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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연 Jan 17. 2021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이라는 장르

서로의 흉터에 입을 맞추고 사는 삶은 삶의 다른 나쁜 조건들을 잊게 해주었다.

어떤 글은 읽다보면 글과 글을 쓴 주인이 닮아 있기를 바라게 된다. 정세랑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다. 한없이 다정하고 자상하여 이 세상이 그 소설의 세계 속에 있다면 아주 단단한 지반에 두 발을 댄 안정감이 모든 불안을 삼킬 것만 같다. <지구에서 한아뿐>도 그랬고 오늘 리뷰할 <보건교사 안은영>도.

고등학교의 보건교사인 ‘안은영’은 엑토플라즘, 즉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을 볼 수 있는 초능력인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에너지들은 위험하지 않지만 간혹 생기는 나쁜 에너지를 먼저 예감하고 부숴버리는 것이 은영이 하는 일. 그녀로서는 매번 엄청난 사건에서 세상을 구하는 역사적인 일을 하지만 보통 사람의 눈에는 허공에 장난감 총과 플라스틱 칼을 휘두르는 정신나간 여자의 모습일 뿐이다(악한 에너지들은 은형의 장난감 총과 칼에 쉽게 부서진다).  

그런 그녀가 홍인표의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많았던 그 곳에는 한이 서려있는데, 인표는 그런 학교 창립자의 손자이자 한문 선생이다. 어릴 적 운이 없던 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된 그에게 안은영은 신기한 존재로 다가온다.


열 편의 에피소드들은 ‘안은영’과 ‘홍인표’의 활약을 중심으로 각각 독립적인 스토리를 구성한다. 학교를 거쳐가는 학생들과 교사, 원어민 강사, 교장의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힘을 가지고 울림을 주는데, 이 울림이 바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정세랑만의 강점이다. 흔히 B급 소재라고 느껴지는 이야기를 특S급으로 바꿔버리는 정세랑식 장르의 매력. 작은 이야기들을 위트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따스하게 폴어나간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정확하고 세밀한 표현도 표현이지만 작가가 가진 명랑한 상상력과 엉뚱함은 절로 미소짓게 만들고 있다. 작품 속에서 유영을 하다 현실로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다정함이 전염되어 나도 모르게 누구에게라도 친절해지고 싶어진다.


초능력, 요괴, 귀신, 영혼 같은 소재로는 위대한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반드시 정세랑의 작품을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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