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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맹글 Jan 31. 2021

오랜만에 오래 머물렀던 슈퍼에서

라바바, 무슬리, 쌀, 바나나 주스

일주일 만에 집 밖을 나섰다. 냉장고에 음식도 거의 동나가고, 쓰레기도 분리수거하러 가야 하고, 또 슬슬 바깥공기를 마시며 좀 걸을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가던 슈퍼를 일주일 만에 가서 그런지 슈퍼에서만 1시간 반 정도 있었다. 덕분에 여러 가지 물건과 재료를 실컷 구경하였기에 오늘은 독일 슈퍼에 와서 신기했던 것, 충격적이었던 것, 그리고 요즘 내가 빠져 있는 것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1. Rhabarber, 라바바라고 불리며 한국어로는 대황이라는데 듣도 보도 못 한 단어의 야채가 그 첫 번째이다. 매번 라바바 주스만 보았지 실물은 오늘 처음 영접하였기에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먹어보지도 않고 생김새로만 편식을 하는 아이여서, 호기심은 가득하고 궁금함이 하늘을 치솟는데도 용기가 나지 않아 아직까지 먹어보지는 못 하였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고 달고 하여 여름에 차가운 라바바 주스는 더위를 식히는데 짱이라고 하고 라바바를 잘라서 만든 케이크도 디저트로 아주 맛있다고 하는데 당근을 싫어하는 내가 당근주스와 당근케이크에 도전하기까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듯 이 녀석도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릴 듯하다. 독일로 친구나 가족이 놀러 왔을 때, 그때를 노려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괜히 샀다가 버리면 아까우니 사람이 많을 때 시도해봐야지.

생 라바바와 라바바 주스

2. Müsli, 무슬리는 각종 해외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음식인데 나는 단순히 내가 어릴 적부터 먹던 시리얼과 비슷한 맛일 거라 생각했다. 그것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건강한 맛이려니 했는데 나의 착각은 아주 대단한 것이었다는 걸 첫 입에 느낄 수 있었던 음식이다. 네덜란드에서 기숙사에 살 때 친구들이 아침으로 우유나 요거트에 넣고 먹는 걸 보았는데 그때 무슬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처음 보았던 것 같다. 생각보다 실물이 별로였고 보기만 해도 너무 건강한 맛일 것 같아 이미 그 순간부터 좀 꺼려졌었다. 그러다 독일로 와서 집에만 있는 나날들이 이어지며 건강 걱정을 하기 시작하였고, 아침이나 간식으로 네스퀵에서 나오는 초코볼 시리얼만 먹는 나의 입맛에 나름의 변화를 주고자 큰 맘먹고 초코가 들어간 무슬리를 샀다. 하지만 한 입 먹고 더 이상은 먹을 수 없었다. 식감도 식감이지만 맛도 전혀 느낄 수 없는 게 이게 무슨 음식인지 당최 알 수 없는, 소나 돼지 먹이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바로 다른 그릇에 다시 초코볼 시리얼과 우유를 넣고 입 안을 급히 헹구듯 먹어치움으로써 무슬리의 기억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려고 애썼던 기억만이 지금은 깊게 남아 있게 되었다. 요즘은 초코볼 시리얼과 함께 시나몬 맛이 나는 시리얼에 푹 빠졌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하루는 초코볼, 다른 하루는 시나몬 맛으로 나의 위장과 마음을 든든하게 해 줌으로써 내 입에 맞는 것이 장땡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다양한 무슬리
시리얼 코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둘

3. 쌀, 주식이 쌀인 아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여기서도 하루에 한 끼는 밥을 먹으려고 한다. 뭔가 밥을 안 먹으면 속이 니글거린다고 해야 하나, 그 이상한 기분 때문에라도 하루에 한 끼,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꼭 밥과 국을 해서 먹는다. 나는 한국과 일본만 찰진 밥을 해서 먹는다는 것을 네덜란드에 가서 처음 알게 되었다. 중국도 날리는 밥을 해 먹을 줄이야, 라는 생각과 함께 그러고 보면 중국집의 볶음밥이 날리는 밥풀이구나, 라고 새삼 깨닫기도 하였다. 유럽에서는 보통 찰진 밥이 되는 쌀은 '스시용 쌀' 등으로 표시해두고 보통 아시아 음식을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들을 모아둔 곳에서 소량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자스민 쌀이나 날리는 밥이 되는 쌀들 보다 비싸고 양도 적어서 한두 번 해 먹으면 없어질 정도다. 나는 유럽에 와서 쌀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찰진 밥이 되는 쌀은 종류가 한정적인데 비해 날리는 밥이 되는 쌀은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이게 다 쌀이야? 싶은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러한 쌀들로 밥을 하고 나면 그 특유의 향이 밥에 남아있어서, 그리고 뭔가 찰진 밥을 먹을 때보다 더 많이 먹어야 배부른 걸 느낄 수 있어서 나는 내 입에 이미 적응되어 있는 찰진 밥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다 발견하게 된 'Milch Reis' 라는 종류의 쌀인데 이 쌀로 만드는 밥은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먹던 밥과 비슷하다. 알고 보니 이 쌀은 독일에서 디저트를 만들 때 사용되는 쌀이다. 직역하면 'Milk rice'로 이 쌀을 설탕과 우유와 함께 죽처럼 계속 끓여서 만들어 먹는 디저트를 만들 때 사용된다고 한다. 쌀에 설탕하고 우유라니, 말만 들어도 표정이 구겨져 버리는 조합인데 나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몰타에 놀러 갔을 당시 슈퍼에서 요거트 칸이 아닌 곳에서 발견한 세일하는 요거트를 사서 먹었다가 두 입도 못 먹고 포기한 일이 떠올랐다. 그때 그 이상하게 씹히는 식감과 뭐라 향연 할 수 없는, 어디에 비교할 맛도 떠오르지 않는 그 이상한 맛에 충격을 먹었었던 일이었다. 먹자마자 "이거 요거트도 아니고 치즈도 아니고 뭐지, 상했나, 뭐지 이거 이상해"라고 말한 기억만이 남아 있는데 그게 이 쌀로 만든 디저트였나 보다. 그래도 이 쌀 덕분에 아시아 마켓에 굳이 가지 않아도 찰진 밥을 해 먹을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원망은 하지 않기도 했다.

이게 다 쌀이라니

4. 바나나 주스, 독일 와서 처음 보는 주스가 참 많다. 그중 하나가 바나나 주스인데 여름에 바이젠 맥주에 이 바나나 주스를 섞어 마시면 엄청 맛있다고 극찬한 친구의 말을 들은 이후 올여름이 기대가 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바나나 주스만 마시는 것은 조금 거부감이 생긴다. 바나나우유는 잘 먹으면서 왜 바나나 주스에는 손이 쉽게 가지 않는 것일까? 대신 나는 석류주스와 자몽주스, 그리고 가끔 파인애플 주스를 마시는데 주스 코너를 보고 있으면 정말 과일이라는 과일은 다 주스로 만드는 것 같다. 서양배, 복숭아, 베리류, 망고, 용과, 패션프루츠, 리치 등 정말 정말 다양한 과일과 채소들로 만들어진 처음 보는 주스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결정장애가 있으신 분이 여기 오면 주스는 아예 먹지도 못 하겠구나 싶은 생각까지 든다. 거기다 약 대신 음식과 따뜻한 차로 건강을 다스리는 독일답게 주스도 건강용으로 아주 다양하게 나온다. 면역에 좋은 주스, 비타민 C가 많이 들어간 주스, 아연이 많이 함유된 주스 등 그 종류도 여러 가지이다. 언젠가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된다면 매번 마시는 주스 말고 다른 새로운 주스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그때가 되면 저 많은 주스들을 모두 섭렵하리라.

올 여름, 맥주와 함께 마실 바나나 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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