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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국 May 31. 2022

5. 31. 오늘자 칼럼

밑줄긋는시간

텍사스의 평균인구 통계보다 나이가 많고 대부분 백인인 참석자가 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는 풍경이 뉴스로 전해졌다. 이들은 총기 성능을 직접 체험했으며 세미나를 경청했고 새로운 NRA 지도부를 선출했다. NRA 최고경영자(CEO)는 압도적인 표차로 재신임 받으며 건재를 과시했다. 동굴 같은 연례대회 행사장에는 불과 며칠 전 21명을 죽인 AR-15 소총이 전시됐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 아시아경제


정작 놀라운 건 기자회견 이후 윤 대통령의 태도 변화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면서 여성에게 기회를 주겠다더니 4명의 장·차관급 추가 인선에 전원 여성을 발탁했다. 장관급 직을 맡을 준비된 여성이 부족해 기용하지 못했다는 기자회견 답변에서 180도 달라졌다. 닷새만이다. 국내 언론 지적과 여론에는 꿈쩍 않던 대통령이 외신 지적에 즉각 입장을 바꾼 모양새가 됐다. 윤 대통령의 외교 데뷔 무대였던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받은 성과가 여성 장관 추가 지명으로 인한 장관 성비 불균형 개선이 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 중앙일보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김포공항 이전’으로 지방선거 막판에 논란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 제주 지역 후보들이 “제주의 미래와 자주권은 이재명 후보에게 있지 않다”며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어떤 지역에서 우리 당에 대한 지지를 해주는가를 보고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며 말리지는 못할망정 한술 더 뜨고 있는 판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승객과 운항편수가 많은 노선을 보유하고 있는 공항의 이전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선거 재료로 쓰이고 있다. 6·1 지방선거에서도 어김없이 씁쓸한 정치 풍경은 되풀이되고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 한국경제


'세계는 평평하다' 저자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다보스포럼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이 진정한 의미의 1차 세계대전"이라고 말했다. 전 지구인의 3분의 2가 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근거에서다. 관여된 지구인의 비중 등을 고려하면 1차, 2차 세계대전은 어찌 보면 국지전이었다. 전쟁 사실을 실시간으로 인지한 비중은 매우 낮았다. 이번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아니다.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간의 전쟁도 아니다. 수많은 개인과 강대국 간 첫 전쟁이라는 뜻이다.

프리드먼은 '테크노 유토피언'들이 스마트폰으로 매일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인들을 돕기 위해 에어비앤비를 통해 화력을 보탰다. 페이팔은 우크라이나 자선단체를 지원하는 결정적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처럼 성금을 모으고, 전달하려다 보면 수개월이 걸렸을 것이다. 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개인들이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런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박용범 뉴욕 특파원 / 매일경제


지금 꼭 해야 하는데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이 있다면, 이 마법의 주문을 한 번 써보길 바란다. 살짝 미소를 머금고 “내가 이걸 할 수 있다니!”라고 소리 내어 말해 보자.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게 어디야’, ’일하러 갈 수 있는 게 어디야’. 그러면서 나의 기분과 감정에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해 보길 바란다. 계속 그 일이 하기 싫고 힘든지, 짜증 나고 억울했던 마음이 마치 마법처럼 눈 녹듯 사라지는지 말이다.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 / 동아일보


2022년의 지구별을 공유하는 우리는 각자 다른 단어와 장소, 기억에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에겐 언제라도 돌아가고 싶은 학교가 누군가에겐 잠시라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공포스러운 공간일 수 있다. 이별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이에겐 상대를 생각나게 하는 어떤 물건이, 어떤 냄새가 그럴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켜켜이 자신만의 상처를 쌓고 기억하고 다음의 단계로 어렵게 넘어가는 과정 같다. 어떤 말을 편하게 쓸 수 없는 세계로 건너왔지만, 그렇다고 삶이 끝나지는 않는 것처럼. 나에게 쓰라린 대상이라고 해서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다름과 무심함은 절망을 불러일으킨다.

장은교 기자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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