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글맹글 Jan 18. 2021

우와 눈이다, 눈!

쾰른에도 첫눈이 내렸다

코로나 블루인가, 요즘 우울감이 온몸을 세차게 감싸고 있다. 그로 인해 낮이고 밤이고 잠만 자려고 하고 침대로부터 나오는 것조차 힘이 든다. 오늘도 점심을 꾸역꾸역 먹고 잠을 자다 3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눈이 떠져서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을 켰다. 첫 피드가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사는 친구들의 눈이 오고 있는, 혹은 눈이 얇게 쌓여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고 나는 이내 부럽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겨울의 한국은 폭설이 엄청나게 내려 일주일이 멀다 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눈 소식을 들었다. 물론 상상도 못 할 매서운 추위로 눈이 다 얼어버려 출퇴근길은 물론 여러 곳에서의 위험과 불편함은 걱정이 되지만, 누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멀리 있는 나의 눈에는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 눈사람을 다 만들고 아주 뿌듯해하며 같이 사진 찍는 모습, 눈싸움을 하는 모습, 뽀드득 소리를 내며 눈 위를 걷는 모습 등만이 비췄다. 거기다 여기는 눈은 고사하고 우중충한 하늘과 어정쩡한 비로 인하여 내 마음도 하루하루 더 우중충해지고 있었는데 인근 나라에서까지 눈이 내리다니, 뭔가 나를 더 절망감에 빠트리는 것 같았다. 집 안에만 있고 무념무상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진 내 모습이 영상통화로도 보이는지 아빠는 봉쇄가 금방 좋아질 것 같지도 않고, 핫도그도 먹고 싶다 하지 않았냐, 몇 달이라도 좋으니 한국에 돌아와서 있는 것이 어떻겠냐고 요즘 들어 매일 물어보시는데, 진짜 한국을 다시 잠시 몇 달이라도 다녀올까, 이 시국에 왔다 갔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민폐야 민폐,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등 별에 별 생각이 다 드는 와중의 인근 나라의 눈 소식이라서 그런지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네덜란드에 있는 친구로부터의 메시지를 보고 상황은 급변했다.

"I saw the forecast it also falling in Germany!"

창 밖으로 보인 첫 설경

그랬던 것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 어두워진 창 밖은 볼 생각도 안 하고 밖에 눈이 내리는 줄도 모른 채 그저 절망감에 휩싸였던 것이었다. 눈이 가진 힘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나를 침대에서 바로 나오게 하여 발코니로 향하게 하였으니 말이다. 내 눈 앞의 풍경은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흰 눈으로 쌓인 지붕들이었다. 매번 날씨 예보에서 눈이 온다고 하여도 비나 비가 섞인 눈이 내려 볼 수 없었던 풍경이어서 작년 2월에 간 눈이 펑펑 쏟아진 할슈타트는 꿈의 나라인 듯했는데 드디어 다시 내 눈 앞에 설경이 펼쳐진 것이었다. 갑자기 발 밑의 주차장에 있는 발자국들이 귀여워 보였고 매일 보던 트램마저 새로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녹을 것 같은 눈이었기에 내일 아침에 다시 이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지붕 위에 만이라도 눈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생각만 하며 잠에 다시 든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찍은 바깥 풍경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나와 발코니로 나왔다. 다행히 밤새 모든 눈이 녹지 않은 모양이다. 거리는 이미 대부분이 녹아 있었지만 발 밑의 주차장에는 아침에 나간 차들의 바퀴 모양이 선명히 나 있었고, 그 옆에는 누군가의 사랑 고백이 남아 있었다. 하트 모양이라니, 하고 많은 모양 중에 골라서 고른 모양이 하트 모양이라니. 눈처럼 포근한 누군가의 마음인가 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로써 나의 올 겨울 첫눈은 끝이 나겠구나 싶었다.

펑펑 내리는 눈과 다 녹아버린 눈

오전 11시가 조금 넘을 무렵, 갑자기 창밖에 아주 굵은 눈송이들이 펑펑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부랴부랴 발코니로 나가 사진과 동영상을 열심히 찍었다. 휴대폰 사진으로도 눈이 내리는 것이 찍힐 정도였으니 정말 큰 눈들이었다. 이런 깜짝 선물을 내려주다니! 하지만 여기서는 눈도 비처럼 내리나 보다. 3분, 4분 정도 내리더니 정말 신기할 정도로 눈은 그쳐버렸고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눈은 모두 녹아버렸다. 요즘 무기력함에 매일 밍기적거리던 나였기에, 짧은 시간에 펑펑 내리던 눈을 놓치지 않고 일어나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며 즐겼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뿌듯함이 밀려왔다. 한국에서처럼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거나 혹은 조용히 뽀드득 소리 나는 눈 위를 밟는 일들을 하지 못 하였지만 지붕 위에 쌓인 눈과 주차장에 세겨진 하트 모양의 눈으로 내 마음은 조금 활기를 되찾은 것 같다.


사실 컴퓨터로 글을 다 쓰고 저장을 한 후,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휴대폰으로 다시 업로드한 후 새로 저장을 하다 오류가 나서 쓴 글은 다 지워지고 사진만 덜렁 남아 있어 망연자실한 채 멍하니 몇 시간을 보냈다. 다시 첫눈과 관련된 글은 쓰고 싶지도 않아 저장된 사진까지 다 지워버렸었지만, 눈은 정말 대단한 힘을 가진 것 같다. 다시금 컴퓨터 앞에 나를 앉게 하였고 이렇게 글을 다시 작성하게 하였으니 말이다. 어렵게 찾은 나의 아주 작은 활기를 없애버리고 나를 구렁텅이에 빠트리고 싶지 않다면 이번에야 말로 잘 저장이 되길 바래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