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가 처음에는 내 목소리만 들어도 낑낑거리며 아빠에게 매달리고 난리를 쳤는데,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던 날부터 내 목소리를 들어도 반응이 시큰둥하다. 풀 뜯어먹고 물 마시고 우리와 두리랑 같이 노는데 더 집중을 한다. 내 목소리를 따라 달려와도 내가 없다는 걸 깨달아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잊혀지는 중인 걸까.
잊혀진다는 것, 잊어버린다는 것, 둘 다 모두 불행이자 희망이다. 행복한 기억이든 떠올리는 것조차 힘든 기억이든 잊혀지거나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내일을 맞이하는 준비이자 현재를 좀 더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다. 행복한 기억이 흐려지지 않은 채 살아간다면 붕붕 뜬 상태로 현재라는 땅에 발을 내딛지 못하고 살아가거나, 현실이 그때보다 덜 행복해서 비관적이게 되기 쉽다. 반대로 힘들었던 기억이 흐려지지 않는다면, 그 고통이 조금이라도 희미해지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억한다고 상대방도 기억하길 원하고, 내가 잊어버렸다고 상대방도 잊어버렸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나의 냄새를 맡고 좋았던 기억이 되살아나길 바란다. 곰이는 우리를 많이 닮았으니까 한눈에 나를 알아볼 것이라 믿는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고 해도 지금은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