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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후에는 불안이 증폭된다는 무시무시한 내부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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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불안을 짊어지고 산다. 학생들은 학업 스트레스, 직장인들은 업무 스트레스, 거기에 집이 쉼터가 아닌 직장인 주부들은 가족 구성원사이의 스트레스, 그리고 만성적인 금전적 압박까지... 제거하거나 수량화가 가능한 객관적인 이유 말고도,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개인간의 대화, 그리고 스스로와의 대화를 분석해보면 그 저변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불안' 이라는 심리적 상태라는 것을 알게된다.


'불안'은 개인의 시야를 좁히고, 자연스럽게 좁은 선택지안에서의 선택을 압박하며, 후에 타인과의 소통을 불통으로 이끈다. 대화 상대가 그저 자신의 상황을 토로하고 있는 것 뿐인데, 불안이 높은 청자는 곧장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도 순식간에 '나는 말이야' 하며 화자가 말하는 상황과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로 넘어가버리는 것이 그 예이다. 깊이 공감하여 상대의 입장과 내 입장을 섞어 말하는 것 뿐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상대의 이야기를 그저 온전히 들어주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곧장 자신의 이야기로 옮기는 원인이 '불안'이라는 것을 감지하지는 않는 것 같다.



가장 아쉬운 점은, '불안'이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대범하고 정력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 되는지 '나 불안해' 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에서야 집단 안 그리고 개인안에 퍼져 있는 불안의 수준이 상당함을 깨달아서 망정이지, 어쩌면 나 또한 상대와 진실로 소통하고 나와 상대의 마음을 후련하게하는 대화 한번 못하고 죽을뻔 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트레스' 중 '불안' 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그리고 많은 이가 한국 사회적 불안을 떨쳐버리려고 '해외이민'을 선택하고 싶어한다. 실직의 위험, 경제적 불안, 자녀교육의 압박감,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제자리 걸음이라는 절망감... 끔찍한 상황을 생존본능이 탑재된 인간이 감지하기에 '사회를 바꾸면' 한국 사회가 내게 주는 불안의 양을 덜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에서이다.



정답이기 동시에 오답이다. 영주권 그리고 시민권을 딴 후에 주어지는 사회보장제도는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해줌과 동시에 나아가서는 내 어깨만 주어지는 책임인 가족 부양의 의무까지도 덜어내어줘 또 다른 생명을 추가적으로 잉태하게까지 만든다. 대도시만 가지 않는다면, 오래되거나 문제있는 집을 구매하지만 않는다면, 관리비나 이자비용이 크지만 않다면, 거주비의 압박도 서울보다 낮은 편이며(돈이 충분하더라도 웬만하면 비싼 렌트가 하우스구입 및 관리보다 낫다.), 개개인간의 거리가 멀지감치 떨어져있어 층간소음등 생활스트레스도 적은 편이다. 한 줄 서기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내 마음만 바로 잡으면 옆집 캔디와 비교되어 받는 스트레스도 한국에 비교할 수 없이 상당히 낮다. 개발도상국시절을 버텨내고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의 6070년을 깡으로 버텨낸 부모의 왜곡된 생각에서 비롯된 불통소음에서도 자유로워진다. 이민 초반, 우리는 이 편안함을 누린다.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위와 같은 장점에 쉽게 면역력이 생겨 편함을 누리고 사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게 된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속담이 있다. Every dog is a lion at home 이라는 영어속담도 동시에 존재한다. 비록 실력이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자기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이나 자신의 영역에서는 어느정도 우위를 점하거나 유리한 상황을 갖는다는 말이다.


해외여행자의 마음으로 '탈출'의 기쁨을 누렸던 것도 잠시, 정상적으로 자기와 세상을 인지할 수 있는 건강한 개인이라면 이민 3-7년차안에는 반드시 깊은 우울감에 느끼는 시기가 온다. 절대로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이 또한 마땅히 이겨내야만 하는 정상적인 이민 후 정착과정 중 한 단계임을 미리 인식하는 것이 좋다. (이민정착서비스에서 이것 까지 해결해주면 얼마나 좋을ㄲㅏ!) 이 시기를 인식하기 두려워 마음속 깊이 감추고 존재하지 않는 척 하면, 10년 아니라 이민 후 20년 30년 후가 되어서도 불안이 고착되는 시기가 이어질 테니, 지금 내 글은 따끔 하지만 꼭 필요한 ㅇㅖ방주사즈음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이민 약 5년차가 되면, 그 '자기 집'이 사라졌음을 드디어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축하한다! 이제부터 이민 삶의 시작이다. 경력, 지위, 외모, 학벌...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자신감이 바닥나기 시작해 결국 바닥을 치고야 마는, 마치 창공을 날고 있는 비행기에서 보듯, 막연한 안개나 구름이 걷히고 적나라하게 밑바닥을 인지하게 되는, 30대인 내가 내가 이곳에서 나고 자란 10대 아이들보다 나을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정면으로 인식하게 되는 그 시기 말이다. 언어장벽, 사회 규범의 차이, 경력단절, 지원망 부재가 현실로 다가온다. 그제서야 한국사회에서 느끼던 것과는 다른, 깊고 무거운 불안이 시작된다.


이 네가지 대표적인 사항들 중에서 가장 손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지원망'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이민 초기 영어공부나 현지적응에 충실했던 사람도 한국 커뮤니티를 찾게 되는 그 시기. 허나, 모두 이민자라는 불안정한, 사정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한국 커뮤니티에서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가장 큰 특징은, 현지 적응의 10년을 잘 극복해 낸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누어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데, 불안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 결과, 협소한 시각으로 사람을 판단하며,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고, 서열과 줄서기 속에서의 안정감을 추구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보며, 그 관점이 타인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불안'도 급성과 만성으로 나뉘는 지, 이미 이민생활에서 오는 불안이 20년 30년짜리 만성이 되어서 스스로의 불안을 의도적으로 인식하기 더더욱 힘들다. 누군가의 생산적인 비판을 받아들일수 없으며, 그런 사람을 아얘 자신들의 세계에서 내쫓으려 한다. 거절 당함이나 비판을 남성성의 무시로서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는 남자들의 경우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이 행위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며, 여성들의 집단안에서는 은근하고 알싸한 형태로 보다 길게 지속된다. 마치 직장내 ㄸㅏ돌림과 비슷하다. 나를 죽이고 집단안에 숨어 이ㅆ어도 정작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닥 없지만, 그저 그곳에서 벗어나면 암울한 현실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과감한 선택을 시도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 그곳 사람들의 입장이다. 그 또한 그들의 삶이고 생존방식이기에 외부사람이 뭐라 할 수 없다. 그냥 그 특징을 알고 너무 상처받을 필요가 없음을 말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 아얘 속할 필요가 없다.


이 곳으로 빠지기보다는 차라리 불안을 정면으로 인식하고 이민 10-15년 이내에는 이 불안을 정면돌파하고자 세상안에 부딫혀 싸우는 편이 훨씬 낫다. 젊을 수록 유리하다 생각하겠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바닥을 인식한 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불안의 높은 엔트로피야 말로 의미있는 방향으로 재구성하기만한다면 강력한 추진력이나 용기로 전환되기 가장 유리한 상태이다. 힘대로 ㅆㅏ우며 특정 시기가 지나면 반드시 불안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으로 바뀌는 시점, 불안이 낮아지는 시점이 존재하니까 도망가지도 숨지도 말자. 두려워하던 이전에 나에게 그리고 이민을 시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순간만큼은 두 눈을 마주치며 두 손을 잡아주며 꼭 이 말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해서 말이다.


늦을수록 그 자리에서 사는 것이 익숙해져, 빠져나오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니 불안의 깊이를 봤다면, 이제는 하늘을 볼 차례다. 당신이 잠수하듯 세상속으로 뛰어들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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