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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Jul 03. 2024

[에필로그] 변태가 짜릿한 이민 생활

해방의 감정을 즐기는 걸로

이른 아침 5시경에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레몬을 넣은 마테차를 마시며 명상하듯 20분 정도씩  [괴롭다 이민] 매거진에 캐나다에 이민 와 고통스러웠던 이민 초기 십여년의 생활들을 주욱 써 보았습니다.  구수한 마테차의 힘은 대단합니다. 정신이 혼란스러울 때에는 맑게 만들어주고, 반대로 초조할 때에는 나의 긴장을 눌러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 주니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좋은 생각, 싱그러운 생각만 하여 삶이 발전적으로 움직일 것 같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있는 사람은 그것들 먼저 생각의 표면위에 떠오릅니다. 이에 대한 무의식적 부정(deny)으로 인해 5분 더, 10분 더 자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 이민생활동안 무엇이 내게 고통이었는지에 대해 진실하게 마주하고, 객관적으로 감정에 이름을 붙이다 보면, 꾹참다 꽉막힌 감정이 하늘에 구름흐르듯 줄줄 흐르는 것을 직면하게 됩니다. 구토 등 신체화 증세도 확인할 수 있구요. 그 후엔, 현실이 무한대로 고통스럽기보다는 내 안의 부정적인 것들을 다룰 수 있게된 나를 발견합니다. 슬픔의 재료들을 글감으로서 표현할 수 있게 되어, 이민 초기 10여년간의 어려움을 하우스키핑하듯 싹 한번 정리하자는 마음가짐으로 한번 쭉 이 매거진에 나열해 보았습니다. 꾹 참고 버티던 두통유발자, 우울 유발자, 불안 유발자들을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무사히 쓰윽 흘려보내며, 이민 초기 15년의 시기를 한 차원 더 깊게, 진심으로 통과한 듯 합니다. 구체적으로 명시하니 정리가 되고, 난삽한 감정의 번뇌에서 ' 내가 괴로운 분량의 한계'가 규정지어지며, 그 이상으로 괴롭지 않아집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더 이상 나를 좌지우지 할 수 없습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는, 그저 힘을 잃은 일들 뿐이니, 수치스러울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 그냥 그런 것들이 되네요. 내 매거진을 읽은 가까운 지인이 내 글을 읽고, 나와 내 원가족의 과거 기억과 사건을 마치 나에 대한 약점취급한다거나, 악의를 갖고 태클을 걸어도, 그것은 정작 내가 아닌 그들 스스로의 마음에서 일어난 화학작용이기에, 비난에 섞여 덩달아 과거의 나로 빨려들어가거나 괴로워하지 않는 나를 발견합니다. 정말 과거의 감정, 사건들과 현재의 내가 분리된 모양입니다.


쓰레기를 버리고 난 후, 더 이상 처리할 것이 없어져 남는 에너지는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 돌아옵니다. 마음에 선선한 산들바람이 들어옴을 느낍니다. 고통을 견디며 과거를 직면한 내게 주는 선물인가봅니다.





오늘 새벽, 나는 싱싱한 멸치꿈을 꾸었습니다. 평소에 멸치생각도 안 하고 먹지도 않는데, 아주아주 싱싱한 수백, 수십마리의 파닥파닥한 은멸치를 가져다가 후라이팬에 볶고 있는 꿈, 아무리 볶아도 은멸치의 투명하고 반짝이는 색깔과 생동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좋은꿈이라네요. 싱싱한 은멸치 한 무더기는 겉보기에도 탐스러웠습니다.


저는 저 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옆집 언니는 옆집언니대로, 핑크 드레스는 핑크 드레스대로 각자 저마다의 색깔대로 저마다의 캐나다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구직 중에 있고요. 남편 또한 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제 아이들도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난만큼 학교 생활을 각자만의 색깔로 대견하게도 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엑스트라 엑티비티하는 것이 너무 행복한데, 아이들이 운동을 좋아해서 수영과 스케이트를 기본으로 음악, 미술, 체육활동을 하며 다양한 대인관계를 하며, 여러가지 감정들을 경험하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 중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입학하려는 Professional 과정에 들어갈 성적도 만들어놓았지만, 저는 생물학적 아이들이 아무래도 이 두 아이가 처음이자 끝일 것 같아서, 많은 박사과정 학생들 중 한 명이 아닌( one of them), Only one for my kids 인 엄마의 역할이 더욱 소중하다 느끼기에, 정해진 속도와 사회적 기준치가 아닌, 나만의 탬포로 나만의 삶을 살겠습니다. 나와 닮은 아이들의 동그란 눈, 오똑한 코, 말할 때 움직이는 도톰한 입술, 갸름한 얼굴을 보며, 아이들의 눈을 마주치고 교감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작은 아이가 사춘기 중반 이후가 될 때까지는 아이들 학교가 끝나는 시간 이후에는 양육에만 전념할 생각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만큼은 저도 제 할 일을 하면서요.


공부야 하면 하고, 일이야 몸바쳐 충성할 수 있지만, 그러다보면 중요한 것들을 많이 놓치게 되는 나를 발견했거든요. 학교 갔다 오는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마음의 간식 몸의 간식을 차려주는 엄마가 최고 엄마이며, 세상에 치여 지친 남편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좋은 부인이 되고, 아이들이 학교 가 있을 동안에는 체력과 능력이 허락하는 한 나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삶이 내가 그리는 삶인데, 절대 양이 요구되는 프로페셔널공부를 이 시점에 하다보면, 먹을 것 준비하는 거, 정서적 공급, 나 자신을 위한 쉼 뭐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게 없음을 발견했거든요. 항상 서두르며 시간과 체력에 쫒기는삶을 산다고해서 뭐 하나 더 내게 주어지는게 없는 캐나다 제도이기에 무작정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하느라 주변을 철저히 포기하며 달리기보다는 개인적 상황 봐가며, 10년 단위 5년단위로 바뀌는 세상의 삶의 모습에도 귀 기울이며 사는 것이 지금처럼 하루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급변하는 세상 속 바른 삶의 자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싱그러운 나무들의 초록을 보고, 땅과 바람의 향기를 맡고, 질 좋은 음식의 맛을 느끼고, 벽난로의 따뜻함을 느끼는, 즉 오직 현재로서의 의미있는 삶이 허용되려면, 지금 이 시각, 시간적, 체력적, 정신적 여유와 깊은 호흡의 절실함을 배웠습니다.



캐나다가 좋은 점은, 먹고 살기 급급해 당장 돈을 나와 내 가족의 안전과 생존의 욕구를 충족시켜야할 최우선의 과제로 두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높은 세금은 나처럼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며, 삶의 특정 단계에서 필요할 때 쓰려고 만들어놓은 사회적 제도를 활용할 수 있기에 이를 누릴때 누리고, 헌납할 때는 헌납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캐나다 몇몇 커다란 도시 이외에는 아직 사람을 굶어죽이고자 하는 곳은 없습니다. 아직은요. 어딜가도 다 살만 합니다. 소유에 대한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다 먹고사는데에 큰 지장 없습니다.




요즘 제 삶에서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것은, 저는 요즘 여러차원의 관계를 회복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캐나다 하트시그널]이라는 매거진에서 기록했듯이, 과거 존재했던 부모님에 대한 나쁜 기억들이 동등한 성인으로서의 차원에서 이해가 갑니다. 자세한 부분을 이 화에서 굳이 다시 말씀드릴 필요는 없지만, 정확한 건, 그 시절 내 부모님은 자신들이 내적, 외적으로 가진 것에 비해 과대한, 최선의 것을 딸인 내게 매일 주셨다는 겁니다. 그거 하나는 인정합니다.  부모님에게서 떨어져 나와, 연락을 단절하고, 허락된 시간과 인지능력안에서 생각할 힘이 주어진 것이지, 한국에 있었으면 얼굴을 보며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아직 졸업하지 못했을 어린시절의 상처가 제 인생 전반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며 살았을 지도 모릅니다. 이거만큼은 극복해낸 것 같아 스스로가 대견합니다. 일부러 성숙해진 척 할 필요도 없이, 어린시절 그 분들과의 삶에서 만든 상흔들로 인해 내게 생각할 거리와 성인으로서 성장할 거리를 제공해주신 내 엄빠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듭니다. 독립이 주는 기쁨이자 독립의 필요성 인가 봅니다.


두번째로, 나와 내가 속한 이 땅을 지키는 절대자와의 관계를 회복중에 있습니다. 유소년기, 청소년기 때, 리더쉽을 실천하신 교회학교 선생님들을 본받아, 저 또한 학교와 내가 속한 집단에서 리더쉽과 적극성, 책임감을 실천하는 사람이 된 것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내 아이들도 지역사회에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자세를 갖는 것은 나 자신을 뛰어넘는 경험임을, 그것이 얼마나 자신과 주변을 고양시키고,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인지 배우고 있습니다. 세상은 자꾸만 호구니 손해보는 짓이니 하며 가치판단을 흐리게 하지만, 과연 무엇이 호구이며 무엇이, 어디까지가 리더쉽일까요? 경험한 사람만이 그 둘을 구분할 경계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8090년대에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쉽지 않은 친절하고, 이해하며 공감하는 리더쉽을 실천하신 교회학교 선생님들의 자율적인 실천의 수혜자로서 나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 내 부모나 친척 이외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직보호가 필요로한 유소년으로서 사랑받고 보호받고 지지 받을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한국 또는 세상 곳곳에 흩어져 지역사회를 위해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계시는 각 종교의 지도자분들, 그리고 크고 작은 집단의 리더분들, 교육자 및 교역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과학을 전공한다음에야 신의 힘을 더욱 믿게되었습니다. 사람이 고되게 머리를 쓰고 증명하고 규명해봐야,삶의 계획이라는 걸 해봐야,  사실 우주 상의 현존하는 수만가지 법칙의 한 1%쯤 명료화 할 수 있으려나요? 그러나 신은 그 모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이민생활에서  내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어리숙한 나의 전제나 추론 또는 계획으로 절대 예측하거나 결론내릴 수 없었으며, 그때 그때 마주하고 처리해나가야했습니다. 내가 이 곳에 존재하는 데에는 분명한 절대자의 계획이 있음을 믿습니다.



The best way to find yourself is to lose yourself in the service of others by Mahatma Gandhi


20대 초반 어릴 때, 학교 밖 사람들 사이에 처음 섞여 있으면서 들었던 도덕적 딜레마가 생각납니다. 악해빠진 세상에서 선하게 살아야하나 vs. 악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도 '이 사회적 썩음에 익숙해지도록' 살아야하나...이왕 살거 악한 세상에서 이겨먹고 손해 보지 않기위해 악을 정복하기 위해 내가 더 지혜로워져야하는 것은 아닌가. 허나, 모두가 신봉하는 그 지혜란 놈은 '나'의 판단만을 믿는, 편협하고 직강한 자아를 만들며,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많을 수록 척박해지며, 악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딜레마가 가능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신의 자율성이 배재당한, 즉, 선택의 자유가 없었음을 전제로 합니다. 자의와 무관하게, 어떠한 이유에서든 세상에 내던져졌는데, 세상에 기준에 맞춰 속할 수 있는 인정받는 집단에 속해 있긴 했는데, 영혼이 있든 없든 이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하니, 과연 '어떻게 (how)' 사는 것이 유리할까 일 것입니다. 내가 없는 세상에 사는 것도 석연찮은데, 그들이 나에게 커다란이익을 줄거라 기대하지는 않는다만, 나와 관련없는 남에게 피해를 보기는 더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수순으로 피해의식의 소용돌이 안에 빠져 버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나는 쉽게 말해 착하게vs. 나쁘게 라는 기준이 아닌, 영혼이 깃든  vs 남이 펼쳐놓은 세상에서의 생존, 이 두 가지 기로에 서 있다고 내 삶의 기준을 정합니다. 세상 기준을 따지기 이전에,  내 영이 주도하는 '어떤 (what)'  삶에서는 내가 설사 남에게 손해를 보는 삶을 살더라도, 내가 택한 것이고, 내 가치관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기에, 목적이 있는 한 억울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부터의 어려움을 겪어도 내가 원하는 삶의 과정 중 일부일테니, 다른 가지의 하위 개념인 착함과 나쁨의 딜레마에 빠질 필요가 없죠.


나와 남을 대할 때, 이익이라는 인간의 하찮은 단순계산을 초월하여 선하게 살 것입니다.  이상적인 만점,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나 이며, 실수하는 나 자신으로 살 것 입니다. 부족함 투성인 주변이웃을 사랑의 으로 볼 것이며, 그 마음으로 나 자신, 내 가족을 사랑하게 될 것 이라 믿습니다.


너의 약함은 나의 강함이다.

Poverty in Soul, 심령이 가난한 자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니.


모든 신들은 자기자신을 내려놓고 신 또는 주변과 함께하라 말합니다.



사람을 원하는 것도 소통을 원하는 것도 사실은 그 바탕엔 내가 연약하고 가난한 존재라는 고백이 전제합니다. 내가 완벽하고 강하면 누구와도 소통하려 하지 않습니다. 필요없으니까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듯, 관계를 갈구하고, 기도하며, 그 곳에서 신의 힘을 발견합니다. 그렇다고 타자에게 모든것을 의탁하는 동시에, 나의 책임에 대해서는 무력하게 살겠다는 말이 아니라,  나의 한계를 인지하고, 하늘이 내게 주신 소명이 무엇일까 열심히 탐구하고 갈구하며 때를 기다리며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살겠다는 뜻 입니다.


아직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인지 지금의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앞에 고통들을 주셨던 데에는 그만큼 그것들이 삶의 어느 순간에 어느 자리에서건 필요하기 때문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괴롭다 이민" 매거진은 이 곳에서 막을 내리지만, 앞으로도 저는 글을 쓰며 행복 할 것입니다. 억지로 "괜찮다 이민" 또는 "성공하는 이민"의 스토리를 지어내고 싶지도 않고, 그럴 일도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고통이 와도 내 스스로 감내할 수 있을만큼 담대해진 나를 발견하니 이제 괜찮습니다. 고난아 몰려와라, 내가 너를 부둥켜 안고 멋지게 춤춰 낼테니!



앞으로도 세상적 기준에서의 흥망성쇠를 초월한, 내 색깔의 삶 속에서 느끼는 차원솔직담백한 글을 통해 내 스스로가 되어볼 계획입니다.




이전 14화 신경안정제보다는 슬픔과 고통의 소용돌이를 택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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