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시대가 1년이 넘게 지속된 후
연말연시, 한동안 조깅을 소홀히 하였다. 춥기도 춥거니와 비가 계속 추적추적 내려 밖을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의 많은 프로 조깅러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세차게 부는 깜깜한 새벽에도 거리낌 없이 밖으로 나와 조깅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나는 그분들만큼 조깅에 대한 열정이 없기에 조금만 비가 와도 포기하기 일쑤다. 그러다 어제는 오랜만에 날씨가 좋았기에 조깅을 하러 나갔고, 마침 주말이어서 그런지 강아지 산책 혹은 조깅하러, 걸으러 나온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그리고 가장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아주 큰 백조도, 오리도, 갈매기도 아닌 사람들이 스스로 띄엄띄엄 호숫가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자로 재어서 거리를 맞춰 앉았는 듯 서로 간의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뭔가 규칙적이고 규율을 꼭 지키는, 기본에 충실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독일스럽다, 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을 떠보니 밤새 눈이 잠시 내렸었나 보다. 발코니로 나가 밖을 내려다보는데 조금 쌓여 있는 트램 길 주변의 눈을 청소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보였다. 주황색 형광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분들이 빗자루로 눈을 쓸어 내는 소리가 11층인 내 집까지 들려 왔고 그 소리가 썩 나쁘지 않았어서 그런지 나는 한동안 멍하니 눈 청소를 하시는 분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깨달은 것이, 이 분들 또한 서로 간의 거리를 지키며 눈을 쓸어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눈을 쓸면서도 각자의 거리를 체크하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일을 한다니, 뭔가 우스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COVID-19 사태가 길어짐에 따라 새로 몸에 베인, 거리두기가 우리 삶의 하나의 습관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마음이 울적해졌다.
상점의 크기에 따라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손님이 정해진 것은 이미 1년이 다 되어 가는 규칙이다. 대부분의 작은 키오스크나 상점들은 한 번에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 상점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사람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이 모습은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비자 관련하여 시청에 가는 길에 볼펜을 챙긴다는 것을 깜박한 걸 깨닫고 급하게 근처 작은 문구점에 들렸을 때에는 아예 문을 열고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문 앞을 책상으로 막아두고 노크를 하게 되어 있었고, 그 소리를 들은 주인이 나와서 필요한 물건을 듣고 가져다주는 일도 겪었다. 이제 슈퍼나 드럭스토어도 그냥 구경 오는 사람들을 제한하기 위하여 쇼핑카트를 챙기지 않으면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 며칠, 몇 달이 아닌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으니 이젠 트램을 타도 옆자리에 누가 앉는 것이 아주 불편한 일이 되어 버렸고, 신호등을 기다릴 때 옆에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서로 당혹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작은 가게 안에 나 말고 다른 손님이 들어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상황까지 와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OVID-19는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백신이 나오면 금방 끝이 날 것이라는 희망도 점점 사라져, 거리두기와 각종 규제들로 불편함을 호소하던 사람들은 이제 하나 둘 지쳐가며 담담하게 이러한 삶의 형태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 모습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흑사병을 시작으로 스페인 독감 등 COVID-19보다도 강력했던 전염병도 어느 순간 지나고 나면 다시 학교도 열리고 파티도 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게 되었듯 언젠가 이 시기도 지나면 다시 사람들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함께 식사를 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요즘을 버티는 것 같다. 호숫가에 앉아 있던 사람들, 그리고 트램 길에 쌓인 눈을 치우시던 분들의 거리두기가 꼭 효과를 발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