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다

2025년 8월 17일

by Hong Sukwoo

글을 쓰려고 빈 창을 켜면 아무래도 아버지에 관한 글을 쓰게 된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아빠'라는 단어와 (의도적으로) 혼합하여 쓴다. 실제로 그리 부르며 자라지는 않았기 때문에.


비가 온다는 예보는 대체로 반쯤 맞고 반은 틀렸다. 일요일 오전에는 밖을 나가 조금 걸었다. 라이카 (Leica) Q2에 핸드그립과 엄지 그립을 달고 쓰는데 두툼하고 무겁다. 리코 (Ricoh) GR IIIx, 시그마 (SIGMA) BF 같은 카메라는 잘 나오는 자동카메라이지만, 편리하다는 점을 빼면 가끔은 사진을 찍는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그래서 여름 내내 별로 찾지 않았던 라이카 M11-P를 어제 오랜만에 들었다.


린코 가와우치 (Rinco Kawauchi)의 사진집과 프로젝트를 훑은 유튜브 영상을 그제인가 보았다. 가지고 있는 사진집도 몇 권 영상 속에 있었다. 보통 밖을 다닐 때 카메라를 쓴다. 집이든 스튜디오든, 실내에 들어오면 거의 잠이 들었다. 조금 더 손에 쥐고 조금 더 보이지 않는 걸 찍으려먼 어떻게 할까, 생각한다.


병원에 처음 가기 전, 그러니까 아버지가 처음 복부 CT와 위내시경 검사를 받은 후 그리 좋지 않은 소견을 듣기 전이었던 7월 마지막 주말, 부모님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20대 시절부터 출장이든, 여행이든 혹은 둘의 혼합이든 이곳저곳 다니며 산 나와 비교하여 부모님은 줄곧 치열하게 자기 인생을, 가족을 위해 사용했다. 요즘은 되려 내가 어디 가지 않더라도, 1년에 두어 번 여행이든 무엇이든 보내드리려고 한다. 얼마 전 받은 강원도 여행사진 같은 것도 좋았다. 마치 선물을 주고, 받은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감정과 닮았다.


호텔은 하룻밤을 자고 나오는 짧은 일정이었다. 체크아웃 알람이 오고 통화를 했다. 복통이 조금 더 심해지셨다고 했다. 의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위하여 몸의 상태, 특히 통증을 물을 때는 1부터 10까지 중 하나를 골라보시라고 한다. 원래 3에서 4 정도를 얘기했는데, 오늘은 5에서 6 정도를 얘기했다. 호텔에서 준 온갖 먹을 걸 엄마만큼 드시지는 못하였다.


산책을 마치고 아직 흐르는 땀이 가시기 전, 마음에 조금 걱정이 피어났다 (게다가 이런 가족의 걱정 탓에 아빠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침은 전복죽이나 연어 필레 같은 걸 조금 먹다 말았다고 했다. '제로' 이온 음료를 집에 주문했다. 거친 곡물이 들어가는 밥을 당분간 끊는 게 낫겠다고 알렸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먹는 게 어려워져서, 결과적으로 체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배에 부담이 적으면서 아버지가 먹을 방법과 음식을 찾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 가령 체력이나 에너지 같은 걸 공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늦은 오후 밖에 나가서 전시를 보았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일본 예술가의 작업이었다. 처음 알았는데, 이미 저명한 작가인 듯하였다. 전시 동선을 잘못 안 바람에 작가가 쓴 서문을 전시장을 나오는 길에 보았다. 보통 이러한 서문을 작가가 직접 쓰진 않는다. 알듯 말듯 어려운 예술계 용어가 점철된 글에 나는 때때로 냉소 비슷한 걸 보냈다. 그런데 이 작가는,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진 않았으나 암에 걸렸고, 항암 과정이 고통스러웠고, 지금은 아마도 다시 전시를 열 정도로 회복하였다. 그 사이 사산의 비극도 겪었다고 했다. 그래도 아침은 다시 왔다고 했다. 보통의 상태였다면 적어도 지금처럼은 파고들지 않았을 서문이 전시장에서 느낀 반 농담 같은 기분보다 진심 어리게 왔다.


아마도 프리즈 서울 (Frieze Seoul)이 처음 열렸던 때를 빼면, 밤의 미술관을 찾은 것도 오랜만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모든 전시가 고루 좋았다. 근현대 한국 미술가의 작품을 담은 아카이브 전시는 음미하는 맛이 있었다. 설치와 행위 예술이자 참여의 공간이었던 고요하고 어두운 방의 경험은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또 어떠한 예술의 표면보다 생생하게 다가온 추수 (TZUSOO)의 전시도 눈을 떼기 어려웠다. 마음을 끄는 것은 그 형태가 반드시 예술이 아니어도 일종의 세계관이 깃들어 있다. 모래알만큼 세기 어려운 각각의 삶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면, 일종의 작고 독립한 세계가 말을 건네는 것이고, 또 누군가 반응을 보내는 작은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


사설 갤러리에서 국립 미술관으로 가던 사이, 쨍한 해와 조금 서늘한 그늘과 이제 막 아름다운 골든아워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픈 한쪽 다리를 달래며 그래도 걷는다는 행위 자체의 부드러운 기운을 몸소 느끼던 때, 동선은 친한 동생의 집 앞 버스 정류장이었고, 전화를 해볼까 하다 그 앞에 조금 머물렀으며, 마침 차를 타고 돌아오던 부부를 만났다. 한 시간 남짓일까? 보통은 커피라도 한 잔 앞에 두고 할 이야기를 — 아버지의 상태와 근황부터 확장한 가족의 이야기, 그저 웃고 마는 이야기까지 — 버스 정류장에 서서 멈추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끼면 시야가 어둑해질 무렵,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공식적으로 저녁이 된 시점을 지나고서야 조금 더 걷다가, 택시를 탔다.


다리에 몇 방 정도 모기가 물었다. 어떤 계속 이어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가족의 일상이든, 아빠와 엄마 일이든, 무엇이든. 경계를 어떻게 넘나드는가. 어떤 게 자연스럽게 삶에 끼어 드는가. 또한, 모두가 그들 자신으로 있기 위하여 우리는 무얼 지금 하고 있는가. 허황하거나 장황하지 않게, 뚜벅뚜벅 걷는 마음으로 그런 것을 하나둘씩 생각한다. 수학의 공식처럼 명료한 답이 나오지 않을 이야기를 고른다. 곁에 두거나, 두지 않도록 노력하는 선별로서의 마음 같은 것을 말이다.

Seoul, S. Korea

Sun, August 03 — Sat, August 16, 2025






Photographed by Leica 라이카 M11-P + Voigtlander (Voigtländer) 보이그랜더 Color-Skopar 50mm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