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사 이기 이전에 평범하고 예민한 29살 여자
그렇게 첫 직장을 퇴사하고 난 후 나에게는 곧 후유증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해방되었다는 기분에 하늘을 날 것 같은 시간 들을 보냈으나 그 이후에는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 하는 걱정들이 생겨났다. 평생을 놀고먹을 수는 없으니 일을 해야 하는데, 나의 전공인 유아교육도 안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자격증도 없고 별다른 기술도 없는 내가 갑자기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냔 말이다.
구인공고를 찾아보던 중 우연히 스타벅스 직원 채용을 보게 되었고 지원하자 일사천리로 나는 스타벅스 직원이 되었다. 사실 입사하면서도 내가 바리스타라는 직업과 잘 맞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하다 보니 정말 안 맞았다. 나는 스타벅스의 고객이 되고 싶지 파트너가 되고 싶은 건 아니구나.. 스타벅스에서 한 7~8개월을 근무 끝에 퇴사했다. 그 후에는 4시간 식당 알바를 하기도 하고 회화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녔다. 그렇게 유치원 퇴사 후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여유롭게 그리고 허망하게 보낸 2년이었다. 그 시간에 좀 더 내 인생에서 결정적인 것들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내가 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특하게도 이룬 것이 몇 가지 있다.
가장 큰 것은 회복이었다.
첫 직장에서 쓰나 쓴 경험들을 했고 퇴사할 무렵 내 자존감은 바닥을 지나 지하까지 내려가 있었다. 즐겁게 놀다가도 갑자기 우울해졌으며 나의 작은 실수에도 ‘나는 이렇지 뭐.. 내가 뭘 잘하겠어..’ 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나를 휘감았다. 나의 부정적인 기운은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일 지경이었는데 한 친구의 말로는 내 머리 위에 먹구름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고 한다.
고심 끝에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우리 동네에는 무료로 상담을 해주는 고마운 센터가 있는데 그곳을 가서 ‘내가 과연 지금 정상인지?’에 대한 전문가의 소견을 듣고 싶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몇 가지 테스트를 제안했고 나는 오전 10시에 그곳으로 가서 문항이 엄청나게 많은 문제에 일일이 답했다. 며칠 후 테스트의 결과를 받기 위해 다시 상담센터로 향했고 상담사 선생님은 나에게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 같다. 현재의 나는 자존감이 낮으며 조그만 일에도 우울해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하셨다.
검사 결과만 받고 더 이상의 상담을 받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이후로 나의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내가 가장 편하게 받아들이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을 바로 글쓰기였다.
나는 그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자존감 수업’이란 책과 ‘미움받을 용기’ 책 두 권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은 후에는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소감을 글로 정리해보았다. 그러자 조금은 놀라운 일이 발생했는데 내가 그 일에 열정적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 미움받을 용기는 책을 읽으면서 울었고 또 그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도 울었다.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보면 호불호를 느꼈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나는 정말 감동적이게 읽었던 책이었다. 두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쓴 다음에는 다른 책도 읽었고 또 글을 쓰는 작업도 계속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그 일을 열심히 했다. 내 인생에 최초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그렇게 내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한 경험은.. 특히나 나는 한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너무 힘들어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조금씩 천천히 글쓰기로 얻어진 성취감과 함께 나의 낮아진 자존감도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내 마음이 힘들 때 언제든지 스스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토닥여주는 나만의 수단이 되었다.
2년이 지난 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2년 전에는 그렇게 하기 싫다고 했던 유아교사가 다시 하고 싶어 진 것이다. 처음에는 외면하고 싶었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그 직업을 다시 하고 싶다고? 너 제정신이니?’라고 말하며 나를 질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흔들림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그 직업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자꾸 유치원, 어린이집 구인 공고를 확인하고 살펴보는 나의 모습에서 나는 결국 지고 말았다.
그래 마지막이다! 이번 한 번만 다시 해보자 만약에 이번에도 아니라면 정말 평생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