 더 감사하겠지만.


이 날은 정말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니 새해 첫날부터 본 이 광경으로 왠지 올해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소변이 꿈에 나오면 길몽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를 실제로 봤으니 얼마나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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