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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금 Nov 26. 2018

첫눈보다 이른

또는 첫눈만큼 환한



스물네 번째 마음,

환하다



  금요일에는 문학 치료에 관한 인터뷰이로 모교를 방문했다. 여기까지 말하면 되게 있어 보이지만, 사실 되게 있는 아니고 문학 치료를 연구하는 후배가 인터뷰 겸 촬영을 요청해 다녀왔다. 인터뷰에 응하고서 만나는 장소를 정할 때 후배는 자기가 부탁을 하는 입장이니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말했었는데, 나는 학교 앞의 제육볶음이 먹고 싶단 논리적인 이유로 장소를 모교로 정했다. 그 제육볶음이라 함은 졸업하고서도 한밤중에 문득문득 생각나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던 마-성의 제육볶음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터뷰보다) 제육을 먹을 생각에 정말 얼마나 두근거리던지. 일단 만나서 제육을 먹고, 후식으로 마카롱을 먹고, 후후식으로 정문 앞 카페의 커피까지 먹겠다고 계획을 다 세워놓았는데 그때 불현듯 나의 지도 교수님이셨던 교수님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에서의 담임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와는 달리 대학교에서의 지도 교수님과 학생은 지구와 달의 거리처럼 먼 사이이다. 한때 유행했던 짤에서처럼, 고등학교 선생님과는 "선생님, 제 이름이 뭐게요~?" "글쎄~ 으뜸이~?" "피이~ 선생님은 제 이름도 모르고!" 가 가능한 사이라면 대학의 교수님과는 "버금 학생, 수업 끝나고 잠깐 남을래요?" "(뭐야, 내 이름을 어떻게 아시는 거지.)" 하는 식. 많아야 일 년에 한두 번 뵙고 그나마도 중간에 교수님의 안식년이 겹치면 지도 교수님이 바뀌는 일도 생긴다. 어쨌든 그 정도로 먼 사이라 나에게도 교수님이란 존재는 하늘의 저 먼 별과 같았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이 교수님만 빼고.


  이 교수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때는 내가 학교를 가는 날보다 가지 않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아 학사경고를 드래곤볼처럼 부지런히 모으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그 망나니에게 먼저 다가와주신 교수님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을 뵈었던 건 1학년 때가 아니라 3년의 휴학 후 학교로 돌아갔을 때였다. 학번은 암모나이트이지만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어 1학년 전공 수업에 보릿자루처럼 멀뚱히 앉아있는 내게 교수님이 다가와 말을 거셨다. "얼굴을 잊기 전에 돌아와 주었구나."


  첫인사를 듣고 들었던 생각은 반가움이나 기쁨보다 "헐 뭐야, 어떻게 나를 아시지!" 하는 생각이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학교를 드문드문 다닐 때 내가 교수님의 수업을 신청했던 적이 있었나 보다. 수업을 신청하는 것과 그것을 듣는 것은 조금 별개라 신청해놓고 출석은 잘 하지 않았었지만 교수님은 아마 그때부터 내게 조금 신경이 쓰이셨던 모양이다. 언제 한 번 저 아이를 붙잡아다 밥을 먹여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쯤에 내가 돌연히 휴학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고마운 말씀임에도 그땐 그 말씀들이 왜 그리 부담스럽던지. 아마 학교에서 망나니로 지냈던 시간들이 자유와 행복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도피 혹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지냈던 시간들이었기 때문일 테다. 한때는 믿기지 않게도 모범생에 반장을 도맡던 학생이었어서 스스로도 그 괴리를 감내하기가 힘들었다. 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대체 왜 관심을 가져주실까. 공부 잘하는 다른 학생들도 많은데. 그냥 내가 좀 특이한 학생이라 궁금해서 그러신 건가, 하고 의심 아닌 의심도 조금 했다.

 

  그런 내 마음은 별로 신경 안 쓰셨는지(?) 교수님은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많은 것을 구경시켜주셨다. 학교에 멘토링이란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 번 신청해보지 않겠니? 이번 주에 내가 하는 독서 모임 사람들이랑 토론이 있는데 마침 네가 좋아하는 그 책이야, 너도 한 번 깍두기로 참여해볼래? 주말에 내가 하는 학회에서 발표하러 우리 학교로 오는데 와서 구경해보지 않겠니? 오면 커피랑 과자도 준다, 하는 식. 워낙에 어른이 하시는 말씀엔 거절을 잘 못하는 데다 신경 써주시는 게 감사해 겉으론 웃고 속으론 조금 귀찮아하면서,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그러면서 뒤늦게 학교가 '재밌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도 어쩌면 학교를 재밌게 다닐 수 있겠다는 작은 가능성. 나도 어쩌면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그런 믿음 같은 것.



  그렇게 7년 다닌 학교를 졸업하고 교수님께 졸업 논문을 심사받았다. "드디어! 너를 졸업시키는 게 내 인생의 목표였단다." 하고 감격하시는 교수님께 "우와, 축하드려요! 저 근데 어제 서울예대 입학 원서 썼어요." 라는 말로 이마를 탁 치시게 만들기도. 도대체 어떻게 이 긴 학교 생활을 또 하려고 하느냐. 거긴 나 같은 선생님도 없을 텐데. 라고 걱정하시는 교수님께, "교수님, 저 이제 학교 잘 다닐 수 있어요." 라고 제법 자신 있게 말도 했더랬다.


  아무튼 그런 교수님이 제육볶음 다음으로 생각이 난 것이다. 졸업하고서 바쁘단 핑계로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모교까지 가는 길에 교수님을 뵙지 않는 건 아닌 것 같아 급히 메일을 드렸다. 그때가 한참 내일은 첫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뉴스들로 시끌벅적했던 때라, 교수님의 답신이 먼저 올지 첫눈이 먼저 올지 기다려보겠다는 말로 자그마한 협박도 곁들였다. 교수님은 첫눈보다 일찍 답신을 주셨다. 첫눈보다 환하고 첫눈처럼 반가운 답신이었다.



학교 도착 당일의 까까오똑



  그리고 학교를 가는 당일, 나는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옆구리가 결릴 정도로 뛰어야 했다. 오랜만에 모교를 찾아가는, 으른스러운 선배의 모습으로 버스 차창 밖을 구경하고 길도 천천히 거닐며 갖은 추억과 상념에 젖은 그런 아련한 모습을 기대했지만 역시나. 정각에 뵙기로 했는데 버스 정류장에 내리고 보니 58분이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도 꼭 이쯤 도착해서 아주 매일 헐레벌떡 뛰어다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이 지독한 한결같음이란! 11시 수업 시간에 맞춰 줄지어 뛰어가는 후배들 사이로 김 암모나이트열심히 뛰었다. 이 상황이 황당해서 속으론 눈 한 방울이 났지만 더 크게 웃으면서 뛰었다. 앞으로 매 해, 첫눈 소식을 들으면 떠오를 유쾌한 뜀박질의 기억이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 원래의 말투와 성격에 가깝게 쓰고 싶었던 일상의 기록
* 말글  your_dictionary_
* 그리고 사진 ⓒ 2nd_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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