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1일
일요일 오후, 가족끼리 식사를 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여자 친구와 만든 자리였다. 수년 전 큰 외삼촌이 서울에 오셨을 때 한 번 간 적이 있던 광화문 근처의 한정식집이다. 건물 1층에 있는 카페에서 먼저 커피를 마셨고, 카카오 택시가 도착했을 즈음 엄마와 아빠를 자리로 안내하고, 음료를 주문했다.
아빠는 며칠 전, 살이 홀쭉해질 정도로 빠지고 불편한 복통과 소화 불량 증상이 있어,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동네 병원에 검진을 하러 갔다. 결과는 — 아직 대형 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지 않았으나 — 췌장암이 강력하게 의심된다는 소식이었다. 병원에 가기 전날 저녁부터 새벽까지, 200달러를 주고 쓰는 챗지피티 ChatGPT를 닦달했을 때, 위암 혹은 십이지장궤양 같은 걸 추정한다고 했는데,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니, 사실 냉정하게 보면 더 최악의 결과로 볼 수도 있었다. 검진을 받은 날은 구름이 많이 끼고 흐렸는데, 병원에 있는 동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나 셋이 참으로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잘 헤쳐나가자, 종합 병원 검진도 빨리 잡혔으니까, 이런 얘기들이 오고 갔다. 아빠는 생각보다 담담해 보였는데, 사실 그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은 아니니까 정확한 마음 상태를 나는, 또 엄마 역시 알 수는 없었다.
아빠는 마치 이산가족을 상봉한 것처럼 여자 친구를 반가워했다. 할머니 장례식 때 한 번, 또 종로 길거리에 있을 때 (우리는 몰랐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한 번, 오늘까지 또 한 번. 세 번이나 본 것은 인연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식당 예약 시각까지는 수십 분 정도가 남았다. 췌장암 소견을 받으면서 당뇨가 함께 온 걸 알게 되었다. 쿠팡 로켓배송으로 혈당 측정기를 주문했다. 작고 가벼운 전자기기가 생각보다 까다로워 보였다. 빠르게 (나를 시험체로) 테스트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대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여러 대화가, 카페에서 식사 자리까지 대체로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두어 시간 남짓, 잠시 대화가 끊긴 고요한 시간을 빼고 남은 오간 이야기 중, 만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 느낀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우리 가족, 심지어 친척 일부도 내 블로그를 보고 있다는 것. 딱히 누구를 보여주려고 쓰는 기록이 아니라서 조금 머쓱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 어떤 주제의 글도 계속 보고 있다는 것은 약간 신기하고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둘째로 아빠 역시, 어릴 때부터 글을 쓰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내용은 보여주지 않았으나, 지갑에는 여러 번 손으로 적어 쓴 글의 뭉치가 긴 메모처럼 있었다. 지나가는 말로, 아빠는 '어쩐지 내가 쓰면 슬픈 이야기가 된다'라고 했다. 엄마는 '왜 슬퍼'라고 했고, 굳이 꼬치꼬치 캐어 묻지 않았다. 몇 년 전 생신 때 아빠에게 왠지 좋은 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몽블랑 Montblanc의 볼펜을 선물로 드렸다.
백화점에 가서 이름 각인을 받을 정도로 기뻐하셔서 — 몰랐는데, 특정 모델 이상만 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원칙이나 친절한 직원이 아마도 부모님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해드린 것 같아 고마웠다 — 내심 뿌듯했다. 그리고 아빠는 아마도 그 새 볼펜을 기점으로, 또 무언가 계속 글로 남기는 아들의 이야기를 보고는 글을 틈틈이 써보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매일 곁에 두고 쓸 수 있는 공책을 하나 드려야겠다 싶었다. 또한, 남아 있는 맥북 M1 노트북 컴퓨터를 아빠가 쓸 수 있도록 드려야겠다고도 생각하였다 (용도를 생각하면 좀 높은 스펙이긴 하지마는).
그리고 아빠는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식사를 한 날,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어떤 사진도 남기지 않았지만, 종종 가족 단톡방에 계절이 바뀔 때, 예쁜 하늘을 보았을 때, 거리의 이름 모를 꽃을 올리고는 했다. 그저 나이 든 어른들 혹은 부모님이 남기는 정도 아닌가 싶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보다 사진을 좋아하신다는 생각이 들어, 쓰지 않는 가벼운 카메라를 하나 드릴까? 싶었다.
또한, 특히 과거의 어느 시점이나 기억을 불쑥 끄집어내어 이어지는 동안, 나도, 엄마도 모르는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온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태백으로, 태백에서 보은으로, 다시 서울로 오던 시기에 나는 아주 어렸고, 그 어린 상태에서 나름대로 삶을 형성해 나갔고, 또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가족과 당신을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으며, 그 안에는 그 당시에 나누지 못했던 아빠 자신의 이야기가 있었다. 당연히 있었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나눌 일이 없다 보니 이를테면 이제서야 튀어나왔다.
월요일 오전에는 평소처럼 사무실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귀로는 아무래도 좋을 국제 정세 뉴스를 들었다. 문득, 그러고는 기록으로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남겨 보면 어떨까. 마음은 그렇게 흘렀다.
평소 하듯이, 내가 생각하고 바라본 아빠와 가족에 관한 생각들.
그리고 평소 하던 방식은 아니지만, 아빠의 관점에서 남길 수 있는 이야기들.
부모님에게 여자 친구를 처음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으나, 내가 모르던, 또 아무도 모르던 아빠의 삶을 하나둘 남겨보면 그 자체만으로 괜찮지 않을까, 싶다.
2025년 8월 10일 일요일, 며칠 사그라든 줄 알았던 햇볕과 무더위가 오후를 집요하게 달구었다. 그러나 어떤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시작으로 부를 만하였다.
Seoul, S. Korea
Sun, August 10, 2025
Sky
Dad and M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