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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Apr 12. 2016

새치

2016년 4월 10일

스스로 핑계를 자주 대는 요즘이다. 사소한 것부터 일에 연동하여 스트레스받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중 사소한 것들은 머리 자르는 것부터 또 몇 가지 있다.

특별히 신경 쓰는 편은 아니라 집 앞 저렴한 미용실을 수년째 다닌다. 정시 출근한 직업으로 삶이 변한 이후 도저히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서 머리 한 번 자르는 데 만 원이 넘는 곳을 몇 번 가게 되었다. 일요일, 동네 나오는 길 단골 미용실이 닫았을 때와 업무 강도가 평균적으로 높았던 이번 주 머리카락이라도 단정하게 잘라야지 그나마 마음이 조금 나아질 듯했던 며칠 전이었다. 회사 근처 '동네 미용실' 간판을 달고 실제로 미용사분도 그러한 미용실 아주머니처럼 보였으나 서비스와 기술 모두 2만 얼마를 받아도 온전히 수긍했던 곳까지 생각해보니 한 달 새 두 번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조금 부스스해지고, 며칠 전보다 훨씬 짧아졌을 때 '새치'를 발견했다. 한 가닥 뽑았다. 길고 무거웠던 얼마 전과 달라서인지 몇 가닥 더 보였다. 섬세하게 툭, 뽑기 어려웠지만 한 올 더 손가락을 집중했다. 염색이나 탈색을 오래도록 하지 않아서 아직 찰랑대는 머리카락 사이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넘어간 가늘고 기다란 흰 머리카락을 몇 올 더 발견했다. 다시 귀찮아져서 다음에 뽑자고 마음먹은 순간 어쩐지 꼭 이 기분을 일기로 남기자고 생각했다.


띠동갑 어른들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보며 어느 정도 동경하고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는구나 싶었던 시간의 기억이 기어코 내게로 왔다. 2002년에 태어난 아이돌 지망생 얘기를 들은 며칠 전이었다. 그해 정확히 스무 살이었던 내가 여전히 상대적이면서도 직접 겪고 분노하고 씁쓸했던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밤이기도 했다. 나는 어디서 그러지 않았나 싶었던 기성세대를 부정하며, 얼음 가득한 커피와 오랜만에 들이켜는 소주를 목구멍 너머로 넘기고, 한 올 뽑아서는 해결하지 못한 하얗고 선명한 머리카락을 기억하자고 괜스레 감성 충만한 마음이 되었다.


지키지 못한 몇 가지 초대와 방문 약속을 엉킨 실타래처럼 생각했다. 그보다 무거운 막 닥친 '일'도 생각했다. 구름 아닌 먼지가 서울을 뒤덮은, 낮처럼 뿌옇고 무척 건조하며 복잡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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