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매우 다르다. 정말 다르다. 올해는 결혼 10주년이 되는 해인데, 10년동안 나와 이토록 다른 사람과 손발을 맞춰가며 살아온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싶을 정도다. 그와 나는 정반대의 다른 존재라는 것을 매번, 여실히, 처참하게 깨닫는 10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싸우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가족으로서) 좋아하고 의지하는 편이기도 하다. 어쩔 때는 정말 이해가 안가서 같이 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어쩔 때는 이 사람 없으면 어떻게 살려나 싶을 때도 있다.
1. [대화성향] 공감위로형 vs 해결책제시형
나: 회사에서 상사가 나한테 막말을 했는데 너무 속상해. 자괴감도 느껴지고 힘들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 그래도 열심히 해야 되는거겠지? 내가 바라는 모범답안: 그런 부분이 힘들었구나(공감), 괜찮아 잘하고 있어(위로)
남편: 그런 경우에는 이렇게 해. 상사한테 우선 이러저러하게 말을 하고. 일은 이러저러하게 풀고 (해결책 제시) 나도 그런 일이 얼마전에 있었는데 나는 이러저러하게 해서 잘 해결했어. (자기자랑) 내가 해결방법을 알려주니까 고맙지? (생색)
나: (힘빠져서 대화포기) 됐다...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이성적인 남편과, 공감과 위로를 받으면 풀리는 감성적인 나의 대화는 늘 이렇게 평행선이다. 반대로 남편은 바깥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땐 나한테 아예 얘기를 안한다.
2. [길찾기] 최악의 길치 방향치 vs 인간 네비게이터
나는 세상 최악의 길치다. 수학머리가 전혀 없는데 특히 방향 및 공감각쪽의 능력이 뇌에서 빠진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어릴 때는 왼쪽 오른쪽 구분이 어려웠고, 지금도 지도에서 방향 잡는 걸 전혀 못한다. 스스로 길치임을 잘 알기 때문에 길을 잘못드는 걸 감안해서 약속시간보다 일찍 출발하는 편이다. 요즘도 버스나 지하철을 반대로 타는 일이 매우 흔하다. 친구들 만날 때도 먼저 약속 장소를 정하거나 길을 찾은 적이 없다. 길을 잃어버려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가다보면 찾겠지~ 앗 여기로 왔더니 이런 것도 있네' 하면서 느긋하게 헤맨다.
반대로 남편은 인간 네비게이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방향을 찾는데 능하다. 연애 초기 남편의 그런 모습에 반했던 것 같다. 데이트 경로를 최적의 동선으로 착착착 짜왔다. 차에는 언제나 분위기에 맞는 좋은 음악이 흘렀고. 운전도 정말 잘했다. 머릿속에 지도가 있는 것처럼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반대로 그런 효율성이 저해되는 상황에서는(...) 엄청 짜증을 낸다. 나같은 길치 아내와 살다보니 방향 잡고 길 찾는건 늘 남편의 몫이고, 그래서 짜증을 부릴 때가 많다.
3. [장보기] 싼 물건을 조금씩 사자 vs 좋은 물건을 많이 사자
나는 정말이지 자린고비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엄마는 10원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분이셨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근검절약이 몸에 배다못해... 쇼핑과 사치는 죄악처럼 여기는 어른으로 자랐다. 일단 나는 뭔가를 사야할 순간이 오면 대체로 싼 것을 고른다. 장을 볼 때도 손이 매우 작다. 집에 저장공간도 없고, 남아서 버리는 게 아깝기 때문에 조금씩 자주 사는 전략을 택한다. 그러나 뭘 사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고 바빠서 까먹기 때문에 냉장고가 텅텅 비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렇게 돈 쓰는데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충동적으로 귀엽거나 예뻐보이는... 가격이 싼 쓰레기같은 물건을 사서 오래 못쓰고 버린다. 기본적으로 물욕이 적고 좋은 물건을 고르는 안목도 없다. 쇼핑자신감도 없어서 쇼핑을 안하는 편.
남편은 반대로 부유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시어머님은 정말 우리 친정엄마와는 정반대인 분이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서 옷이라던지, 집안 가구나 이불같은 것들도 비싸더라도 좋은 것을 구매한다. 결혼 10년차인데 뵐때마다 풀메이크업에 가발착장 명품가방과 최상의 옷상태로... 완벽하게 잘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신 적이 거의 없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쇼핑을 매우 좋아하셔서 백화점 VIP 이시고 습관처럼 쿠팡에서 뭘 사서 우리집으로 배송시켜주신다. 아이들 사진을 보내드리면 '없어보이는구나' 라며(...) 남편옷과 아이들옷도 시즌마다 사서 보내주신다. 이런 시어머님 밑에서 자랐으니 남편 역시 물질적으로 풍족한 소비생활이 몸에 배어있다. 옷을 사도 절대 하나만 사지 않는다. 비슷한 류의 옷을 꼭 서너벌씩 사서 돌려입는다. 애들옷도 한무더기씩 산다. 장을 볼 때도 그렇다. 1+1 상품이 보이면 지나치질 못하고, 콜라같은건 20개들이 한 팩으로 산다. 그렇게 사는게 싸고 효율적이라나... (내 입장에서는 다 못먹고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절대 큰 단위로 사지 않는다) 그리고 공대생특성으로 좀 얼리아답터같은 기질이 있어서 내가 보기엔 쓸데없는 물건을 지를 때가 많다. (드론, 자동으로 문열리는 쓰레기통, 휴대폰으로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LED 조명 등...)
이렇게 다른 나와 남편. 어제도 싸웠다. 밤에는 눈물을 흘리며 못살겠다 졸혼이라도 해야겠다고 한탄했는데 오늘은 이런 글을 쓰며 '남편과 나는 달라. 우린 달라. 남편을 이해해야지' 라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나... 내가 변할 수 없듯이 남편도 변할 수 없다. 결혼이란 서로 맞춰가고 무뎌져 가는 인생의 과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