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7일
비가 개고, 내내 흐렸다 맑았다 반복하다 토네이도가 아닌가 싶은 강풍마저 불었던 어제가 마치 거짓말 같아졌다. 몇 달인가 붙잡고 있던 프로젝트 하나는 (일단)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다른 하나는 이번 주에 역시 (후반 작업을 빼면) 매듭을 짓는다. 늦은 원고가 하나 있는데, 주제를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비바람의 와중에 여러 통의 전화와 문자를 쳐내면서 급한 불을 끄고 한숨을 돌리니 월요병 같은 걸 운운할 시간도 없이 하루가 끝이 났다.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아야 한다는 생각은 마음 안을 둥둥 떠다닐 뿐 이어지지 않았다. 일주일이나 한 달 혹은 몇 달을 사는 게 아니라 하루, 하루, 그저 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내는 기분. 그 안에 성취와 보람이 없다고 할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리 좋은 삶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잠을 자주 드는 건지 요즘 부쩍 꿈을 꿀 때가 늘었다. 여름인가 봄부터 이어진 커다란 규모의 엉망진창 개꿈 같은 걸 꾸고는 꿈에서 항상 무언가 나쁜 일이 일어난 상태에서 깨어난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던 날, 꿈을 깨고, 현실과 비현실의 오묘한 경계에서 아주 서서히 현실의 공간을 인지한 다음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해서 무언가에 — 어렴풋한 기억으로 그 대상이 꼭 물리적인 건 아니었던 듯하지만 — 쫓기는 꿈을 꾸다 일어나길 반복하니 문제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중요한 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라는 핑계로 집을 나설 때 카메라를 들고 나오지 않았고, 오늘은 카메라를 들었다. 새벽의 꿈, 남은 일들, 상식적인 예측을 넘어서는 그 모든 것이 현저하게 쌀쌀해진 아침의 역설처럼 차 유리를 뚫고 드리우는 눈부신 태양 빛 아래에서는 어쩐지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다. 한강대로, 남산, 꼬리를 물고 건널목 횡단보도를 침범하는 자동차들, 오래되고 새로운 건물의 표면에 달라붙은 아침 공기와 낙엽이 되기 전, 마지막 화음을 조율하는 분주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처럼 빛의 지휘에 산들거리는 새빨간 단풍 같은 것들이 누구의 신경도 거스르지 않은 채로 제자리에 있거나, 또다시 움직인다.
아침에는 아침의 일을 하고, 오후에도 마찬가지로 이어지고, 그러다가 저녁이 오면 소진한 몸이 사라지고, 그러다 다시 주말이 오고, 짧은 시간을 넘어 다시 이어지는 시간의 쳇바퀴가 허무한 안주나 탈주에 이르지 않으려면 어떠한 결심이나 변화가 필요하다. 저녁이 있는데, 손안에 담은 모래알처럼 없어진다고 느끼지 않을 사사롭고 이로운 루틴이 있어야 한다. 잠시 눈을 감고 머릿속에 떠오른 몇 가지가 있었으나 아직은 찾는다.
좋게 생각하면 삶은 여러 불평과 불만 때문에 해결책을 찾기 위한 과정의 연속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