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긍정은 긍정적이지않다.

HSP 인간의 욕망과 욕구불만 4. 아이를 키우며

by 후루츠캔디

그렇다.

임신했다.

임신해서 결혼을 하게되었다.

하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나 자신을 스스로 탐색해보며 치유해나가라는 뜻이었을까

Ms. Super-positive.. 항상 좋은 생각만 하려 애썼다.

모두에게 친절해야 내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의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동네의 내 아이의 친구들을 모두 내 아이처럼 사랑해주었다.

아동학을 전공했던 것이 내 아이를 키우는 데 큰 지팡이가 되어준다고 생각하며 내 아이를 돌보았다.

남편이 직업이 없어도 괜찮았다. 내가 직업을 가지면 되니까

누군가가 나를 모함해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애썼다. 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본래는 선한뜻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럴수록 인간관계에 내 삶에 무리가 왔고, 번아웃의 감정이 왔다.

삶 자체가 짝 사랑 같았고, 쌍방이 아닌 일방향적 섬김과 사랑에 점점 지쳐갔다.

아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또 상대는 그것을 당연한 듯 즐길 줄만 알까,

내가 이렇게 살아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친절함으로서 내 자신에게 어떤 가치가 주어지는가, 내가 관계에서의 노력을 통해 얻고자하는 건 과연무엇인가.. 생각했다.

나의 선한 일방적 사랑을 이용하려고만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는 것인가, 나의 선한 자기중심성이 누군가에게 먹잇감으로서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상대를 배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초긍정은 긍정적이지 않다. 그저, 비판적사고를 부정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직면하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것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



자기수용부족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남에게 그토록 수용해달라고 수용해달라고 외치며 살기만했고, 내가 나를 수용하지 못하니 남이 나를 수용하는 것으로 어쩐지 짠하게 내 자존감이 대체되는 건 줄 알고 살았다. 높은 자존감? 자존감이나 자존심이나 그런 내적환상은 남이 채워주는 게 아니라는 틀에 박힌 말, 애초에 자존감이라는 거대하고 부담스러운 단어대신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는게 어때? 하는 혼잣말이 내 안에서 올라왔다.

깨진독에 물 붓기마냥 아무리 친절에 사랑에 긍정을 퍼부으며 경력과 학력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인성으로 나 자신을 남에게 수용받게 하는 것으로는 자기수용이 이루어질리 만무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외로움과 고독

어린시절의 상처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던 거였다.

나의 섬세함도 자랄 때 생긴 상흔의 흔적이었다.

자기수용능력의 부재, 그로인한 부작용이 나의 섬세함에 큰 몫을 했다.



내가 나 자신의 모습을 미우나 고우나 있는 모습 그대로 가만히 바라봐주고, 수용해주고, 그 안에서 해결점을 찾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마침내 자기수용이 시작될 수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쉽게들 말하지만, 자기자신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나 자신의 어린시절과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부분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할 수 있는 용감한 내가 되고 있는.. 그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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