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이란
아빠는 딸내미가 많이 걱정되나 보다. 이번에 독일로 돌아갈 때는 가스총을 사다 준다는 걸 깜박했다고 다 같이 먹는 마지막 저녁 식사 때 아빠가 말했다. 엄마랑 동생은 그걸 어떻게 비행기에 가지고 가냐, 가지고 가지도 못 하고 설령 가지고 간다 한들 독일 도착하자마자 붙잡히거나 그것도 설령 빠져 나간다한들 그런 것도 사용해 본 사람이 순간적일 때 사용할 수 있지 잘 못 하면 그거마저 뺏겨서 더 큰 일을 겪을 수도 있다며 아빠의 깜찍한 발상에 웃기 바빴다. 나는 생각지도 못 한 ‘가스총’이라는 단어를 듣고 당황한 것도 잠시, 그만큼 나의 안위가 걱정되는구나, 라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가득 생겼다. 일본에 있을 때도 2011년 3월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하여 몇 시간 동안 통신이 끊겨 전화가 되지 않아 마음 졸이게 만든 것도, 그때를 생각만 해도 죄송함이 가득한데, 그러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해외를 떠돌며 인종차별 및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질병들로 부모님 걱정을 시키고 있는 것 같아 이렇게까지 해서 다시 나가야 하나 라는 생각이 잠시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나는 바리바리 짐을 싸고 챙겨서 또 손을 힘차게 흔들고 집을 나왔다.
예전에는 공항에서 짐 부치고 난 뒤부터, 어쩌면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펑펑 울었다. 헤어지기 싫어서였을까, 지금 떨어지면 언제 또 보나라는 생각에서였을까, 혼자가 다시 되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게 싫어서였을까, 그저 계속 흐르는 눈물에 온 얼굴은 다 축축해지고 눈은 퉁퉁 부은 채로 비행기에 타 또 한동안 계속 울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하였다. 이번에는 강아지들과 인사할 때 잠깐, 아빠와 기차역 앞에서 포옹했을 때 잠깐, 그리고는 공항에서 울지 않는 나를 보고 스스로도 조금 신기한 현상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울보는 어디 가지 않는다. 비행기에 타서 자리를 잡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아빠에게 조그마한 일로 괜히 짜증 냈던 것도 생각이 나고 강아지들도 보고 싶고 남자 친구에게 괜히 투정 부리고 못됐게 말을 한 것도 생각이 나고 도착해서 집까지 이 많은 짐들을 가지고 무사히 갈 수 있을지도 걱정되고 생각이 또 많아진 것이다. 이륙 직전 아빠에게 용기 내어 카톡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는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고 나니 순간, 이번에 한국에서 만난 지인 중에 한 분이 갑자기 “너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긴 고민도 없이 “아빠와 강아지들”이라고 답한 내가 떠올랐다. 지금 비행기 안에서 흐르는 이 눈물은 지금 내 삶의 원동력이자 이유인 아빠와 강아지들을 두고 떠나려고 해서 흐르는 눈물인 것일까. 아니면 공항에서 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걱정되어 흐르는 눈물일까.
무엇이든 간에, 어찌 되었든지 간에 나는 다시 비행기를 탔고 나의 본 삶으로 돌아간다. 가족과 함께 한 시간들, 가족 같은 친구의 임신한 모습을 직접 보며 축하할 수 있었던 시간들, 바쁜 와중에도 항상 나를 우선으로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남자 친구와의 시간들, 하늘나라로 간 사촌 동생을 보러 간 시간,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항상 생각나고 보고 싶던 친구들과의 시간들, 먹고 싶던 리스트를 모두 깨부수고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기억되는 사람들과 그 시간들을 가득 안고 몸과 마음 모두 따뜻해진 채 본 삶으로 돌아간다. 이 따뜻함으로 다시 한번 열심히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아가야지. 지금 내 눈 앞에 던져진 해야 할 일들을 꼬박꼬박 하며 건강하게 먹고 자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