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놓다.
어제 아들에게 새로운 집 플랜을 보여주었다. 단면도에는 새로 설치될 2.5개의 화장실과 옷장, 그리고 아이들 각각의 방이 있었다. 10학년이 되는 아이가 사춘기 중후반을 달리고 있으니, 동생과 각각의 화장실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도 중학교때부터 집안에 내 욕실이 있었고, 내 전용방에는 퀸 사이즈 베드가 있었고 이를 대학졸업까지 썼으니, 당연히 이맘때쯤이면 내 아이들도 내가 썼던 나만의 섹션이 필요하겠지 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은 공부를 오래하며 자기계발의 기간이 길기에 적어도 20대 중후반 전후까지는 분업하에 집을 공유하겠다는 장기계획을 동반하기도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던 나와 달리, 아이는 그 예쁜입으로
I am grateful for what I have.
I am not that spoiled.
엄마로서 아이에게 이런말을 듣게될 줄은 전혀 몰랐다. 현재의 상태로도 이미 감사하고 있다니 큰아들에게 듣는 말은 엄마인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생각을 하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을까...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1.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다.
요즘 바이럴마케팅이 뜨겁다고 한다. 거기서 유행을 만들고 타인을 선망하게 되고 무심코 나 자신을 타인과의 비교 잣대 도마에 올려놓은 1020은 자신의 가치관 수립이 채 시작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외부의 가치를 비판없이 받아들이는데, 나는 아이들에게 아직 개인기기를 주지 않고 하루에 컴퓨터시간 2시간만 허용한다. 2시간이면 원하는거 뭐든 다 볼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아닌가 싶지만, 상시로 내 폰을 갖고 내가 보고싶을때 수시로 짧고 간결한 동영상이나 사진들을 슉슉 넘겨보는것과 다르다.
2. 중소도시에 거주한다.
서울만 보더라도 재개발 집중 구역에서 돈의 힘을 보며 성장한 아이들과 나처럼 80년대나 2000년대나 뭐 하나 변화없는 주택가에서 성장한 사람은 다른 장면을 보며 성장한다. 캐나다 중소도시, 뭐 매가시티 서울과 비교하면 시골에서 성장한 나의 아이들은 늘 조용하고 정다운 마을에서 고만고만하게 비교라 할 것도 없이 다들 비슷하게 살기에 돈 이외의 가치를 먼저 배우는것이 당연하다. 애들을 키우는 환경안의 정서적 가치가 높다.
3. 공립학교에 다닌다.
중간 수준으로 맞춰주는 공립학교에 다닌다. 학업수준이 높은 아이들은 높은데로 격려하지만, 낮은 아이는 철저하게 도와주며 중간수준으로 최소 맞춰주는 캐나다 공교육을 받으며, 현재 가치의 감사함을 배우고, 다소 학업능력이 뒤쳐지는 아이들은 열등한 대상이 아닌, 도와주고 이끌어서 함께 어울려야하는 대상으로 보기에 약자를 평균깎아먹는 밉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전에 글에서 밝혔던, 상대방에 대한 선한 마음이 자기 자신에게도 통하는 실 예이다. 남을 도와주면 혹여나 삶에서 내가 뒤쳐지는 상황에서도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기에 서울에서 성장하는 것보다 불안의 강도는 현저히 낮으며, 자신을 믿는 마음은 성장할 수 있다. 캐나다 내 소도시 안에서도 경쟁적인 학교와 학급에서는 볼 수 없는 문화이며, 무엇이 옳다 그르다 혹은 더 낫다가 아니라, 협력과 공감력 그리고 리더쉽이 중요한 이 시대에 내 아이와 환경의 상호작용 색깔이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어린아이이며, 어려움이 없었고, 온전한 케어를 받은" 아이"의 관점을 반영하는 말 임에 틀림없지만, 성인이 되어 자아가 깨어지고 사회속에 건강히 흡수되기까지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뿌리가치를 가르치며 키우고 있는것 같다는 마음에 따뜻해진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